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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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진정 심심할 때 애플닷컴(http://www.apple.com)에서 트레일러를 본다. 미국사이트라서 현재 미국의 개봉상황에 맞는 영화 예고편이 잔뜩 있는데 퀵타임을 깔고 보면 화질도 죽이고 꽤 흥미진진하달까. 물론 자막은 없다. 하지만 예고편 정도는 대사 한 마디도 안 나와도 대충 딱 보면 각 나온다. 홋홋. 문제는 그렇게 미국 개봉 기준의 예고편을 보다보면 오오 이 영화 죽이는데! 싶은 영화들이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개봉을 안 하는 경우가 몹시 많다. 반대로 오오 이 영화 죽이는데! 싶은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을 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거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딱 그런 경우다. 일단 우리우리 브래드와 우리우리 케이트 엉냐가 나온다는 것 자체에 헉! 했는데 영화도 꽤 흥미로워 보이는 거다. 영어 못 알아들어도 벤자민 버튼이란 애가 나이를 거꾸로 먹는구나, 싶고. 원제가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이었으니, 정말로 흥미로운 케이스고나... 했다. 다행히 이 영화가 뒤늦게(!) 개봉을 하게 되었고, 거기에 맞춰 이렇게 책까지 나와 주셨다. 그것도 내가 완전 사랑하는 펭귄에서. 역시, 간지가 난다. 간지좔좔펭귄클래식. 

워낙 단편집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이 소품처럼 느껴지기보단 나를 위한 종합선물셋트로 보였달까.
그 시끄러운 광화문 커피빈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낑겨 넣고 앉은 자리에서 스르륵 읽어버렸다. 과연 흥미로운지고..... 일단 소재 자체가 흥미로우니 이렇게 짧은 단편임에도, 쌀로 바삭하고 커다랗고 풍성한 쌀과자 만들듯이 플롯이 꽉 짜인 러닝타임 2시간짜리 영화도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 싶더라. 영화는 일단 아직 개봉 전이고 못 봤으니 기대 이하가 될 수도, 이상이 될 수도 있으니 접어두고. 다른 단편도 일단은 접어두고.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만 보자면.  

이건 레이몬드 카버나 존 치버 스타일의 단편도 아니고, 문장이 유려하고 문학성이 뛰어나거나 화려한 문체와 복잡한 구성을 가진 소설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이 나이를 거꾸로 먹으면서 점점 젊어지다가 어려지다가 엥엥거리다가 조용히 눈을 감는 '일대기' 혹은 '전기'다. 그 순간순간의 에피소드들에 대한 묘사도 비교적 아주 간단하다. 그런데도 곳곳에 풍자와 유머 코드가 챡챡 감겨 있는데, 특히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노인네에게 딸랑이나 장난감 따위를 쥐어주며 억지를 부리는 벤자민의 아빠를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뭐랄까... 풉풉 웃음이 나다가도 쉣쉣 씁쓸해진달까. 

소설을 읽고 나니 영화가 더 땡긴다. 근데 이게 그래픽 노블로도 출간이 되었더라. 갠적으로 요즘 <와치맨>이나 <브이 포 벤데타>같은 그래픽 노블을 좀 뒤적거렸는데, 이 책은 얼핏봐도 전형적인 미국 스타일의 화풍은 아니다. 그래서 자꾸 더 눈길이 간다. 그런데 찾아보니 사실 이 <벤자민 버튼...>은 생각보다 여러 곳에서 출간이 되어 있었다. 번역자도 다르고 출판사도 다르고 표지도 다르다. 개인적으로 전부다 모아 놓고 비교 분석해가면서 <벤자민 버튼 연구> 뭐 이런 거 해보면 어떨까 하는 되도 않는 생각을 해봤다. 훗. (전에 <델러웨이 부인>을 열린책들 버전으로 살까, 솔출판사 버전을 살까, <생의 한가운데>를 문예출판사 버전을 살까, 민음사 버전을 살까 고민했던 기억이 쇽쇽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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