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지음 / 래빗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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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난신이란, 괴이(怪異)와 용력(勇力)과 패란(悖亂)과 귀신에 관한 일이라는 뜻으로,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을 이르는 말이라 설명되어 있다.


여름이 다가오니 등골 서늘해지는 괴담집에 눈길이 가기도 하지만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라는 제목이 왠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우리나라 토속적인 무속 신앙이나 괴담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관점으로 재탄생 시켰다.


대체로 여성 화자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는데, 나지막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 비밀을 고백하는 것 같기도 한데. 가만히 듣다 보면 그 뒤의 함의에 사악 소름이 끼친다.


'성주단지'는 지방의 넓은 고택에 혼자 살게 된 여성의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혼자 사는 여성이 항상 안고 있어야 할 공포에 공감이 됐는데 읽다보니 그 여성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더더욱 공포스러워졌다.


39쪽 "사람은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귀신은 사람을 죽일 수 없거든요. 전 귀신은 무섭지 않아요. 사람이 무섭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에도 공감.


천지신명이 세상의 인간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그 천지신명이 보호하는 인간 중에 여성은 제외인 건지, 여성은 늘 약자의 지위에 놓여 있다.


판소리 '변강쇠가'를 모티브로 한 <낭인전>의 옹녀도 마찬가지.



121쪽 젊은 여인이 홀로 살기에는 참으로 흉악한 세상이었다. 혼인하지 않으면 어찌 혼인하지 않냐며 들볶고, 과부가 되면 수절을 하라며 들볶았다.


종교 박해를 피해 산 속에 모여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교우촌>에서도 또 다른 종교 집단(?)인 무녀의 딸은 혐오와 멸시의 시선을 받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동네 남성들에게 수시로 강간을 당하며 살고 있다.



정말로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는구나....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소설이 답답하기만 하지는 않은 이유는, 이 여성들이 모든 것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기 때문.


이들은 괴력난신이 지배하는 위력의 사회에서 벗어나려 조금씩 나아간다.


여자의 말을 듣지 않는 천지신명에 기대지 않는,

천지신명을 찾지 않고 스스로 벽을 깨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서늘한 공포는 진정되고 위태로운 현실은 안정을 찾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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