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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 지나치게 감명깊게 읽은 책의 리뷰는 더욱 써지지 않는.. 머릿 속에 마구 얽혀있는 감정의 실타래를 글로 정리하는 그 순간, 내가 느낀 그 감정들이 손을 통해 스르륵 빠져나가 버릴 것 같은 그런, 조금은 우습기까지 한 생각에 조바심이 나서 리뷰를 차마 적지 못하고 말을 아끼게 되었던 그런 글들.. 윤수와 유정의 행복한 시간에 몰래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만 지금이 딱 그런 경우에 속한다.
먹먹한 가슴이, 목이, 머리가 글을 읽는 내내 아팠던.. 정확히 1년 전에 읽고 또 읽고를 반복한 책이었다. 앞서 말한 그런 감정 때문에 마지막으로 책을 놓고도 한 달만에야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다. 내게 있어서 하루 중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은 새벽이다. 하루의 모든 일과를 마치고 비로소 나 혼자만의 세상이 되는 그 시간, 더불어 다음날이 휴일이라면 더할나위없이 좋겠다. 그렇게 사방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기 까지 한 새벽에 또 한번 마음을 울려주는 글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세 명을 살해한 사형수와 세 번씩이나 스스로를 죽이려 했던 여자. 둘 중 누구도 처음부터 만남을 달가워하진 않았지만 삶의 마지막을 본 여자와 똑같이 삶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는 그는 서로의 공통점을 어느순간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마치 각자의 손목에 비슷한 형태로 남아있는 그 상처 자욱이 가슴으로 옮겨간 것 처럼...
처음부터 악한 사람도, 끝까지 악하기만 한 사람도 없다. 단지, 저질러진 행위와 결과만으로 "살인자"란 이름을 붙이고 그 외에 우리는 아무것도 보려하지 않는다. 살인이란 정의 아래 우리는 원인을, 이유는, 과정 '따.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왔다. 이해하기보단 그렇게 규정짓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덮으면서 내내 날 멍하게 만들었던 건.. 사형제도 존폐론에 대해 사형제도를 강력히 지지했던 고등학교 때 나의 리포트가 계속해서 멤돌았기 때문이다. 7년이나 지난 지금도 '사형수나 범죄에 대한 미화'와 '인간의 존엄성' 사이의 그 얇디 얇은 벽은 날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 간단하지만 쉽지는 않은 진리를 한번쯤 깊게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본질이 어떻든간에 "생명"이란 것 자체만으로도 그만한 가치는 충분할테니까.
사형제도는 그 벌을 당하는 자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이다. 정신적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 동안 육체적으로 생명이 다하지 않은 제 몸뚱이가 둘로 잘리는 절망적이고도 잔인한 시간동안 그 형벌을 당하는 사형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른 품위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직 진실이라는 품위라도 회복할 수 있도록 이 형벌을 제 이름으로 불러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지 인정하자. 사형의 본질은 복수라는 것을. <알베르 카뮈 - 단두대에 대한 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