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파업, 30대 여자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
위선호.윤단우 지음 / 모요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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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 혼자 살 집을 구하면서 '유령'이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같이 살던 언니, 오빠와 흩어져 살게 되면서 홀로 살 집을 구해야 했던 나는 제일 먼저 SH공사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임대 아파트나 쉬프트 같은 장기전세 주택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국가가 제공하는 이 달콤한 서비스에서 결혼하지 않고 부양가족이 없는 20대 후반의 여자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1인 가구는 추첨 대상의 가장 후순위였고, 아무리 열심히 주택청약저축을 부어도 현실적으로 16평짜리 임대 아파트조차 '추첨당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원룸으로 눈을 돌렸지만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비싼 전세금을 충당할 수 없어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역시 결혼하지 않고 부양가족이 없는 20대 후반의 여자에게는 저금리 전세자금대출의 문조차 굳게 닫혀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유령'시민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1인 가구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지만 국가는 그들을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집을 얻고 대출을 받는 현실적인 문제부터 결혼하지 않는 여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까지 어느 것 하나 매끄럽지 않다. 마치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인생이 완성되지 않고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시선 때문에, 30대 미혼 여성들은 안팎으로 괴롭다. 소위 '때'를 놓친 30대 미혼 여성은 최근 심각한 출산율 저하의 주역으로 손꼽히면서 이제는 탄압의 대상으로까지 떠올랐다. 결혼과 동시에 잃어버릴 것들이 두려워 스스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이나 결혼은 하고 싶지만 여러 요인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 모두에게 적용된 국가와 사회의 억압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이 책의 저자들은 30대 미혼 여성 50명을 직접 만나, 그들이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에 대해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었다거나, 속물 근성이나 이기심 때문이라거나, 결혼 제도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는 식으로 뭉뚱그려지는 사회적 편견에 대항해, 개별적 심층 인터뷰를 통한 내밀한 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50명의 여성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과 사건들을 갖고 결혼 유예 혹은 포기의 이유를 털어놓는다. 그녀들이 고백하는 결혼이란,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토끼 같은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아가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들이 결혼을 망설이게 되는 공통적인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결혼 제도가 가진 모순과 불합리성 그 자체에 있다. 전통적인 개념의 결혼 제도가 가지는 계급성은 여성을 남성의 가족에 ‘귀속’시키면서 며느리라는 역할을 부여한다. 이 역할은 기존의 삶에서 일정 수준의 자율성을 앗아가고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는 이제 개인의 의지만으로 움직일 수 없다. 아이를 출산하게 되었을 때 여성이 감내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고, 부양에 따른 경제적 압박 또한 함께 짊어진다. 이 경제적 압박은 양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단계부터 서로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을 용인할 수 있느냐는 민감한 기준이 작동하고, 결혼식과 살림살이 장만, 살 집 마련 등 당장 닥친 현실적인 요소 하나하나가 결혼에 대한 장벽으로 작용한다.
 
21세기의 30대 미혼 여성들은 더 이상 이런 장벽들을 그저 감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굳이 이 모든 요소들을 극복하고 인내하면서까지 결혼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도 하고,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변화를 극복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여력도 없다. 그리고 결혼이 정말 ‘행복한 삶’에 다다르는 길인지에 대한 확신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주로 기혼 여성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분 단위로 수십, 수백 개의 글이 올라온다. 대부분 남편의 불륜, 자녀들의 사춘기, 시댁과의 갈등, 난항에 빠진 육아,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토로, 이혼 고민 상담들로 도배된 주부들의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결혼의 이면에 이토록 엄청난 갈등과 고통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세상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결혼’이라는 제도에 집착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더러운 빨랫감을 뒤로 감추고 사회가 규정한 ‘정상의 삶’만을 강요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진 다층적인 진실을 부모 세대를 통해, 혹은 스스로의 사회적 성장을 통해 이미 충분히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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