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온워드 Onward -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의 혁신과 도전
하워드 슐츠 & 조앤 고든 지음, 안진환.장세현 옮김 / 8.0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별 기대도 안 했으면서 기대보다 더 찌질한 책을 만나면 급분노하게 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다. 간만에 손발이 퇴갤하는 책을 만나니 끄적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 승리나 기업의 성공담을 담은 책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렇다, 나는 편견에 가득찬, 취향이 명확한 편파적인 독자니까. 단 한번도 기업의 성공담을 내 돈주고 사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가 내가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이건 순전히 건강검진이 끝난 후 허기진 배를 위로하기 위해 스타벅스의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먹고자 하는 욕망에서 파생된 사건이다. 검진 센터 옆에 한가롭게 위치한 스타벅스에 들어갔는데, 이 책을 사면 한정판 머그컵도 주고 아메리카노도 주고 책 속에는 스타벅스 음료 쿠폰도 들어있다질 않나. 책은 17000원으로 절대 싼 가격이 아니었지만 이거저거 빼고나면 실질적인 책 값은 5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 책이 아무리 쓰레기여도 책은 책이니까. 커피도 두 잔이나 마시고 머그컵도 생기니까 뜻밖의 5000원짜리 책 하나를 읽는다고 생각하자, 라는 생각에서 집어든 것이 <온워드>.
스타벅스가 한참 타오르던 시절에도 나는 스타벅스 관련된 책을 사본 적이 없다. 워낙 화제가 많이 되니까 책을 읽지 않아도 그 기업의 철학이나 성공비결 따위를 빤히 알 수 있는 지경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는 또 그게 그닥 새로울 게 없는 얘기가 되고 말았다. 한쿡에도 스타벅스를 벤치마킹하고 변형하고 변주한 온갖 프랜차이즈 카페 체인이 아메바처럼 번식했고, 그놈의 '감성 마케팅'은 이제 고유명사가 되버렸다. 그래서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근데 이건 또 뭐야, 나름 2007년에 위기를 겪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한 성공담이라니. 음... 그럼 뭔가 있을지도 몰라. 그치?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뭔가 없다. 결정적으로 첫 장의 장 제목을 읽고 이미 손발이 오그라들고 짜부러져 퇴갤해버렸다. "사랑"이라니. 기업가가 자신의 사업체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 운운하는 것만큼 오그라드는 게 있을까. 물론 뒤이어 등장하는 장 제목들은 자신감, 고통, 희망, 용기와 같은 보편적인 명사들인데, 이것 또한 빤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차라리 대놓고 우리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이런 전략을 썼고, 이런 걸 노렸고, 이게 먹힐 것 같아서 이래저래해보았다는 얘기가 천박하지만 솔직하다.
이 책은 재기에 성공했다는 과정 속에서 "인간"을 생각하고 "신뢰"를 끌어모았으며 "진심"을 전했으며, "신념"을 가졌고 "양심"적으로 운영했더니 "승리"하였더라, 하는 온갖 좋은 의미의 명사들을 다 갖다붙여 놓았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세한 '스토리'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결국 아! 하니까 어! 하더라, 라는 얘기로 귀결될 뿐. 기업의 전략이나 혁신 따위의 산술적인 이야기가 이런식의 감성적 언어로 포장되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웠다는 거다. 솔직히 이런 류의 책들이 대부분 그렇게 서술되어 있고, 기업 성공담이란 '성공했기 때문에' 쓰일 수 있는 것이니 제손으로 기업의 성공 스토리를 사놓고 "뭐 이렇게 빤해 씨앙" 하고 궁시렁거리는 내가 비정상인지도.

여하튼 도저히 손발이 오글거려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를 더 환장하게 한 것은 책의 맨 뒤에 있는 '에센스'라는 이름의 '요약집'이었다.
"독자 분들의 빠른 이해를 돕고자 책의 핵심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
맙소사. 총 509쪽의 책을 단 32쪽으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32쪽 분량의 이야기를 500여쪽이나 할애해 구구절절 늘어놓았다는 것을 책 스스로 증명한 꼴이 아니지 않나. 32쪽의 요약집으로 얻을 수 있는 내용이라면 어째서 내가 한 권의 책으로 이 빤한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가.
어차피 책을 산다기보단 커피를 사니 책을 사은품으로 얻는다는 느낌으로 구입하긴 했지만, 이건 아니다. 물론 싫으면 안 읽으면 그만이다. 근데 진짜 열받아서 읽었다. 어차피 마케팅용으로 만들어진 책이니 그 목적에 충실하면 그만이겠지만, 문제는 그 목적에 충실하기엔 지나친 자화자찬과 과도한 이미지 메이킹에 손발이 오그라들어 그나마 남아 있던 스타벅스 커피에 대한 이미지마저 수직 하강했다는 게 문제다. 나만 그런가. 에잇!
난 그냥 쿠폰으로 커피나 마실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