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카프카의 고백 - KAFKA's Dialogue
카프카 글, 이우일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어제는 짜르가 다쳐 새벽에 급히 응급진료를 하는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인형 물어오기를 좋아하는 짜르에게 평소처럼 인형을 던져줬는데, 그걸 물어오겠다고 침대에서 뛰어내리다가 발톱이 빠져버린 거다. 아프지도 않았는지 태연하게 이불 위를 걸어다니는데 이불에 찍힌 핏방울을 보고 까무러칠 뻔 했다. 10년을 함께 살면서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도, 다친 적도, 설사를 한 적도 없었던 녀석이라서 피를 보자마자 나는 응급환자라도 보는 것마냥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택시를 잡아 탔다. 
 

워낙 겁이 많은 놈이라서 병원 문만 들어서면 기겁을 하는데 그날따라 너무나 의젓하다. 낑낑거리지도 않고 드레싱도 잘 받고, 약도 잘 먹고, 주사도 잘 맞고, 심지어 핥지 못하게 씌워주는 고깔도 아랑곳 않고 씩씩하게 잘도 걸어다니네.

카메라를 노려보는 짜르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게 사람이야 개야 싶다. 저 늠름한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지 않나. 동물과 오래 살다보면 진심으로 녀석이 가족으로 느껴진다. 진짜 사람 가족 말이다. 어떤 날은 짜르를 앉혀놓고 그날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기도 하고, 우울한 날에는 금새 알아채고 내게 달려와 유난히 애교를 부린다. 진짜 내 속을 다 꿰뚫고 있는 느낌이랄까. 

일러스트레이터 이우일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나는 ~한 고양이입니다"라는 문장으로 고양이 입장에서 바라본 자기 가족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까칠한 고양이 카프카는 철이 덜 든 가장 이우일을 보며 씨니컬 멘트를 날리기도 하고, 아내 선현경을 보고 저것은 필시 "말단!"을 외치기도 하고, 담배 피우는(피웠던) 두 부부에게 감시의 눈길을 날리곤 한다. 

언제나 무심한 듯 시크한, 시큰둥하면서도 뒷주머니에 애교를 숨겨놓는, 인디펜던트하고 무심한 고양이 특유의 모습은 "까칠하다"는 말로 단번에 정의된다. <고양이 카프카의 고백>은 동물에게 영혼을 간파당한 작가가 이 녀석들에게 이 한심한(?) 인간들의 삶이 어떻게 보일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신의 일상을 고양이 눈으로 객관화해놓은 책이다. 동물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유쾌하고 적나라한 일상들. 이우일 특유의 허접성 유머가 가득한 카툰 컷과 "쯧쯧, 내가 저런 걸 주인이랍시고. 흐휴." 하고 한숨 잔뜩 쉬고 있을 것만 같은 카프카의 화법이 누구나 호탕하게 웃어제낄 수 있는 낯설고도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저는 그들이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행복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건 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었어요.

그 모녀의 또 다른 가족인 이우일 씨에게요. (…)

뭐랄까, 좋게 말하면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주 부조리한 짐승 같다고나 할까요. (…)

아주 고양이를 피곤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인간이지요.

뭐가 그렇게 피곤하냐고요? 흠, 아시게 될 겁니다.

앞으로 아주 '야옹'한 인간의 '야옹'한 실체를 보시게 될 테니까요.

201년 5월 25일 카프카 씀.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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