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논증법 -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4가지 실전 논리
최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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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좀 해볼까? 하고 시계를 보면 5시다. 이쯤되면 야근은 당연지사. 야식은 뭘 시켜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중국집 전화번호를 누른다. 짜장면과 기타등등이 사무실로 도착하면 법인카드를 긁고 음식을 풀어놓고 짭짭 먹으면 된다. 문제는 내가 깜빡하고 카드로 계산한다는 얘길 빠트렸다는 거다. 배달원은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며 그야말로 "개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현금으로 결제했을 시 비용 처리 문제를 고민하며 쩔쩔매고 있는데 배달원은 니네가 말 안 해놓고 왜 나한테 지랄이냐며 또 "개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너한테 지랄하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 고민 중이니 릴렉스, 하고 진정을 시켜놓고 그릇을 찾으러 올 때 단말기를 가져와 결제를 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배달원은 "왜 사람을 두 번 걸음 시키냐"며 또 "개짜증"을 냈다. 결국 암쏘쏘리x100을 외치며 이따 퇴근길에 들러 결제하고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배달원을 돌려보냈다. 

근데! 어째서 그릇 찾으러 올 때 결제하는 것이 두 번 걸음이지? 그릇은 어차피 찾으러 와야하잖아! 아니, 이 쟈식이!!! 하고 돌아봤으나 배달원은 이미 안녕안녕. 그때부터 급울분이 솟기 시작했다. 젠장! 아까 얘기했어야 했는데! 그릇 찾으러 올 때 결제하는 게 왜 두 번 걸음이냐고!!  

왜 돌아서고 나면 할 말이 생각나는 걸까. 이 사건은 물론 갑론을박의 논쟁은 아니었지만 왠지 멍청하게 당한 것만 같아서 급억울해졌다. 이런 일들은 언제나 일어난다. 누군가와 싸우고 돌아서면 에잇 그 얘길 했으면 그놈 말문이 막혔을 텐데! 찍소리 못하고 누군가의 개짜증을 감수해내고 나면 에잇 이게 이렇게 된 거라고 얘기했어야 했는데!

<변호사 논증법>은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논쟁에서 이기라고,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실전 논리를 변호사들의 논리적 전략에서 찾아내는 책이다. 미쿡 법정 드라마를 보면 피터지는 말발로 서로의 논리를 반박하고 반박하고 반박하는 멋있는 변호사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그걸 볼 때마다 입을 아- 아- 벌리고 어떻게 저런 틈새를 파고들지? 하고 감탄하곤 한다. (특히 <보스턴 리갈> 강추합니다 여러분 핫핫) 누군가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들은 배심원 또는 재판관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적 전략을 구사한다. 이런 변호사들의 기술을 나의 일상으로 가져온다면 어떨까?

'논리적인 언변' 또는 '논리적인 필력'은 여기저기 써먹을 데가 많다. 기업의 입사시험이나 그룹면접에도, 대학의 면접장에서도, 논술 시험을 치뤄야 할 때도, 마누라에게 용돈을 올려달라고 할 때도, 상사에게 자신의 기획을 결재받을 때도 탄탄하고 단단한 자기만의 논리를 갖추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변호사 논증법>은 현실 세계에서 활용 가능한 비법을 딱 4가지로 정리해서 알려준다는 게 매력적이다.

 
논리학이라는 게 수학 공식처럼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맥락 속에서 발휘되기 때문에 사실 어떤 비법을 전수받는다고 해도 그게 실전에서 제대로 작용된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논증의 원칙을 모른다면 결국 또다시 돌아서고 나서야 이기는 방법이 생각나서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법을 모르는 어수룩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속거나 그 사람을 따라서 불법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올바른 논증의 원칙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올바르지 않은 논증에도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논증의 원칙을 익히는 것은 본인이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의 논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논증의 기본은 상대의 주장과 논리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그 논리의 헛점을 꿰뚫는 데 있는 것이니 상대의 전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기본 오브 기본.   


논증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대화의 스포츠'다. 분명한 룰이 있고, 페어플레이를 해야 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그래서 논증은 아주 세련된 대화의 기술인 동시에 누구라도 참여하면 거기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절대 게임이다. 이것이 바로 논증의 힘이다. 


 대화의 스포츠라니, 뭐 이렇게 멋있는 말이 다 있나. 어려울 거 없다. 스포츠의 룰을 생각하고 페어플레이 하면 되는 거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우리가 진짜 변호사에게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자비심'이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싸움에서 헛발질을 하지 않으려면 상대를 합리적인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 사람의 주장을 가능한 한 가장 좋은 논증이 되도록 해석해야 한다는 것. 상대의 주장을 왜곡해 해석하면 엉뚱한 주장에 대한 반박을 하게 되므로 낸둥 헛발질만 할 수밖에. 

성경의 내용을 패러디해서 이 자비심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폭소가 터진다.  


너희가 만일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의 주장만 받아들인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비논리적인 사람들도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의 주장은 받아들인다. 그러나 너희는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그 근거를 생각해보아라. 그러면 너희는 논리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논리복음 1장 1절| 


 상대방의 주장에 자비를 베풀어 최대한 합리적인 주장으로 해석하라. 이것이 변호사 논증법의 첫번째 원칙인 자비로운 해석의 원칙. 개인적으로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무엇이든 기본 자세가 가장 중요한 거니까. 나머지 3가지 원칙은 근거 제시, 입증의 책임, 논점 이탈 금지의 원칙인데 언뜻 보면 다 아는 내용이잖아! 할 수도 있지만 이걸 실전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를 조목조목 짚어주기 때문에 읽어갈수록 눈이 휘둥휘둥해진다. 

목차를 보면 이 책의 각이 대충 나온다. 솔직히 목차 보고 빵 터졌다. 아, 재치까지 있는 분이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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