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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살고싶다는농담 #허지웅
인간 허지웅 님을 좋아해요.
어려운 가정 환경을 무사히 잘 버텨낸,
그 시기의 고생을 그저 지우고 싶은 괴로운 흑역사가 아닌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어 낸,
대견한 남동생 같아요. (누구 맘대로..ㅋㅋㅋㅋ)
저와 나이가 매우 비슷하신데,
정말 나랑 동시대를 산 것 맞나 싶을 정도로 어렵게 사셔서...
내 주위에 당장 생활비와 학비가 없어서 이렇게 힘들게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난 그저 용돈 부족하다고 더 편히 놀고 싶어서 아르바이트 하는 철부지였구나 하는 반성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혼자서 자기 앞가림 잘하고 주관이 뚜렷한 허지웅 님이 되신 거겠지만,
그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끔 (어떤 단어가 적합한지 고민이 되지만) 안쓰러워보이기도 했어요.
저렇게 단단하게 곧게 뾰족하게 외롭게 살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그런데 갑자기 방송에서 안 보인다 싶더니만 혈액암 투병 소식이 전해져 깜짝 놀랐더랬지요.
요즘은 암 완치율이 높다고 하지만 그래도 암은 무서운 병이잖아요.
이분 참 시련이 많구나 안타까웠어요.
인스타그램 팔로잉을 하고 간간히 투병 중 올리시는 글을 읽으며 버텨내길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대중 앞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지요.
예전과 똑같은, 그러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요.
반가웠어요.
힘든 병을 이겨낸 건강한 모습도 반가웠지만
예전과는 달라진 편안한 표정도 반가웠어요.
제가 이전에 느꼈던 그런 뾰족함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됐어요.
달라진 허지웅의 글이요.
작가 허지웅 님을 좋아해요.
무조건 세상은 아름답다, 미래는 희망차다 하지 않아서 좋아요.
고생 한번 안 하고 편히 잘 살아온 것 같은 사람들이 세상은 아름답다 말하는 거 얼마나 우스워요?
자기가 성공했으니까 너도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 강요하는 거 얼마나 거리감 느껴져요?
구체적인 현실 없이 예쁜 말로만 가득 채워 당장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그놈의 '힐링', '위로', '위안' 얼마나 지겨워요?
허지웅 님은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아요.
'현실은 개판이야. 그 개판 속에서 나 이렇게 힘들었어. 그러니 나보다 나중에 사는 너희들은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 너희들이 덜 힘들게 살 수 있게 내 작은 힘을 보탤 거야.'라는 말을 글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태도가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발표한 이번 글에서는 그 태도와 함께 더 너그러워진 마음과 넓어진 시각을 느낄 수 있었어요.
허지웅 작가님의 삶과 글을 응원합니다.
(저보다 훨씬 어른스러우시지만, 이 누나가 매우 아껴요~! ㅋ)
35쪽 여러분의 고통에 관해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기만이다. 고통이란 계량화되지 않고 비교할 수 없으며 천 명에게 천 가지의 천장과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45쪽 살면서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 공정하게 돌려받은 경험이라고는 몸을 쓰는 일밖에 없었다. 그 외에는 노력한 것보다 결과가 훨씬 더 좋거나 나빴다. 이와 같은 경험을 축적해서 쌓아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이기는 경험을 쌓으면 패배해도 주저앉아 비관하지 않고 다시 한번, 이라고 말할 수 있다.
60쪽 그래서 만약에, 라는 말은 슬프다. 이루어질 리 없고 되풀이될 리 없으며 되돌린다고 해서 잘될 리 없는 것을 모두가 대책 없이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만약에,는 슬픈 것이다.
74쪽 부디 평안하기를.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
78쪽 나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름의 기준에 턱없이 모자라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냥 좋은 일을 하면 된다.
90~91쪽 많은 이들이 평균의 삶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고 또 그런 가르침을 자식에게 전수하여 애쓰는 것은 세상이 자신과 다른 것에 얼마나 끔찍하고 폭력적으로 반응하는지에 관해 평생 동안 학습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108쪽 지금은 버틴다는 것이 혼자서 영영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은 조금도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동지가 필요하다.
138쪽 우리는 왜 반복적으로 진영 내에 진영을, 조직 내에 조직을, 가정 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분열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255~256쪽 젊은 날의 나는 대개 불행했고, 앞으로도 불행을 떨쳐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에 잠식되고 싶지도 않았다. 행복한 사람은 거만했고, 거만해서 재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불행에 잡아먹히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골몰했다. 나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불행에 시달린 이들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알고 있었다. 피해의식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피해의식이 만든 괴물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든 이해받을 수 있다고, 아니 이해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불행했으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의 사연이 나의 책임을 대신 져주지는 않는다. 그런 괴물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불행과 함께 살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