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작가는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시내의 총독부 부설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함께 일본어로 된 그림책을 보았다는 내용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어린이는 존재했다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스러웠다.책의 제목을 보니 그 기억이 떠올라서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 책이다. 1940년대의 일제는 '내선일체'의 명목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했다. 총독부 주최로 매해 열린 어린이 글짓기 행사도 그 일환이었다.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부터 흥미롭다. 일본에서 영화와 예술학을 공부한 저자는 우연히 1940년대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아동 영화 <수업료>를 보게된다. 영화의 원작은 총독부 주최의 글짓기에서 입상한 작문이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분석하게 된 것이다.책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구성이며 분석이 탁월하다. 수록된 글들이 쓰여진 1940년 이전까지의 역사와 사회 변화가 쉽지만 핵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모두 일본어로 쓰여졌을 글들. 글쓴 어린이의 이름으로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데 소속이나 내용으로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점들이 많았다. 1940년대에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70만 명이나 되었다는데 경성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 어린이들도 많았고 글에 등장하는 지명 등에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특히 일본인 가족이 고용한 가정부를 '오모니'로, 젊은 하녀를 '키치베(계집애)'로 부르는 내용이 묘했다. 당연히 그랬을 테지만 해방 이후 이런 흔적들은 애써 외면했고 제거했으니 직접 텍스트로 읽는 감정이 남달랐다. 서양 문학에 등장하는 제국주의 묘사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일본 아이들과 조선 아이들의 글을 비교 분석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일 수밖에 없는 관계가 아이들의 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마지막 전쟁 챕터에서는 일본, 조선 구분없이 가슴 아팠다. '황국신민맹세'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국민교육헌장'이 떠올랐는데 일제 시스템에서 따온 것임이 너무 명백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징병과 죽음, 천황에 대한 충성 등을 글로 써야했던 시대. 이 때를 살아낸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책의 맺음말도 좋았다. 저자의 통찰과 진심을 읽었다.- 식민지 교육 제도 바깥에 있던 아이들은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이 아이들이 남기지 못한 기억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일본어도 조선어도 쓸 줄 모르던 아이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중략) 아이들 본인을 포함해 그 누구도 기록하지 못했던 이 아이들의 삶은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가 다루지 못했던, 혹은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현실이었다. (314 페이지)#제국의어린이들 #이영은 #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