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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 역시 그렇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몸속의 수분들이 빠져 나간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아직 작가가 살아낸 세월의 절반도 살아내지 못한 자로써 하기엔 좀 섣부른 말일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 느낌이 그랬다. 바싹 마른 수분이 없어진 나뭇잎 같은 느낌. 지극히 평안한 안정감은 인간에게 위태로움을 도전이나 새로움으로 보이게 하나보다. 문득 똑같은 일상을 살다가 보면 일탈을 꿈꾸게 되니까. 문득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 나무위에 올라가고 싶고. 매일같이 드나드는 집과 일터가 지겹도록 고통스러워지면 기청을 찢을 듯 울리는 기차의 기적소리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유토피아로 안내하는 소리로 착각하기도 하고, 매일먹는 밥이나 김치가 물리면 티비속의 어느 오지인들이 먹어대는 우유에탄 양의 피가 먹고 싶어지도 한 것처럼. 그러나 그 아름답던 구슬같던 처녀시절의 애틋한 첫사랑을 떠올림에 있어 작가는 아무런 물기도 없는 이토록 마른 글을 써내려 갔는가 싶게 섬득해졌다. 그게 정말 세월의 짓이라면 그러면 내 몸을 빠져 나가는 이 수분들도 빠져 나갈 수 없게 구멍구멍을 막아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는 순간 심한 갈증에 물을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