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기획이 정말 좋다. 31명의 한국 대표 소설가들이 추천한 박완서 작가의 단편들을 모았다. 한국소설은 비교적 최근작을 읽는 편이라 이런 기획이 없었다면 1970,80년대에 쓰여진 수록작들을 솔직히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표제작이자 첫 수록 작품인 '쥬디 할머니'부터 사로잡는다. 아이러니와 풍자가 넘치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잃지 않는다. 박완서 작가님이 드라마 대본을 썼어도 크게 성공했을 것 같다. 캐릭터의 개성, 이야기의 구조와 흡인력이 좋다.'공항에서 만난 사람',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재이산'에서는 6.25전쟁의 고통과 그 이후의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의 가장 찬란했을 20대 초반에 전쟁을 몸소 겪은 작가님의 체험을 녹인 작품들이다.읽으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탄한 작품은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다. 그동안 제목을 숱하게 들어왔는데 이제서야 읽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과 각성, 치유와 성찰을 한 호흡에 담은 것이 놀랍다. 이 역시 작가님이 직접 겪은 상처를 녹인 작품인 것을 알기에 더 크게 와닿았다.청년 정치인이라는 자가 서민 코스프레를 하며 헛소리를 할 때면 SNS에서 어김없이 언급되는 '도둑맞은 가난'도 인상적이다. - 아흔아홉 냥 가진 놈이 한 냥을 탐내는 성미를 알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본 일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무엇보다 나보다 윗세대인 여성의 세계를 문학으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편안했다. 여성, 주부, 며느리, 어머니로서의 존재가 치열하게 써낸 소설을 읽는 재미가 무척 좋았다.목록의 소설가들을 보며 누가 어떤 작품을 추천했는지가 궁금해졌다.#쥬디할머니 #박완서 #문학동네 #단편소설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