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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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님 신작이 나왔어요.

<셰이커>입니다.


<셰이커>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요.

타임슬립은 이제 너무 흔해서.... 너무 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어요.


그리고 책 내용 소개를 보니,

주인공의 현재 애인은 과거에 사고로 죽은 친구의 여자친구.

타임슬립하여 친구를 구하면 현재의 애인은 친구의 애인이 될 거고.

'친구를 구할 것이냐 애인을 지킬 것이냐'의 선택인 거 같더라고요?


아니, 작가님! 

설정이 너무 매운맛 아니에요???? 


​이 기막힌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정말 너무 궁금했어요.


주인공 나우는 곧 애인에게 프로포즈를 할 계획이었는데 그 얘기를 들은 친구 중 한 명이 주인공에게 지금 애인 얼굴 보면 죽은 친구 생각 안 나냐며,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난해요. 지금 애인 하제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형제처럼 지냈던 친구 이내의 여자친구였거든요. 그 말을 들은 주인공은 기분도 상하고 고민에 빠져 우연히 들른 칵테일바에서 칵테일을 마시고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섯 번의 시간 여행.


목차에는 없었는데, 챕터마다 실린 부제목이 참 아련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어요.


서른둘 - 네가 사라지고 13년의 시간

열아홉 - 여전히 네가 존재하는 시간

열다섯 - 너와 그리고 네가 처음 만난 시간

스물 - 네가 떠나고 너만 남은 시간

열아홉 - 너와 내가 다시 만난 그 시간

서른둘 - 너를 기억하는 우리의 시간


서른둘은 현재의 나이인데 시간 여행 전에는 '네가 사라지고 13년의 시간'이고 시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의 현재는 '너를 기억하는 우리의 시간'이에요.


완전히 다르죠?


시간 여행을 통해 나우가 깨달은 건 무엇이었을까요.


책을 읽으면서 저도 나우의 시간 여행을 따라가며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신비한 바텐더가 나우에게 했던 말처럼

저는 '이미 지나간 날들을 아쉬워하며 묶여 있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걱정하거나' 혹은 그 둘을 모두 하면서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141p.)'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우의 이름에 힌트가 있었죠. 중요한 건 now, 지금이에요.


이미 지난 일은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


사람들은 후회가 너무 많아 과거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타임슬립'이라는 소재를 상상한 것 같은데, 작가님은 그럼에도 이미 지난 일은 바꿀 수 없다고 뒤통수를 치시네요.


"돌아갈 수 있다고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을까요? 어제는 오늘의 과거입니다. 내일의 과거는 오늘이지요. 내일은 그다음 날의 과거가 됩니다. 우리는 늘 과거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일의 과거이니, 오늘 뭔가를 한다면 내일이 바뀌지 않을까요? 과거는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매일매일 살고 있을 뿐입니다. 하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은 오후가 되는 즉시 과거가 되고, 오후는 밤이 되는 순간 과거가 되니까요. 우린 과거에 살지만, 정작 그 과거를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셰이커> 123쪽


과거를 바꾸는 방법은 타임슬립이 아니라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곧 과거가 될 오늘을 바꾸면 과거를 바꾸는 것이 될 테고 그럼 미래가 바뀔 거라고...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얽매여 살지 말고 바꿀 수 있는 미래를 바꾸는 방법을 택하는 게 현명하겠죠.


저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우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했던 존재.

어우... 후반부에 "나 내일 못 가게 하려고 온 거 아니야?" 대사 깜짝 놀랐어요.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ㅠㅜ


​감동...ㅠㅜ


이런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나우도 좋은 사람이라는 거겠죠.

좋은 사람의 여자친구였고 애인인 하제도요.

나우와 하제는 과거보다 지금보다 더 잘 살 거예요.


​너무도 당연해서 있고 있던 소중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하이틴 영화 같은 밝고 싱그럽고 풋풋한 소설이에요.


책을 다 읽고 보니 초록초록 표지가 딱 어울리네요.


후회와 두려움으로 현재를 한심하게 살고 있는 (저 같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82쪽 인생에서 뒤늦은 ‘if’는 의미 없는 상상에 불과했다. 그 길로 갔더라면, 그 선택을 했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고, 아니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지나간 if는 삶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97쪽 평생을 오직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많은 '나'들이 찰나에 존재했다. 덧없이 사라지고 다시 존재함을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탈피하고 그 껍질을 버리는 갑각류처럼,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셰이커 #이희영 #이희영_셰이커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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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 가토 게이키 세미나 지음, 김혜영 옮김, 가토 게이키 감수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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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어 강사이다. 

한국어 교육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기에 학생들의 국적을 크게 신경쓰는 편은 아닌데 오랜 경험상 국적 때문에 간혹 곤란한 상황이 생기기는 한다.


대체로는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잠깐의 논쟁이지만

강사인 내 입장에서도 교재에 한국 전통 문화가 나올 땐 중국 학생들과 대립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교재에 한국 역사 관련 내용이 나올 땐 일본 학생들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해서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그런 경우에도 학생들이 대놓고 나에게 반대 의견을 피력하거나 항의를 한 적은 별로 없지만, 여러 국적의 학생들이 함께 있으니 최대한 가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나라의 외교방향이나 정책 말고 진짜 그들의 생각이 어떠한가이다. 특히나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일본 학생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소리내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듯하여, 정말로 일본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궁금증을 안고 있었는데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는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생각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 책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 역사로 번져,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 역사에 관계된 일본의 과거 행적과 그것이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한일 관계에 대한 고민까지 확대시킨 일본 학생들이 쓴 책이다.


일본 학생들이 이 책을 쓴 학생들과 같겠구나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한일 문제를 바로보고자 하는 일본인을 대하는 다른 일본인들의 태도,

그리고 일본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통해

그들의 반한 감정의 구체적 모습을 조금은 알게 됐다.


현재를 사는 대부분의 일본인이 사실은 잘 알지 못하고 있어서 큰 관심이 없는 것인데, 그 '관심 없음' 역시 갑이기에 가능하다는 지적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feat.<선량한 차별주의자>)


187쪽 역사를 바라보지 않는 선택이 가능했던 것, 어려운 문제라며 그냥 회피했던 것, '역사와 문화는 별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 이것이 바로 일본인인 나의 특권이었다. 나는 굳이 일본의 가해 역사를 고민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위치였기 때문에, 아무 고민도 없이 순수하게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떤 사회 문제나 범죄를 이야기할 때, 그 잘못의 당사자가 아닌 개개인도 왜 싸잡아 욕을 먹어야 하느냐 억울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억울함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로 '연루'라는 개념을 설명한 것도 매우 기억해둘 만했다. 꼭 한일 관계뿐 아니라 젠더 갈등이나 세대 갈등, 차별 등 모든 문제에 해당된다.


189~190쪽과거의 잘못은 현대인이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그 잘못에서 파생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풍화 과정에 직접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과거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중략)...

그렇게 나는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과거의 역사와 내가 무관계하지 않다는 '연루' 의식을 바탕에 깔고, '차별과 배제의 구조'를 무너뜨리겠다는 자세로 가해 역사를 마주하기로 했다.


일본의 식민지배 사실과 그 이전부터 쌓여온 영토 문제 등을 잘 모르는 일본인을 위해 쉽고 상세히 설명해 놓아서, 한국인인 나 역시도 편하게 정리가 되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사실을 잘 모르는 채 무조건 외면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사실을 잘 모르는 채 무조건 요구하는 것도 바람직한 건 아니니.


하지만 책을 다 읽고도 아쉬움은 있다.


​아니, 이 좋은 책을 한국 사람이 감동 받으면 무슨 소용인가.

일본 사람들이 더 많이 읽어야지. 

일본에서 더 많이많이 읽히면 좋겠다.

 


#우리가모르는건슬픔이됩니다 #한일관계 #해피북스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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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백 요다 픽션 Yoda Fiction 1
차무진 지음 / 요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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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무진 작가님의 <인 더 백>을 읽었다. <인 더 백>은 백두산이 폭발하고 식인 바이러스가 퍼진 대재난의 아비규환이 배경이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배낭에 숨겨 메고 본가가 있는 대구로 향하는 아버지의 힘겨운 여정. ​부산행이 떠오르긴 하는데 부산행은 공포의 대상이 사고를 할 수 없는 무지성 무지능의 좀비인데 <인더백>의 경우 멀쩡히(?) 생각하고 살아 있는 인간이라 더 무섭다.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이 바이러스 감염자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 것부터가 공포 아닌가. ​첫 장면은 주인공 동민의 가족이 동호대교를 건너 도망을 가는 장면이다. 그런데 예정 시간보다 일찍 미사일이 떨어져 아내가 죽는다. 남은 건 아들! 아들을 살려야 한다! ​자식의 안전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위기 상황에서 나와 아이 둘만 남았다면?이라는 상상을 자주 한다. 책과 같은 재난 상황 아니어도, 요새는 묻지마 폭행이나 보복 운전 같은 대처하기 어려운 일도 많으니. 뉴스나 영화를 보다가 종종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만약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가 둘 다 살 수 없다면, 내가 죽는 게 맞는 거 같아. 당신은 꼭 살아남아 하라를 지켜. " ​책에서도 같은 장면이 나왔다. 이렇게 말하는 아내의 심정이 너무도 이해가 돼서 눈물 펑펑. (앞에서 그런 나를 보고 있는 남편은 '왜 또 저래'라는 표정ㅋㅋㅋㅋㅋ) 여성과 아이, 두 약자가 함께 있는 것보다 남성인 아빠가 있는 것이 더 생존 확률이 높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동시에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남편이 남자라는 이유로, 나는 쉽게 죽음을 선택하고 남편에게 죄책감과 책임감을 떠맡기는구나. ​내 자식을 지켜내야 하는 무게감. 아버지라는, 가장이라는 역할의 사명감. 동민이 메고 있는 가방은 그 무거운 사명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눈물로 시작한 <인더백> ​자칫하면 식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에게 잡아 먹힐 수 있는 위기 속에서 어떻게 무사히 아이를 지킬 것인지. 도무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 연속되어 정말 심장 졸이며 읽었는데. 마지막 결말이.... ​엉? 이게 뭐지? 내가 지금까지 뭘 읽은 거지? ​정말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앞장을 펼치게 되는 마성의 소설! 연속 두 번 읽었다! 결말을 알고 다시 읽으면 새롭게 보이는 곳곳의 복선들. 와~~~~~~~ 작가님 美쳤!!!!! ​ <인더백>의 반전이 정말 놀라웠던 건... '반전을 예상할 수 없게 만드는 적정한 선'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다. 근데 그 상황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렇게 세세한 내용은 생략해도 되겠다 여겨서 넘어갔던 부분이 결과적으로는 반전의 핵심. '이상하게'라는 말이 오해를 부를까봐 자세히 설명하자면 ​1. 아이가 어쩜 저렇게 얌전할 수가 있지? 이상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절대 가방 안에서 그렇게 오래 버티고 있기가 힘들 텐데 이상하다 생각했단 얘기. 근데 또 바꿔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극한으로 위험한 상황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패스 ​2. 군인들의 태도가 너무한 거 아닌가? 이상했다. 아무리 그래도 같은 나라 국민인데 동민의 말을 너무 안 믿어주는 거 아닌가 뭐 저렇게까지 막 함부로 대하나? 그리고 애한테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했는데... 전쟁 중의 군인들이 민간인을 대한 태도를 떠올려보면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게 됐고. ​ 근데 그게 반전...^^;; 의심과 인정의 선을 적정하게 설정하셔서 반전이 더 놀라웠던 것 같다. ​(다들 식스센스를 보셨으리라 생각하고) 난 오히려 식스센스는 보면서 반전의 설정을 눈치챘었다. 브루스 윌리스가 그 주인공 아이 외에는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없어서... ​근데 <인더백>은 식스센스와는 또 다른 설정이어서 완전 뒤통수 맞은 기분. 그리고 이 소설은 그저 애타는 부정父情만을 그린 작품이 아니다. ​한강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피난.... 다리에 포격..... 남한과 북한, 정부군과 반군, 너의 선은 무엇이냐 질문하고 편을 가르는 이들. 익숙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연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 인류 보편적인 감정에도 특별히 K 감정 필터가 덧씌워진다.ㅠㅜ ​동민이 '그렇게까지 해서(스포일러를 할 수는 없어서 이렇게 표현)' 아들을 지킨 건, 그 임무가 힘겹고 무겁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그의 삶의 동기가 되었기 때문. 아마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동민은 금방 자기 삶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삼체에서 윈텐밍이 인간은 한 명도 없는 우주에서 기약없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사랑하는 청신을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인 것처럼. (삼체 엄청 우려먹고 있음 ㅋㅋㅋㅋ) ​인간은 목적 없이 살 수 없다. 그 말은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에서라도 목적이 있으면 살 수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동민의 가방 안에는 '삶의 이유'가 들어 있다. 그것이 각자의 선. ​당신의 선은 무엇인가. <인더백>은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지,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 ​​ 373쪽 세상이 이토록 지저분한 것은 각자 지켜야 할 것이 있기에 그런 것이리라. 만약 누군가가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그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리라. 선과 악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그저 각자 소중한 무엇만 존재할 뿐. 아이가 그에겐 그런 존재였다. 아무리 세상에 대고 대답을 물어도 세상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답했다. 아무리 원망해도 합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388쪽 “아나카, 옳고 그름은 말이야. 지킬 게 있는 사람에게는 묻는 게 아니야. 왜 그런 줄 알아? 인간의 선은 각자 다 다르니까. 선을 묻는 네 질문에 내가 대답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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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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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작가님의 새 책 <청혼>


우주에 사는 남자와 지구에 사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배명훈 작가님의 전작인 <화성과 나>의 「김조안과 함께하려면 」이나 「 행성 탈출 속도」 같은 작품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소설인가 했는데, 11년 만에 다시 나온 개정판이라고 한다.


<화성과 나>도 정말 기발한 발상이라 느꼈는데,  '우주 연애'에 대한 생각을 이미 훨씬 오래전부터 하셨다니! 


소설은 우주에서 군복무 중인 주인공이 지구에 사는 여자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이야기의 배경을 파악하기가 좀 어려웠다. 계속 읽다 보면 조금씩 상황이 이해가 된다.


남자가 목성 근처에서 복무를 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지구에 전해지는 어떤 예언서에 우주에서 외계 함대가 공격을 해올 것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 그래서 지구인들은 우주 함대를 만들어 외계 함대의 침략에 대비했는데, 그 예언서가 현실이 되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이 나타났다. 그 사이 궤도연합군의 위세가 점점 커지니까 궤도연합군 사령관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한 지구의 지표면연합이 감찰군을 보내 궤도연합군을 감찰하고 통제한다. 그런데 이들을 공격하는 적은 대체 누구인지, 갑자기 나타나서 갑자기 공격하고 갑자기 사라진다. 어떤 '차원의 문(파멸의 신전)'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은 궤도연합군 사령관을 표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 같다. 궤도연합군 사령관 데 나다 장군은 정말 반란을 계획하고 있을까? 


최근 <삼체>를 읽은 지 얼마 안 돼서 외계 함대의 침략, 우주 전쟁 등의 상황이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삼체가 외계인의 침공에 대응하는 인류의 이야기라면 <청혼>은 '이쪽'과 '저쪽'의 이야기로 느껴진다.


우주인과 지구인. 엄청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연인은 서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남자는 목성 근처의 함대에 주둔하는 궤도연합군 소속. 우주 출신이다. 여자 친구는 지구 출신. 이들이 만나려면 왕복 340~360시간이 걸린다.

(대체 어떻게 연애를 시작한 건지? ㅋㅋ)



“보고 싶었어” 하고 내가 너에게 말했을 때, “나도” 하고 네가 나에게 대답해주기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기억해. 사랑한다는 너의 말에 단 한 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해도 너에게 닿는 데 17분 44초가 걸리고 그 말에 대한 너의 대답이 돌아오는 데 또다시 17분 44초가 더 걸리는 지금의 이 거리를 두고 내가 가장 숨 막히는 게 뭔지 아니? 그건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갑갑함이야. 35~36p.



문제의 근원은 거리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거리라는 이름의 물리적 장벽 말이야. 39p.



사랑의 정도와 상관없이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거리라는 이름의 물리적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물리적 거리는 곧 시간과도 이어지는 거라 진심도 바로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는 그 거리와 시간도 딛고, 중력도 딛고 여자에게 청혼을 할 생각이었으나 전쟁이 의외의 상황으로 흘러간다.


​이들을 노리는 적은 누구일까. 그들은 어떻게 갑자기 나타나서 공격을 하고 사라지는지. 


​궤도연합군 데 나다 장군은 반란을 일으킬 의도가 없어 보인다. 그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군인일 뿐. 그의 목적은 적의 함대를 공격하는 것. 그리고 파멸의 신전을 밝히는 것.


​나는 데 나다 장군이 너무 대쪽같은 사람이어서 그를 경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데 나다 장군을 공격하는 적도 사실은 적이 아니라 미래에서 시간의 문을 넘어 온 지구 소속이라고...



데 나다 장군은 그걸 알고 있었던 거 아닐까. 그럼에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현재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존엄과 결백을 지키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지. 


​데 나다 장군은 주인공이 여자친구에게 청혼하려던 계획을 알고 있어서 그걸 하게 해주려는 거였지만 전투 이후 사건 보고와 처리가 사실과 다르게 돌아가는 것을 본 주인공은 다른 결정을 한다. 감찰군 사령관은 주인공에게 계속 이쪽이냐 저쪽이냐 선택을 강요했다. 주인공의 선택은 데 나다 장군. 주인공의 선택 역시 데 나다 장군의 선택과 같은 이유일 것 같다.


소설의 제목이 '청혼'이라 우주와 지구의 물리적 여건을 뛰어 넘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 청혼은 '하지 못한'이 생략된 청혼이라는 슬픈 이야기.


​마지막 문장이 아련하다.


​반드시 돌아올 거야. 이상하지? 나 같은 우주 태생이 어딘가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이제 나도 고향이 생겼어. 네가 있는 그곳에.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153~154p.


#배명훈 #배명훈_청혼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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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 기억하는 사람과 책임감 있는 사회에 관하여
노명우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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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이후, 그날을 잊은 적 없다.

배만 봐도 생각 나고 수학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생각 나고 매체에서 비슷한 상황, 장면만 봐도 생각 나고 세월호를 언급한 글만 읽어도 눈물이 났다.

서명 운동을 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간접적인 도움이 될까 하여) 관련 책을 사고 416재단에 성금을 내고 해마다 그날이 되면 기억하고 있다는 캠페인에 동참하고 SNS에 피드를 올렸는데

올해의 나의 피드는 '기억하겠다는 말도 죄송스럽'다는 거였다.


올해는 세월호10주기. 벌써 10년이 지났다. 기억은 힘이 세다면서 지난 10년간 뭐가 달라졌는지. 기억이 정말 힘이 있기나 한 건지 절망적이고 무력감이 들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사회학자이자 니은서점을 운영하는 노명우 교수님의 책이다.


왜 쉽게 잊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다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이거 말고도 삶이 너무 바쁘고 치열하니까.

왜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지도 정말 궁금하지만 예상은 할 수 있다.

반복을 막을 힘이 있는 가해자들은 힘없는 국민들의 비극에 관심이 없으니까.

오직 자기들의 부와 권력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내가 궁금한 건, '그럼에도 왜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가'였다.


책에서는 세월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대학살, 난징대학살, 제주4.3, 이태원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힐즈버러 참사 등 국내외의 여러 재난의 사례로 전조 증상과 이후 벌어지는 양상, 결과 등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허리케인으로 인한 침수 등의 자연 재해도 사회적 재난으로 분석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 정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 사회적 불평등이 질병과 사고에도 영향을 미쳐 의료적 차원에서도 사망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남궁인 작가님의 글이 떠오르며 섬뜩했다.


108쪽 깊은 기억은 어설프게 재난을 조사한 후 묻어 버리지 않겠다는, 재난에 대한 성찰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재난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온갖 비난과 2차 가해에 '반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제는 지겹다'는 소극적 반격과 '애초에 잘못 알려졌다'는 부인론... 이게 그저 세월호 참사에만 벌어진 특별히 잔인한 반응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조용히 선동해온 일반적 현상이라는 게 끔찍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을 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재난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공통의 위기감으로 재난의 매커니즘을 중단시키기를 요구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도 답답하긴 했다. 여전히 결정적인 변화의 키는 '가해자'들에게 있다는 말이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요구해도 사과를 할지 말지, 제도를 바꿀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그들이니까. 다만 기억하지 않으면 그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이니 크게 보아 내가 안전해지기 위해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죄와 재발 방지를 위해 행동하는 양심적인 위정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억하고 요구하는 것. 힐즈버러 참사는 진실 규명과 사죄, 규정 변경까지 27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올해 가진 세월호 10주기가 주는 절망과 무력감이 조금은 나아지긴 했다. 


208쪽 용서는 강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용서는 재난을 겪은 피해자의 몫입니다. 피해자가 용서할 때 용서가 이뤄지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용서의 윤리적 우월성을 내세워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용서는 재난의 희생자가 또 다른 재난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그리하여 재난의 재생산이라는 끝없은 악무한으로무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마지막 방법이지요. 



그래, 10년 만에 사과할 인간들이 아니구나. 아직 멀었구나.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때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왜우리는쉽게잊고비슷한일은반복될까요 #세월호10주기 #세월호 #노명우 #우리학교

#기억은힘이세지 #기억하겠습니다 #잊지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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