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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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친구들끼리 모이면 우리는 왜 이토록 하등 쓸모가 없는 직업을 갖게 됐을까 하며 한탄을 늘어놓곤 한다. 우리는 어쩌다 편집자 따위가 됐을까, 사람은 역시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래도 기술과는 거리가 멀잖아, 이번 생은 망했어, 아마 우린 안 될 거야, 하는 식의 자조 섞인 탄식이 흩어지고 나면 헛헛함을 채울 것은 그저 눈앞에 있는 치킨과 맥주뿐이려니 하며 다같이 쨘 하고 목구멍을 열어 맥주 한 사발 꿀꺽꿀꺽 삼키고 크게 한 번 트림을 꺼억 하고 나면, 다시, 그러게 어쩌다 우린 편집자 따위가 됐을까 하는 자조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하는 편집자 '따위'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가 외에는 하등 쓸모가 없는 직업이라는 것이며, 그러니까 이민을 가면 곧장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밖에 없는, 여태까지 쌓아온 커리어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그런 직업이라는 얘기다. 자국어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전문성을 발휘해야 하는 직업은 다른 언어권 국가에서 살게 됐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 된다. 가령 의사나 프로그래머, 요리사, 회계사 같은 직업들은 언어와 상관없이 세계 어딜 가나 그 직업을 계속 이어서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데, 편집자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살겠어서"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편집자라는 직업은 그렇다. 


우리는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그것을 그만하거나, 그곳을 떠난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이곳에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요즘들어 부쩍 이민을 꿈꾼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냥 단순히 여기서 살기 팍팍해서가 아니라,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제대로 살고 싶어서.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나는 요즘 단순히 '삶이 힘들다'를 넘어서서 국가가 전혀 내 삶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이민을 생각한다. 국가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억압하고,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 발목을 붙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우리 삶을 힘껏 끌어당긴다.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무섭고 공포스러운 아침이 매일 계속된다. 삶이 게임처럼 연습하고 훈련해서 레벨업이 가능한 것이라면 조금 더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삶의 각 단계마다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장난 낙하산을 짊어진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의 순간에도 보조낙하산을 펼칠 수 있다면 그 추락을 조금쯤은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나라는 연습하고 훈련해도 만렙을 찍을 수 없고, 도움닫기의 기회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으며, 보조낙하산은 코인을 넣고 돌려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에서 탈출하는 방법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민을 시도하는 주인공 계나에게 어느 누구도 쉽게 손가락질할 수 없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건 똑같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보다 여기서 자국민으로 사는 게 훨씬 낫다, 그래봤자 너는 2등 시민이 될 것이다, 따위의 비난과 조언이 그저 정신승리 주문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떠난다는 것이 남은 자들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선택했을 뿐이다. 인생의 수만 가지 선택지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이따위 한국을 떠나버리자'고 권장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신이 행복이라고 믿고 있는 것의 본질이 뭔지 한번쯤 들여다보라고 권유하는 것에 가깝다. "이게 사는 건가"라는 자조가 아니라 "이게 사는 건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자문까지 이어져야 이렇게든 저렇게든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로 이어진 삶의 다양한 풍경들에는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 없다. 주인공 계나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선택에 대한 설명 또는 해명으로 채워져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난 이렇게 살기로 했어, 왜냐하면…. 스스로에게 "왜냐하면"을 던지기 시작하면 마법처럼 삶의 선택지가 많아진다. 혹은 왜인지도 모르고 지나왔을 시간들에 수많은 의미가 생겨난다. 계나가 끊임없이 '내가 왜 호주에 가서 살기로 했냐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래서 좋았다. 




* 비관에 빠진 사람들의 눈을 한번에 사로잡는 제목빨(!)에 비해 소설은 생각보다 싱거웠다. 하지만 이 작가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간단히 넘겨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읽게 된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은 늘 그런 지점에서 상쇄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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