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집짓기 - 땅부터 인테리어까지 3억으로 좋은집 시리즈
구본준.이현욱 지음 / 마티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얼마 전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게 됐다. 나는 아파트에 살아보는 게 소원이면서, 다시 단독주택에 살게 되는 것이 꿈이었다. 아파트에 살고 싶었던 것은 깨끗하고 쾌적하고 편리하고 안전한 집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고, 다시 단독주택에 살고 싶었던 건 서울의 다세대주택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생각이니 현재 다세대주택에 사는 사람들, 발끈하지 마시라.

19살까지 살았던 고향의 단독주택에서는 무려 10년동안 살았고 부모님은 아직도 그 집에 살고 계신다. 엄마는 프로 정원사처럼 매일 마당에 꽃나무를 키우고 비파나무에서 비파를 땄으며 땅을 파고 연못을 만들어 붕어를 채우고 부레옥잠을 띄웠다. 그 작은 연못이 조용히 고여 있는 게 못마땅했는지 모터를 달아 작은 물레방아를 만들어 물이 계속 순환하도록 만들었다. 붕어들은 부레옥잠의 뿌리 밑에서 연신 입을 뻐끔뻐끔거리며 물레방아가 만들어내는 산소를 먹으며 잘도 자랐다. 연못 주위에는 장미로 아치를 세우고 그 안에 성모상을 놓았다. 마치 성당처럼.

이게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하니까 대단한 정원처럼 느껴지는데 이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마당은 정말 좁은 공간이었다. 그냥 담장과 집 사이의 간격이 조금 넉넉한 정도의 느낌이랄까. 하지만 엄마는 우리 자식들을 키우듯 마당을 키우고 가꾸는 재미로 살았다. 그 마당에서 나도 흙을 만지며 자랐다. 겨울에 콩을 심어 키우겠다고 흙바닥에 강낭콩을 넣고 나무젓가락으로 기둥을 세워 비닐을 씌우고는 "이게 비닐하우스군" 하며 흡족해하거나, 연못에 빠져죽은 참새를 꺼내 마당에 묻고 나뭇가지를 잘라 십자가를 만들어 세워주기도 했다. 무려 3년 동안이나 나는 참새의 제사를 지내주었다. 사탕과 과자를 사다가 제사상도 차리고 절도 했다. 그건 뭔가 나만의 비밀 의식 같은 거였다. 너희가 모르는 뭔가가 우리집 마당에는 있지.   
 

물론 사춘기가 되면서 나도 친구들처럼 깨끗하고 쾌적한 아파트에 살고 싶어졌다. 어느 순간인가 엄마한테 끊임없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졸랐는데 엄마는 마당있는 집이 좋기도 하고 돈도 없으니 이 집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고 했다. 대학에 가면서는 기숙사에 살게 됐는데 그곳은 그냥 수용소였다. 상자같은 방에 침대 두 개, 책상 두 개, 옷장 두 개가 대칭으로 마주보는 구조에 창문이 하나 달린 기숙사는 그야말로 수용소가 따로 없었다.

2년을 지내다가 결국 학교 앞 원룸으로 이사를 했는데 방 안에 씽크대가 있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자는 중에 씽크대에서 바퀴벌레가 기어나오기도 했고 벌집처럼 다닥다닥 방들이 붙어 있어서 정말 숨을 죽이고 살아야했다. 언니들과 함께 살던 집은 반지하 다세대주택이었다. 그 집에서 1년만 더 살았더라면 우리는 곰팡이에 질식해서 어디가 고장이 나도 한참 고장났을 것이다. 매년 여름이 돌아오면 벽에 방습지를 붙이고 물방울이 고이면 닦아내는 게 일이었고, 보일러가 집 외벽에 붙어 있어서 겨울만 되면 꽁꽁 얼어붙어 뜨거운 물을 갖다 부어야했다. 다시 이사간 곳도 빌라의 탈을 쓴 다세대주택이었는데 그나마 2층이고 볕이 잘 들어서 곰팡이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다세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그 동네는 길을 걷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건너집에서는 매일같이 형제들이 물건을 집어던지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좀도둑이 가스관을 타고 올라와 집을 뒤집어놓기도 했다.
 

한옥에도 살아봤다. 동네는 고즈넉하고 더없이 좋았다. 혼자 살기에 방도 몹시 넓었고 마당은 없었지만 마당처럼 정겨운 작은 골목이 있었다. 그러나 집이 너무 오래되다보니 천정이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에 밤마다 귀를 틀어막아야했다. 그리고 자다가 천정에서 바퀴벌레가 떨어져 새벽 3시에 혼자 난동을 부린 적도 있다. 지금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바퀴벌레는 여전히 출현해주고 계시며, 짜르가 짖을 때마다 입을 틀어막고 "안돼! 조용히 해!"를 외친다. 아이라도 생기면 나도 다른 아파트 엄마들처럼 "안돼! 뛰지마!"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내게 완벽한 집이란 없었다. 그래도 내게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엄마가 연못을 만들고 꽃나무를 키우고 내가 흙을 만졌던 그 단독주택이라고 말 할 것이다. 겨울이면 보일러를 녹여야 하고 곰팡이를 닦으며 방습지를 붙이고 좀도둑이 가스관을 타고 올라오는 그런 집 말고, 마당에서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은 그 단독주택 말이다.



 여기 단독주택의 꿈을 무려 수도권에서 이루고 산 두 남자가 있다. 땅을 사고 집을 짓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드니 한 필지의 땅을 사서 작은 집을 두 채 나란히 지어서 사는 데에 3억. 절대적인 수치로는 3억도 뉘집 개 이름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 살려면 거의 10억 가까운 돈이 필요한 현실에서 3억짜리 단독주택은 꿈의 수치다.

건축가와 신문기자인 두 남자는 한 필지에 두 집이 있다고 해서 '땅콩집'이라 이름 붙인 단독주택을 지었다. 사람들이 흔히 갖는 단독주택에 대한 온갖 편견들, 그러니까 주택은 춥다, 보안이 신경쓰인다, 관리가 힘들다, 돈이 많이 든다 등의 편견들을 무찌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공을 들인 모든 이야기가 <두 남자의 집 짓기>에 실려 있다.



워낙 기사도 많이 나고 방송에도 많이 나와서 책에서 뭐 할말이 더 있겠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모든 기사와 방송들이 책이 나오면서 쏟아진 것이니 엑기스는 바로 이 책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주택은 춥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단열에 목숨 건 건축가 이현욱은 집을 목조 주택으로 지었다. 목조주택은 패널이 다 규격화되어서 제작되어 있기 때문에 조립만 하면 아주 간단하게 지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집 두 채를 짓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한 달.



전용 면적은 얼마 안 되지만 3층 다락방까지 갖춘터라 방이 4개에 욕실도 2개다. 이런 맙소사. 꿈의 집이잖아.



두 남자의 집 짓는 과정 속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가족들이 모두 직접 마당을 일구는 풍경이었다. 비싼 돈 들여 마당에 거대한 정원을 꾸리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직접 흙을 만지고 돌과 나무를 나르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내손으로 만들어나가는 집이라는 추억을 선사한 이 훌륭한 아빠들. 이 아이들이 자라면 나처럼 "흙과 마당의 추억"을 한아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처음엔 돈이 부족해 업체에 맡기지 못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마당을 가꾸고 담장을 만들어나간 게 더없이 좋았다는 아빠들.



책은 무작정 단독주택 예찬만 펼쳐놓지 않았다. 땅콩집을 짓게 되기까지의 의사결정 과정, 실질적으로 투입되는 비용의 문제들, 입주해 생활하면서 챙겨야 할 여러 관리비용들을 꼼꼼하게 세세하게, 현실적인 데이터로 실어놓았다. 앞으로 땅콩집을 꿈꾸게 될 엄마, 아빠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정보가 될 것이다.



효율성에서는 더없이 좋지만 인간에게는 참 나쁜 아파트에 대한 여러 진실들도 함께 수록했다. 사실 그런 사람들 많다. 아파트가 좋아서 아파트에 사는 게 아니라 딱히 대안이 없기 때문에 사는 사람들, 단순히 재태크를 위해서 투기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이제 땅콩집을 현실로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MBC프라임에도 등장했던 자매들인데, 이사람들 정말 인상적이었다. 맞벌이에 아이가 있는 두 자매가 한 명은 일을 하기 싫어했고, 한 명은 일을 계속 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두 집이 같이 살기 시작했다. 언니는 아이를 돌보고 동생은 회사에 나갔다. 남편들도 막상 같이 살아보니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다가 땅콩집을 발견하고 바로 이거다! 하고 두 자매가 힘을 모아 땅콩집을 지었다. 
 

나도 바로 형부에게 문자를 날렸다. "형부! 우리 빨리 4년 안에 3억 모아서 땅콩집 짓고 삽시다!"  




아파트처럼 따뜻하다. 그러나 아파트처럼 살금살금 걸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이 있다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고 마당에서 흙과 풀을 만지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면서 돈은 아파트 전세값 수준이다. 보안? 아파트 경비실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사설 경비업체 활용하면 된다. 출퇴근길? 서울에서도 비싼 집값 때문에 외곽 아파트에서만 살았다면 어차피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나 출퇴근 시간은 비슷하다. 사정에 맞추어 직장과 같은 방향의 경기도로 빠지면 된다. 
 

젠장, 나도 땅콩집의 땅콩 한 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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