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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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무쓸모, 무가치의 시선을 기꺼이 부수고 스스로 잔류 인구가 된, 70대 노인의 행성 생존기


이 로그라인의 강렬한 이끌림에 의해 읽게 된 책. SF 장르에 워낙 일천한 나는 처음 알았지만, 저자 엘리자베스 문은 1945년생으로 그 동안 30여권의 작품을 펴낸 작가다.


이 책은 미래 어느 행성에서 살고 있는 70대 여성 오필리아가 주인공이다. 그는(번역이 그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좋았다) 사회 구성원, 그리고 가족 안에서조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고 의지대로 행동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어느 날 전체 인구가 다른 행성으로 강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그녀는 몰래 혼자 남는다.


혼자가 된 오필리아가 누리는 자유의 묘사가 정말 재미있다. 아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고 사회가 요구했던 잡무에서도 해방되었다. 또 아무도 없는데 굳이 옷과 신발을 갖춰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오필리아는 신발을 모두 폐기해 버린다. 대신 취미였던 뜨개질과 비즈를 엮어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든다. 오랜만에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만드는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도 잘 묘사되어 있다.


아무 쓸모 없다고 여겨지던 그는 이렇게 능숙하고 즐겁게 홀로 살아간다. 남아 있는 식량과 전기, 통신 시스템을 잘 관리하고 농사와 가축 키우기에도 열심이다. 늙은 여자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못하게 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건은 벌어진다. 우연히 통신 수신기를 듣던 오필리아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신의 행성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대로 나의 자유는 없어지고 마는가싶었는데 정체 모를 괴생물들이 막 행성에 착륙한 사람들을 몰살시킨다. 수신기를 통해 이 모든 상황을 듣게 된 오필리아는 혼자만 있는 줄 알았던 행성에 다른 괴생물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고 공포에 떨게 된다.


결국 오필리아가 괴생물들과 만나고부터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오필리아와 괴생물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동안에도 이 이야기가 비극적인 호러로 끝날 것만 같은 불안감에 긴장하게 만든다. 물론 작가는 우리의 지혜로운 오필리아가 맞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하고 아름다운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매우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오필리아는 빌롱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에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착한 아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그런 것들에 70여 년을 쏟아부었다. 몰두했다. 이제는 색칠하고 조각하고, 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낯선 괴동물들과 더 낯선 그들의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오필리아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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