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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공화국 -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2월
평점 :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19
강준만 교수의 글이야 익히 알고 있듯 강하고 정곡을 찌른다. 머리말의 첫 글 ‘누구에겐 천국이지만 누구에겐 지옥인 한국’이란 말에서 벌써 가슴이 턱 막힌다. 천국도와 지옥도가 함께 그려진 그림이 머릿속에 팍 떠오른다. 우리는 천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옥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에는 많은 사람들이 말한 요점들이 가득하고, 전문적이면서도 간결한 용어들이 여기저기 쓰여 있다. 저절로 밑줄을 긋게 만든다. 문제는 밑줄을 그으면서도 마음이 찝찝하다. 좋아서가 아니라 싫어서다. 기뻐서가 아니라 안타까워서이다. 이런 말들이 왜 나왔으며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지, 더 안타까운 것은 앞으로 상당한 시간 동안 통용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병이 낫기 전까지는 병을 진단한 이 책을 놓지 말아야 한다. 불쾌해도 그 말들과 용어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그런 짓을 하고 있더라도 최소한의 죄책감이라도 들게 하자.
이 책은 대한민국의 병폐 중 하나인 수도권(그중에 서울, 그중에 강남) 집중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성경 속에서 하늘을 향해 끝없이 올라가려고 한 인간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 이 땅의 사람들은 서울을 향해 끝없이 집중하려고 한다.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결국 무너져 내리고 찢긴 바벨탑의 주인공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은 혼자만 높이 올라갔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다른 탑들도 같이 높아졌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즉 인간의 욕망을 분산시켰으면 바벨탑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인간의 욕망을 거세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기보다는 바람직한 쪽으로 욕망을 분출시키는 게 맞다. 서울을 향한 욕망은 결국 파멸에 이르기에 지방 곳곳으로 욕망을 분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울까? 서울대를 없애고, 서울 안에 있는 모든 대학을 지방으로 옮기면 가능할까?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으로 옮기고, 모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면 가능할까? 대기업의 본사를 수도권 밖으로 보내면 가능할까? 책 뒤에 나오는 마강래의 말마따나 우리나라를 5+2 행정구역으로 개편하면 가능할까? 정답은 애매하고 해답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저자의 의도처럼 이렇게 놔두었다간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청년들은 이 땅의 붕괴를 바라고 있다.(6) 바이러스 걸린 컴퓨터를 다시 깔 듯, 이 땅의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한다. 이십 대, 삼십 대의 아픔에 새로운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들의 현 정부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오늘 어떤 정치인은 전 정권을 탓하여 뭇매를 맞고 있다. 지금의 20대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여 그렇다는 다소 황당한 말을 한 것이다. 당연히 사과를 했지만, 그들의 불만이 그런 이유에서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촛불 혁명으로 세상이 확 바뀔 줄 알았는데, 세상은 참으로 더디게 변하고 있으니 이들이 만족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물론 세상은 조금이나마 좋아지고 있다. 정부의 그런 노력과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결국은 잘 될 것이다. 그러나 언제 될 것인가? 이들이 모든 기회를 다 잃고 늙은 뒤에 찾아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의 조급함을 우린 알아야 한다.)
젊은이의 문제를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이를 ‘각자도생형 투쟁’이라고 표현한다. 이 땅엔 젊은이뿐만 아니라 유치원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각자 그렇게 몸부림치고 있다. 협력이 없는 사회 서로 돌보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부모들은 친구 보다 더 잘나게 만들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닦달하고 있고, 노후 준비가 변변치 않은 노인들은 한 푼을 더 벌기 위해 거리를 헤매기도 한다. 정말 나만 잘나면 될까?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인가! 함께 잘 살아야 더 행복하리라는 걸 머릿속에 그릴 수 없는가? 교육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부모로서 마음이 무겁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아름다운 경쟁)이 나로부터 퍼져나간다면 초집중화가 조금씩 해소될지도 모르겠다. 6.25 때 난리는 나리도 아닌 ‘전쟁 같은 삶’(16)을 끝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서울에 살고 있다. 결국 소유 효과(8)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GTX 같은 문제를 보는 시각이 나와 다르다. GTX를 4 대 강과 빗대고 있지만 당장 출근 지옥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라는 말이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루 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위안이 될까? 물론 수도권의 블랙홀(41)이 될지 모르겠다. 미래는 모른다. 다만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했지만 ‘없었으면 어쩔 뻔했느냐’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민이 하나 생겼다.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지만 십여 년 후 정년을 하면 고향에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고향이 수도권이다. 갑자기 ‘초집중화’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별로 안되는 상황이 찜찜해졌다. 이참에 다른 곳을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산수 좋은 강원으로 갈지도 모르고, 드넓은 호남으로 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