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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앙투안 드 베크.세르주 투비아나 지음, 한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평점 :

영화를 좋아한다면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을 평전이다. 영화를 공부하고 있거나 관련된 일을 하고있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방대한 분량의 페이지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내용에 등장하는 모든 영화들을 한 편씩 보면서 읽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대표적 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삶과 영화에 관해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그의 개인사는 물론이고 전 작품의 제작 배경과 일화를 알 수 있게 한다. 트뤼포가 본격적으로 시네필로써 살아가기 시작한 1940년대 후반부터 ‘카이에 뒤 시네마’ 등의 평론가로 활동한 50년대, 단편영화 연출을 거쳐 그 유명한 <400번의 구타>를 연출한 50년대 후반, 앙리 랑그루아를 구하기 위해 투쟁했던 1968년 등. 그의 개인사와 그가 좋아했던 영화들은 곧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의 역사이기도 했다. 책은 그런 순간들을 성실하게 묘사하고 알려주어 흥미롭다. 이 책 한권으로 세계영화사의 주요 걸작들과 인물들을 섭렵할 수 있다.
트뤼포의 첫 장편 연출작인 <400번의 구타>가 그의 자전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생아로 태어난 뒤 할머니에게 맡겨졌다가 어머니가 재혼한 새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트뤼포는 어린 시절 상처가 많았고 이런 기억들을 영화의 곳곳에 담았다.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로 부모와 척을 지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어린 시절의 핍박을 예술로 승화시키다니, 가장 우아한 복수가 아닐까도 생각되었다.
놀라웠던 것은 트뤼포의 정신적인 아버지인 앙드레 바쟁라는 인물이다. 전설적인 영화 평론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만든 바쟁은 부모와의 갈등으로 방황하는 젊은 철부지 트뤼포를 거둬들여 같이 지낸다. 또 그가 평론가로 자리잡고 연출을 하기까지 많은 지원을 했다. 얄궂게도 <400번의 구타> 크랭크인 하는 날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트뤼포에게 앙드레 바쟁은 귀인이 아닐 수 없다.
그 밖에 트뤼포는 장 르누아르, 로베르토 로셀리니, 알프레드 히치콕과 같은 영화적 귀인들을 많이 만났다. 거의 모든 영화를 함께한 카로스 영화사의 스탭과 <히치콕과의 대화> 책 작업을 함께한 헬렌 스콧까지. 비록 뇌종양으로 50대 초반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죽었지만 트뤼포의 타고난 인복은 부럽게 느껴졌다.
반면 그의 여성 편력과 관련된 내용은 요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실망스러웠다.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거의 모든 여배우들에게 속된 말로 ‘들이댔다’. 심지어 <아델 H의 이야기> 촬영 때는 19살 밖에 안된 이자벨 아자니에게도 그랬다고. 트뤼포가 카트린 드뇌브와도 사귄 것도 처음 알았고 교통사고로 요절한 그의 쌍둥이 언니인 배우에게도 사랑을 느꼈다. 이런 도덕적 결점을 트뤼포 본인은 너무나 잘 알았고 이를 <두 영국 여인과 대륙>,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와 같은 작품으로 남겼다는 점은 그 와중에도 놀라운 부분이었다.
읽는 내내 밑줄 친 부분이 많았다. 특히 트뤼포가 17세에 썼다는 이 글의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루에 세 편의 영화, 일주일에 세 권의 책, 위대한 음악을 담은 레코드판만 있다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트뤼포는 그야말로 영화를 정말 사랑하던 사람임은 틀림없다. 오래전 영화 연출을 하고 싶었던 그 시절의 나를 다시 기억하게 해준 독서였다.
책의 만듦새, 편집, 하드커버 표지, 뒤의 작품 연표가 정말 좋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추천글과 한상준 님의 번역 후기까지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