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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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이상을 하는 책이다. 빈센트의 그림을 이렇게 예쁘게 보여주고, 빈센트의 삶을 이렇게 친근하게 소개한 책으로 이 값은 너무 적다. 고흐의 삶과 그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 속에 그림을, 그림 속에 삶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엮여가는 것이 놀라웠다. 긴 시간의 여행을 함께하는 느낌이었고, 사진작가의 빼어난 사진도 그 현장을 가본 듯 느끼게 해 주었다. 표지조차 두 가지 그림으로 두 배의 기쁨을 주고 있는 이 책, 책값을 올려도 될 듯싶다.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빈센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빈센트를 생각하면 잘린 귀, 정신병, 평생 혼자서 외로이 살다간 불우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오히려 그의 열정, 사랑, 헌신 등의 이미지로 변색되었다. 측은한 마음에서 부러운 마음이 되었다. 이제 빈센트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다.

 

저자는 빈센트를 좋아하여 빈센트 같은 사람이 되려고 하였다.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21) 남을 의식했다면 빈센트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어떤 시선도 뛰어넘은 빈센트의 삶을 닮고 싶어 했던 저자를 나 또한 닮고 싶다.

 

빈센트의 걸작들이 1888년에서 그가 죽은 1890년 사이에 수없이 그려졌다. 지나간 시간에 가정은 부질없지만 그가 단지 몇 년이라도 더 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만약 조금이라도 그를 보듬어줄 사람이 나타났다면? 좀 더 재력이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사교적이었다면? 제수 요하나는 “그때 우리가 함께 있었을 때 내가 조금만 더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더라면! 그때 그에게 짜증을 부린 것이 지금은 얼마나 후회되는지 모른다.”(292)라고 회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 고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지금 내 스마트폰 케이스는 고흐가 그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제대로 미술교육을 받지도 못한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사로 살아오면서 ‘역연금술사(찬란한 금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사람)’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교사지만 그가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게 더 다행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왜인가? 빈센트가 만약 정규 교육과정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교사에 의해 그의 창의성이 혹시 꺾이지 않았을까?

 

빈센트의 그 열정을 나도 품고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글

 

# 빈센트는 내게 속삭였다. 삶이 내게 허락하는 제한된 지평선을 뛰어넘으라고, 내가 여기에 안주하면 절대로 보이지 않는 것들, 내 영역에 만족하면 절대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계’를 꿈꾸라고.(9)

 

# 나는 빈센트를 통해 깨달았다. 가혹한 불운에 대한 가장 멋진 복수, 그것은 예술의 창조임을.(10)

 

#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히 묘사하기보다, 나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어울리는 색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어.”(212)

 

# 그리스도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받아쓰라고 하지도 않았다면서, 빈센트는 ‘눈에 보이는 예술 작품’의 형태로 남겨놓은 것이 전혀 없는 그리스도야말로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279)

 

# 빈센트는 현실의 모습에 자신의 상상을 더하여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눈에 비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화가가 그림을 창조한다기보다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굴해낸다고 믿었다.(334)

 

# “매미가 서럽게 우는 쇠를 듣고 있으면, 우리 고향에서 농부들이 화롯가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것처럼 운치 있단다. 테오야, 이렇게 사소한 느낌들이 우리 인생을 밝혀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337)

 

# “우리는 되도록 더 많은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해. 진짜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오기 때문이란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더 행복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어. 그 사람 역시 가끔은 흔들리고, 의심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속에 신성한 불꽃을 품고 살아갈 수 있지”(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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