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뭐가 좋아? 민트래빗 일본 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 선정 도서
하세가와 사토미 지음, 김숙 옮김 / 민트래빗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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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례는 비례다. 지나친 배려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 좋은 일도 적당히 해야 한다.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오소리는 친구들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있다. 친구들을 기쁘게 해줄 생각으로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돼지를 위해서는 감자를 심을 계획을 하고, 다람쥐를 위해서는 사과나무를 심으려고 한다. 토끼를 위해서는 당근을 심으려고 하고, 고슴도치를 위해서는 나무딸기를 심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만 알았지, 그들이 필요한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줄 것을 잔뜩 키우고 나서 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오소리는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뭐야 난 무슨 짓을 한 거지’ 친구들은 오소리에게 필요한 것을 말한 적이 없다. 오소리가 혼자 짐작으로 행동하려 했을 뿐이다. 솔직히 이런 상황을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에 보답이 없다고 화내고 있지 않는가! 받은 사람은 기대도 않았고, 필요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받아서 불편했는데 어떻게 고맙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받는 사람이 어떠하든 자기가 좋아서 했다면 그만이다. 오소리는 돼지가 감자를 키우든 말든, 다람쥐가 사과나무를 키우든 말든, 토끼가 당근을 키우든 말든, 고슴도치가 나무딸기 비밀 장소를 알든 말든 그냥 자기 좋아서 키우면 그만이다. 설사 그들이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그들을 위해 더 키우는 게 어떤가? 혹은 새로운 레시피로 요리를 해서 주면 그것도 환상적일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사는 삶은 불행하다. 남이란 기준은 명확하지도 않다. 남의 변덕에 나는 지쳐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불행한 것이다. 나를 ‘위해서’ 살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 나를 위해서 살았기에 만족할 수 있다. 기준이 나이기 때문에 그 기준이 변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목표를 세웠다면 목표를 도달할 수도 있다.

 

남을 위하여 사는 것에 대한 사례는 여럿 있다. 예를 들어 공부는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공부하는 것을 남을 위해서 하니깐 커닝도 하고, 시험지도 빼돌리고, 성적도 조작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면 몇 점을 맞든 무슨 상관인가! 청와대에 ‘여민관’이 있었다. 이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위민관’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 대통령이 처음 이름 ‘여민관’으로 다시 돌려놓았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말장난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엄청난 차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하늘인 백성을 무슨 수로 ‘위’한단 말인가!

 

고슴도치의 뼈 깊은 한마디, “그렇다면 오소리야, 넌 뭐가 좋아? 뭐든지 네가 좋아하는 걸 만들면 되잖아. 그리고 말이야, 넌 내가 갖고 온 이 주스를 맛있게 마시면 돼. 그러면 나는 정말 기쁠 거야” 남 눈치 보지 말자. 하고 싶은 것을 하자.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남 눈치 보면서 사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살자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나 하고 싶은 것을 남과 더불어 하면 된다. 그게 바로 ‘여민’의 마음이다.

 

이 책의 특징 중 하나가 흑색과 칼라 그림의 교체 배치다. 왜 그랬을까? 작자의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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