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케하라 마모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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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지 몰라도.. 남의 단점은 잘 꼬집어 내는게 인간의 특성이 아닐까? 내 단점을 알지라도 자기합리화나 남들에게 들킬세라 덮어버리기 일쑤다. 이케하라씨가 쓴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공감하는 바는 아니지만 한국인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배어버린 것들이 외국인들의 눈엔 이상하게 비칠 수 있겠다고 수긍이 갔으며 나역시 한국의 문제점이라고 느끼던 부분을 그역시 꼬집어 낸 부분에서는 수치스럽기도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책의 내용의 상당부분은 사실 쓰고 쓰리다. 남의 충고를 받아들일 아량이 없다면 개인이건 국가건간에 발전이 없을 것이다. 몸에 쓴 약은 입에 쓴 법이다. 받아들일건 받아들이고 고치건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우리네의 단점들이 하루아침에 쉬이 고쳐질 것이라고는 보지 않지만 타인들의 쓴 소리를 들을 귀마져 열어두지 않는다면 우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개구리가 되고 말것이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남의 쓴소리도 들을줄 알아야한다. 물론 소귀에경읽기가 되어서는 아니되겠지만 말이다.

나 역시 과거속에 일본은 끔찍스럽다. 그리고 지금도 제대로된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도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과거의 피해의식과 일본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났음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인이 일본인을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 일본전역에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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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 컬러판
생떽쥐베리 / 문예출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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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난 후에도 곧잘 어린 시절을 더듬는 버릇이 있다.. 추억 물론 이런 과거를 되씹는 일을 누구나 하겠지만.... 내 그 어린시절의 추억속엔 이 어린왕자라는 책이 있다.. 그렇게 다시 손에 든 어린왕자.. 물론 십수년전의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었는지는 소상히 기억할 수없다.. 저런 모습의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그려보곤하던 내 미래의모습... 과연 난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살면서 언젠가 어린왕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 아인 나를 어떻게 그려넣을까...

어린왕자와 마주칠까봐 뒷골목으로 숨어 다니는 사람이 되어버린건 아닐까.. 나역시 그저 그런 별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것 같다. 십수년이 흘러도 여전히 이 책속의 왕자는 어린왕자인데.. 그 시절의 어린소녀는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언젠가 내게도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도 어린왕자와 친구가 되겠지... 그러면 아이에게 오래전 엄마에게도 어린왕자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고 어린왕자와의 추억을 이야기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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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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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에 학원...토토.. 고바야시 선생님...야스아키... 애석하게도 나에겐 토토만 하던 시절에 그런 추억이 없다. 학교가 나에겐 책임감과 의무감은 길러 주었을지 모르지만..
자주성과 창의성을 길러주진 못했던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역시 잊고 살았던 지난날을 잠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생각하고 어른들이 아이들의 생각의 한계라고 단정 짓는 부분을 초월해서 생각한다는 걸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엔 잊고 있었다.. 나역시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그래서 못내 씁쓸하다.
그 시절 한번쯤 선생님이 되어보겠다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때 늘상 하던 생각이 어떤 선생님처럼 되어야지 보다는 저런 선생님은 안되어야지라고 생각했었다. 이땅에도 고바야시 선생님 같은 분이 많이 있는데 내가 만나지 못했다면 그것은 나만의 불행일 수도 있겠다...

장애아들과 일반 아이들과 언제나 격리 해 놓는 학교는 아마도 영영 장애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일반화 시킬 수 없을지도 모르며 자신의 동네에 장애자 시설건립을 반대하는 집단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이는 행동 또한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참 가슴이 아픈 현실이다. 그런면에서 고바야시선생님의 장애아들에 대한 배려는 참으로 존경스럽다.

학교란 곳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곳인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잘 알것이다.. 지금의 우리의 현실은 과연 아이들을 잘 감싸안고 꿈을 키워주고 있는 곳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교권을 바로 새워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 중에 교사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되묻고 싶다. 정녕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 교사와 학생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교권을 운운하는 많은 이 나라의 교사들이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학생들을 키워내고 있는지 역시 의문스럽다. 물론 그것이 어찌 교사만의 탓이겠느냐마는..

교권은 부르짖는다고 새워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고바야시 선생님을 보면 그가 참 교육을 실천하는 참된 교육자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것은 그의 행동에서 저절로 우러 나오는 것이다.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꿈을 키워 줄 수 있는 진정한 교육인.. 물론 우리나라에도 그런 교사가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교육자를 많이 양성해내지 못하는 이 나라의 잘 못된 교육현실 역시 참으로 걱정스럽다. 도모에 학원같은 학교가 대안학교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어디에서나 쉬이 찾아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정녕으로 바란다. 그리고 고바야시 선생님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고 또 그들에게 우리의 어린 꿈나무들을 안심할 수 있는 날이 오기 또한 바란다..

이 나라에 도모에 학원과 같은 이상학교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은 역시 우리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더 이상 학교가 아이들의 꿈을 좌절 시키거나 아이들을 몰아내는 곳이 아니었음 한다.. 오늘도 창가를 서 있을 아이들과 그들을 교육하는 많은 교육자들과 함께 해야 할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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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사랑 -상
양귀자 지음 / 살림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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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읽은 이 두권짜리 소설은 지금 내겐 한권만 남아 았다.... 누군가에게 빌려주었던 두권의 책은 한권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읽을 수도없게 되어 버린 절름발이 책으로 내게 남아있다..

지루하거나 막힘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재미있게 읽거나 오래 기억되는 소설 또한 아니었던것 같다.. 그저 소녀적 감성이 남아 있던 때에 읽었던 글임에도. 성하상의 미련한 사랑을 이해하기엔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탓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그녀의 소설을 읽을수록 나도모르게 묘한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일까.. 한번 읽은 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꽂아 두었었다. 넘쳐나는 책꽂이를 정리하기 위해서 보지 않는 책들과 마주쳤다. 간직하기엔 절름발이가 되어버린 책을 다시 제 짝을 맞춰 주어얄 것 같고.. 버리기엔 그책이 소설속 오인희가 받았던 버림같아서 그럴 수는 없었다.

어쩜 다시는 이책을 읽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간직해 볼 생각이다. 혹시 아는가 천년이 지난 후에 성하상과 오인희의 사랑처럼 이 책 역시 잃어버린 제 짝을 찾게 될지도....
그럼 난 다시 천년이 지난 후에 이 책을 읽고 그때의 감상을 쓰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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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자유문학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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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연인.......읽으면서 어느순간엔가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들이 주장했던 양자이론을 떠올렸다. 물론 양자이론은 아직은 수수께끼같은 이론이지만...

허전하다고 해야할까. 쓸쓸하다 해야할까. 하루키 특유의 허무함도 들어있다. 이야기는 한 젊은 작가지망생의 동성애에서 시작하지만, 이야기는 역시 동성애라는 하나의 사회적 난관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얼마만큼의 힘을 쏟아야 하는지,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마음의 정합도 찰나일뿐... 우린 이내 각자의 궤도를 돌아야 한다. 근원적 외로움이다. 어쩜 내내 풀지 못하고 수수께끼로만 남을 것 같은 근원적 외로움... 이제 어쩜 타인에게 날 이해해 달라는 말따윈 할 수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각자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치명적으로 버려졌다해도, 아무리 중요한 것을 찬탈당했다 해도, 또는 한장의 피부만으로 남겨놓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렸다 해도 우리는 이렇게 묵묵히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나역시 그렇게 생을 살고 있다.
그렇다 사라지지 않고 살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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