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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 기억하는 사람과 책임감 있는 사회에 관하여
노명우 지음 / 우리학교 / 2024년 4월
평점 :
2014년 4월 16일 이후, 그날을 잊은 적 없다.
배만 봐도 생각 나고 수학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생각 나고 매체에서 비슷한 상황, 장면만 봐도 생각 나고 세월호를 언급한 글만 읽어도 눈물이 났다.
서명 운동을 하고 노란 리본을 달고 (간접적인 도움이 될까 하여) 관련 책을 사고 416재단에 성금을 내고 해마다 그날이 되면 기억하고 있다는 캠페인에 동참하고 SNS에 피드를 올렸는데
올해의 나의 피드는 '기억하겠다는 말도 죄송스럽'다는 거였다.
올해는 세월호10주기. 벌써 10년이 지났다. 기억은 힘이 세다면서 지난 10년간 뭐가 달라졌는지. 기억이 정말 힘이 있기나 한 건지 절망적이고 무력감이 들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다.
<왜 우리는 쉽게 잊고 비슷한 일은 반복될까요?>
사회학자이자 니은서점을 운영하는 노명우 교수님의 책이다.
왜 쉽게 잊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다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이거 말고도 삶이 너무 바쁘고 치열하니까.
왜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지도 정말 궁금하지만 예상은 할 수 있다.
반복을 막을 힘이 있는 가해자들은 힘없는 국민들의 비극에 관심이 없으니까.
오직 자기들의 부와 권력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내가 궁금한 건, '그럼에도 왜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가'였다.
책에서는 세월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대학살, 난징대학살, 제주4.3, 이태원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후쿠시마 원전 사고, 힐즈버러 참사 등 국내외의 여러 재난의 사례로 전조 증상과 이후 벌어지는 양상, 결과 등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허리케인으로 인한 침수 등의 자연 재해도 사회적 재난으로 분석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 재해로 인한 피해 정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 사회적 불평등이 질병과 사고에도 영향을 미쳐 의료적 차원에서도 사망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남궁인 작가님의 글이 떠오르며 섬뜩했다.
108쪽 깊은 기억은 어설프게 재난을 조사한 후 묻어 버리지 않겠다는, 재난에 대한 성찰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재난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온갖 비난과 2차 가해에 '반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제는 지겹다'는 소극적 반격과 '애초에 잘못 알려졌다'는 부인론... 이게 그저 세월호 참사에만 벌어진 특별히 잔인한 반응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조용히 선동해온 일반적 현상이라는 게 끔찍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을 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재난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공통의 위기감으로 재난의 매커니즘을 중단시키기를 요구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라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도 답답하긴 했다. 여전히 결정적인 변화의 키는 '가해자'들에게 있다는 말이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요구해도 사과를 할지 말지, 제도를 바꿀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그들이니까. 다만 기억하지 않으면 그 고민조차 하지 않을 것이니 크게 보아 내가 안전해지기 위해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죄와 재발 방지를 위해 행동하는 양심적인 위정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억하고 요구하는 것. 힐즈버러 참사는 진실 규명과 사죄, 규정 변경까지 27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올해 가진 세월호 10주기가 주는 절망과 무력감이 조금은 나아지긴 했다.
208쪽 용서는 강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용서는 재난을 겪은 피해자의 몫입니다. 피해자가 용서할 때 용서가 이뤄지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용서의 윤리적 우월성을 내세워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용서는 재난의 희생자가 또 다른 재난의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그리하여 재난의 재생산이라는 끝없은 악무한으로무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마지막 방법이지요.
그래, 10년 만에 사과할 인간들이 아니구나. 아직 멀었구나.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때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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