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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또롱 아래 선그믓 - 옛이야기 속 여성의 삶에서 페미니즘을 읽다
권도영.송영림 지음, 권봉교 그림 / 유씨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권도영 송영림 지음, 권봉교 그림, 유씨북스. 2019.
책 제목 [배또롱 아래 선 그믓]은 배꼽 아래 음부까지 이어지는 선을 의미한다. 이렇게 낯선 제주도 방언은 앞머리에서 소개할 만 한데, 읽다 보니 맨 뒤 에피소드에 담겨 있다. 사전을 찾아볼까도 했지만 괜한 오기로 계속 읽어 나갔다. 가믄장아기에서 나온 말로 ‘여성의 주체성’을 상징하고 있다.(259)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른다. 그 용어야 어떠하든 여성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성이라서가 아니다. 또 여성 우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여성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으로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딸이 있는 아버지로서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집 밖에서, 앞으로 성장하여 받게 될 차별과 혐오가 걱정이 된다. 여자뿐이 아니다. 이사회의 모든 소수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어떤 차이로 인한 차별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온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이 책의 많은 이야기들에서 조금이나마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 바란다.
이 책의 다양한 옛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에 대한 모순들이 드러나 안타까웠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여자가 여자를 무시하는 것도 있다.(23, 아기장수 이야기) 또 어떤 이야기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앞길을 막는다며 여자를 죽이는 이야기도 있다.(44, 이몽학의 오뉘 힘내기, 46, 김덕령의 오뉘 힘내기) ‘세상의 딸들을 결정적으로 좌절시키는 사실은 어머니가 나서서 딸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함으로써 아들을 살린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확고한 믿음은 안 그래도 남동생의 힘에 자발적으로 눌릴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는 딸에게 완전한 좌절을 안겨준다.’(50)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어찌 보면 여자 내에서의 인식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이야기도 있는데 훌륭한 화가 아르테미시아는 여자라는 이유로 남성 중심의 미술계가 그를 미술사에서 완전히 제거해 버렸단다.(164) 남자 같은 여자였던 소저너 트루스의 이야기도 있고, 뉴질랜드의 이야기도 있다. 여자의 어려운 삶은 우리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소수자에 대한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
옛이야기의 낭만적인 서사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끔찍한 범죄가 되기도 한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도 요즘 기준으로는 절도, 납치를 한 파렴치한이다. 정만서의 처녀 젖가슴 구경이란 이야기서 정만서는 순진한 여자를 거짓 공권력으로 농락한 이야기도 있다. 경찰을 사칭했으니 보통 범죄가 아니다. 그렇기에 옛이야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시각으로 옛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성을 무시하고 탓하는 이야기라고 해서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근본을 파헤치고, 현대적 시각에서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또 어쩔 때는 교훈을 얻는 ‘반면교사’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오지랖 넓히지 말자는 교훈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요즘 누구에게나 함부로 결혼은 했느냐, 사귀는 사람은 있느냐, 언제 할 거냐 와 같은 말은 금기어다. ‘개인의 주체성,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생활을 하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폭력적인 사회다.’ 각자의 삶은 각자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어지는 말이 강력하다. ‘함부로 남의 짝을 맺어주려 애쓰지 말자. 그러다 자칫 천기누설하는 죄라도 짓게 되면 하늘이 내리는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