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토익 만점 수기 -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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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리 밝혀두자면, 나는 토익 점수가 없다. 그러니까, 토익 시험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토익은 물론 공인 영어 점수라는 게 없다. 흠흠.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흔치 않을 터인데, 신기하게도 남편도 토익 점수가 없다.) 물론 시험을 보겠다고 교재를 들여다본 적은 있다. 토익, 토플, 텝스 모두! 실제 시험을 치뤄보진 않았지만 공인 영어 시험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거라는 건 알고 있다. '시험'이라는 건 어떤 시험이든 패턴이 있다. 문제 유형이 있고, 기출 문제가 있고, 변형이 가능하지만 기본적인 규칙이 있고, 기준이 있다. 그래서 시험을 목적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공부'가 아니라 '훈련'을 하게 된다. 이런 유형이 나왔을 땐 이렇게, 이런 소재가 자주 나오니 요것도 풀어보고 저것도 풀어보고, 주로 이러저러한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니 이러저러한 점에 유의해야 하고, 뭐 그런 것들을 훈련한다. 언어 시험일 경우 특히 그렇다. 그러니까, 주객이 대단히 크게 전도된다는 것이다. 

 

공부가 아닌 훈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미드를 봤다. 미드의 재미에 빠지면서 토익, 토플 책들은 그냥 던져버렸다. 이까이꺼 점수 있다고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토익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은 다른 모든 스펙은 모두 완벽한데 토익 점수만 없는 사람들이지, 원래 아무런 스펙이 없는데 토익 점수만 달랑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 하나로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언어를 시험이 아닌 언어 그 자체로 대하자 급격히 재미있어졌다. 시험을 봐야 한다는 강박도, 목적도 없으니 그저 신기한 언어를 즐기면 그만이었다. 하루 종일 미드를 드립다팠다. 법정드라마를 볼 때는 'with all due respect your honor' 'overruled' 'sustain' 'prosecution' 같은 말들을 자연스럽게 지껄이게 되고(자주 나오니까!), CSI 같은 걸 볼 때는 'gunshot residue' 'cause of death' 'autopsy' 'first-degree murder charges' 'prime suspect' 같은 말들이 저절로 들린다. 말랑한 가족 드라마를 볼 때는 들리는 대로 받아 쓰기를 해봤고, 자막 없이 봤다가, 영자막으로 봤다가, 한글 자막으로 보기를 반복해보기도 했다. 가끔 오디오 파일을 받아서 지하철에서 듣기도 했다. 큰 욕심 안 부리고 한두편 정도만 자주 반복해서 들었더니 드라마 장면과 이야기가 거의 외워지다시피 했다. 사실 이렇게 몇 가지 시도를 해본 건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는데 자막이 안 올라와서 다음 편을 못보게 되면서부터다. 젠장, 자막없이 미드를 볼 수 있다면 디씨 미드갤에서 하루죙일 자막을 기다리며 똥줄이 탈 일은 없을 텐데...이런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학습욕이 솟았다는 거다. 물론 이것은 언어 학습의 치명적인 결함인 '지속성이 없다'는 것 때문에 영어 실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필요하다' 생각되면 시키지 않아도 다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나의 경우처럼, 폐인처럼 하루죙일 미드를 보고 싶은데 자막이 나의 감상 속도를 못따라와! 그럼 별수없다. 자막 없이도 미드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하는 거다. 어릴 때부터 꿈이 외신기자야! 다뤄야 하는 언어 자체가 외국어라면 당연히 열심히 들여다보게 되겠지. 또는 외쿡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나으 커리어나 나으 꿈에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해! 역시나 당연하게도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근데 문제는, 그 언어 습득의 툴이 '시험'이라는 형태가 되버리면 우리는 주객이 대단히 전도되는 상황에서 시험을 위한 시험에 빠져버린다는 거다.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언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가 아닌 취업을 위한 정량화된 수단으로 전락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신랄하게 뒤집고 까고 풍자하는 소설이다. 제목만 보고 정말로 만점 수기인 줄 알고 비법을 찾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외의 수확을 거둘 수도 있다. 내가 지금 드립다파고 있는 이 영어 시험이라는 게 얼마나 웃기는 짓인지를 절절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 정도? 소설의 주인공은 토익 만점을 위해 맨몸으로 호주에 입성한다. 어학원은 개뿔. 현지에 이렇게나 많은 원어민 선생(!)들이 있는데 그런 건 뭐하러. 우연히 대마초를 배달하게 된 주인공은 이참에 바나나농장으로 위장한 대마 농장에서 대마초를 재배하고 판매하는 스티브의 인질이 되기로 한다. 언어를 배우려면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을 해야지. 어찌보면 평화롭기만한 인질 생활 속에서도 주인공은 끊임없이 생활 자체를 '토익화'하는 데 안간힘을 쓴다. 그의 모든 생활은 part1, part2, part3...로 만들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토익 문제집을 구할 방도가 없다. 방법은 하나. 내가 출제자가 되는 것이다. 토익 출제자가 되는 건 수동적인 수험생 신분에서 과감히 이탈하는 길이다. (...) 나는 part1 문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 바나나 농장에서 일하는 스티브의 모습을 찍는다. 액정에 뜬 이미지를 앞에 두고 곰곰이 생각했다. 사진 중심엔 스티브와 바나나 나무가 클로즈업되어 있다. 토익 문제 출제자라면 이 사진으로 어떻게 문제를 만들까? 10분간 고민한 뒤, 보기를 만들어보았다.

 

(a) The man is picking banana flowers (남자는 바나나 꽃을 따고 있다).

(b) The man is drinking a cup of banana juice (남자는 바나나주스 한 잔을 마신다).

(c) There are roses under the banana tree (바나나 나무 밑에 장미가 있다).

(d) The man is wearing a hat (남자는 모자를 쓰고 있다).

 

보기를 만들면서, 나도 모르게 사악한 마음이 들어 깜짝 놀랐다. 나는 '웬만한 놈들은 여기서 틀려라'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보기 (a),(b),(c)는 사악한 수작의 산물이다. 일부러 함정을 팠다. 즉 '바나나'란 단어를 넣었지만, 사진 속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문장이다. 특히 보기 (a)에는 '따다(pick)'란 동사가 있어 더욱 헷갈린다. 

- p75 '평양식 물냉면' 

 

나는 주인공이 생활의 모든 것을 꼼꼼하게 토익 문제화하는 장면에서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렸지만 사실은 대단히 슬프고 씁쓸했다. 주인공은 사실 누구보다도 언어를 가장 바람직한 방법으로 습득하고 있으며 스티브 역시 '너처럼 영어를 잘 하는 어학연수생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주인공은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토익 만점을 얻기엔 '아직 멀었다'고. 스티브는 말한다.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읽고난 직후 읽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장편으로서의 밀도도 좀 떨어지고, 아직은 신인이라 곳곳에 허술한 구석들이 조금 있지만 멋부리지 않고 힘차게 죽죽 써내려간 느낌이 좋았다. 다음 작품에도 블랙 유머가 촘촘하게 박힌 소설을 써줬으면 좋겠다. 책 날개에 쓰인 작가의 말처럼, 웃으면서 따귀 한 대 맞는 서비스도 함께. 

 

"이 소설은 코미디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한국인이라면 독서 후 약간의 수치심이 느껴질 것이다.

이 소설은 그들이 따귀 한 대 맞은 느낌을 받도록 설계됐다.

이 또한 나의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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