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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중용이 필요한 시간 -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인생을 만나다 ㅣ 내 인생의 사서四書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평점 :
신정근, 21세기북스, 2019.
중용을 읽어보지 정말 오래되었다. 대학, 논어는 자주 손에 잡히는데 맹자, 중용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옛사람들이 4서를 읽는 순서로 대학, 논어, 맹장, 중용으로 한 까닭이 있다. 중용이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어렵다는 중용을 풀어썼다. 중용을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12개의 범주로 나누어 재편집을 했다. 입문서이기에 ‘입문’ 부분이 있어 이해를 돕고, ‘승당’ 부분에는 한자의 음도 친절하게 붙여주었다. ‘입실’ 부분에는 한자의 원뜻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언’ 부분에는 깊이 있는 이야기도 제시한다. 일러두기에 나왔듯(14쪽 1번 설명) 이 책은 저자의 앞 책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라는 책의 자매 편이라고 한다. 서로의 장단점이 있으니 같이 읽었으면 좋단다. 아직 그 책은 읽어 보지 않았지만, 중용이 마음에 닿아 이 책을 재독을 할 때는 지은이의 자매편 책이나 ‘중용집주’를 함께 펴 놓고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중용을 실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70) 중용 9장에 공자님이 말씀하셨듯이, ‘천하와 나라 그리고 가문을 고루 공평하게 할 수 있고, 작위와 급여를 겸손하여 받지 않을 수 있고, 서슬 푸른 칼날의 위험에도 뛰어들 수 있지만, 중용의 삶은 완전히 실행할 수 없다.’(70) 중용을 할 수 없는데 중용을 하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 중용은 성인(聖人)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같은 필부(匹夫)는 중용을 실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중용을 실천해야 하고, 오십에 중용을 더 실천해야 할까? 성인은 될 수 없어도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유와 같다. 중용을 결국 실천할 수 없어도 중용을 실천하려고 하여야 한다. 공자도 ‘군자는 중간쯤에 이르러 주저앉을 수 있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겠다.’(74)고 선언한다. 공자도 그러한데 우리 같은 범부들이 멈추면 되겠는가. 인간의 일이 수학처럼 맞춰 떨어지는 어렵다. 하지만 가장 적당함은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중용이라고 본다. 음식으로 따지면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적당함’ 말이다. 나도 며칠 후면 오십이다. 만으로 따지면 아직 1년 반이 남았지만, 우리 나이로 오십이기에 그렇게 생각된다. 젊은 시절이야 생각 없이 좌충우돌하면서 살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용인되었다. 이제 오십에 보니 이 나이는 사회나 가정이나 제법 어른이 된 나이다. 직장에서도 윗사람보다 아랫사람이 많다. 내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많은 사람들이 곤욕을 치르게 된다. 함부로 결정할 수 없어 조심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중용은 어려운 책이다. 한두 번 읽었다고 뜻이 통할 일 없다. 한 번 읽기 시작했다면 여러 번 읽기를 권한다.
*발각-모든 것은 결국 알려진다.(37)
*업경-불교에서 저승길 어귀에 있다고 여기는 거울로, 여기에 비추면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행업이 나타난다고 한다.(38)
*공동체의 타락과 몰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60)
*사람은 한번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가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그만두고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기 쉽다. 나는 이를 ‘도돌이표 인생’이라 부른다.(205)
*(김정희가 71세 때 쓴 글에서) 노년에 다시 돌이켜보니 늘 곁에 두고 먹는 일상의 소박한 음식이야말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아무런 긴장 없이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좋은 만남이다.(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