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의 그림자 철학하는 아이 14
크리스티앙 브뤼엘 지음,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 이마주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줄리의 그림자는 줄리의 마음의 그림자이다. 겉모습은 부모님과 주위의 강요로 여자답게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그것을 싫어하고 남자답게 하고 싶어 한다. 이 글에서 여자답게, 남자답게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여자답게, 남자답게의 기준은 남이 만들어 놓은 굴레이다. 어린 줄리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의 압력에서 쉽게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어린아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정 짓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부모님의 위치에서 아이를 바르게 양육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이가 때를 부리고, 막무가내 면 예의를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산책 가기 전 그림 4컷을 보자(쪽수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이렇게 진술한다. 그림책이라서 쪽수를 뺀 듯싶다.) 헝클어진 머리를 빗으라고 한 것은 당연하다. 헝클어진 머리를 빗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다. 물론 이것조차 개인의 자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구멍 난 옷을 입은 것은 어떤가? 그 정도는 허용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림에서 아이는 엄마의 말에 순종한다. 결국 단정한 여자다운 옷을 입는다. 이 그림의 포인트는 옷에 있지 않다. 바로 아이의 표정은 점점 변해가는 데 있다. 행복한 웃음을 가진 얼굴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변해가고 있다. 엄마는 말한다. “봐, 이렇게 예쁘잖니. 이제야 우리 딸 같네.” 엄마는 만족해하지만 아이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남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 나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도 될까?

 

줄리의 그림자는 줄리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림자가 온전히 자신을 드러낸 것이라면 줄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속의 줄리는 그림자를 떼어 놓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한다.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 모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줄리는 그 그림자를 밀쳐내지 말고 살펴보고, 인정하고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줄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나에게는 나다울 권리가 있어. 그럴 권리가.” 그런 후 줄리의 그림자는 온전히 자신의 그림자가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고, 온전히 드러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글을 읽으면서 나의 그림자는 어떤가 생각해 보았다.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이고, 지금의 삶이 나다움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단 말이다. 혹시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나를 구속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보았다. 마지막 글은 ‘줄리는 줄리’로 끝난다. 나에게는 ‘나는 나’로 규정할 수 있다. 주인공 줄리는 아마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신 스스로에게도 버거울지도 모른다. ‘나부대는 줄리. 말 안 듣는 줄리’를 응원하지는 않겠다. 자신다운 것도 남에게 피해를 주시 않는 선에서 가능한 일이다. 나다움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선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다움’을 펼쳐 나가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