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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안녕인공존재
요즘이야 김초엽, 정세랑 등의 이름과 함께 SF소설이라는 장르도 낯설지 않게 다가오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배명훈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어요.
10주년 기념 리커버로 돌아온 <안녕, 인공존재!>예요.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안녕, 인공존재!」는 정말 허를 찌르는 것 같은 반전이 있었어요.
존재란 추상명사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존재'라는 이름의 제품을 발명해서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도 재미있는데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이 제품의 기능이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고
그 방법은 존재의 존재를 없애버림으로써 존재가 사라진 이후에야 존재가 존재했음을 알게 된다는....
말장난 같은 아이러니.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정말로 '존재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는데.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행동과 성과, 즉 어떤 기능을 강요받으며 살고 있잖아요?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무능한 인간,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받고요.
하지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존재' 자체에 있는 게 아닐까.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열정의 대상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의지의 대상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꼭 이 작품 「안녕, 인공존재!」뿐만이 아니라 책에 수록된 작품 전체에서 작가님은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크레인 크레인」에서는 은경이 모계로 전해지는 '무당'과 같은 사람인데 그가 믿는 신이 크레인을 주관하는 기중신이잖아요. 그리고 옛날 사람들의 유령을 통해 역사를 증명한다는 고고심령학도 너무 재미있고요. 이 고고심령학이라는 설정이 너무 흥미로워서 관심이 많이 갔는데 이 개념을 확장시켜서 이후에 또 작품을 쓰셨는지 『고고심령학자』라는 장편소설도 있더라고요. 꼭 읽어보고 싶어요.
아직까지 천동설을 믿는 학자들이 있다는 설정의 「엄마의 설명력」이나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얼굴이 커진다는 설정의 「얼굴이 커졌다」도 기발한 상상력도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이지만,
제가 그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요? 묘한 부조화라고 해야 할까요?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인 사건을 이야기하는 듯한 말투로, 황당무계한 설정의 사건을 서술하는 것도 재미있고
엄청나게 과학적으로 진보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무속 신앙과 결합시킨 것도 그렇고.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 어긋난 통일성과 개연성이 주는 유머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암튼 그런 대조적인 면이 정말 신선하고 색다르고 재미있었어요.
아니 그런데 이게 10년 전 소설이잖아요!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그 유쾌 발랄 통쾌한 작품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이 책의 제목 <안녕, 인공존재!>의 안녕은 '굿바이'의 뜻일 테지만 제게는 이 책의 제목이 이렇게 보이네요.
헬로우, 배명훈 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