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사랑이 끝난 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막 시작될 때,사랑이 그 정점을 향하여 솟구칠 때,
또한 사랑이 내리막길로 미친 듯이 치달을 때, 심지어 사랑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순간마다 존재하고 순간과 순간 사이에 존재한다.
만약 이별이란 것이 얌전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가 사랑이 끝난 후에 찾아오는 것이라면
우리를 그토록 아프게 할 리가 없다.
그러니까 나의 이 이론은 옳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이 끝나 버린 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 사람과 이별하는 일이
우리를 아프게 할 리 없으니까.
그것은 따뜻한 봄의 햇살 속을 날카롭게 통과하는,
또한 풀어헤친 방심한 옷깃 속을 파고드는,남아있는 겨울 같은 것이다.
매순간 이별을 느끼기 때문에 그 사랑이 애틋하고 눈물겨운 것이고.
사랑이 그토록 소중하기 때문에 이별 또한 하나의 가슴을 충분히 망가뜨릴 만큼 잔인한 것이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이별의 전부는 아니다.
이별은, 이별 후에도 온다. 완전히 이별한 거라고 생각한 다음,
그 이별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날들이 무수하게 반복된 후에도,
이별은 새삼스럽게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첫 번째 이별처럼 즉각적인 아픔을 동반하지는 않지만,
다른 의미에서 더욱 잔인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 속에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이를테면 겨울 속의 따뜻함 같은 것 생각해 보면,
아름다움이란 잔인함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별에 대한 아름다운,
그래서 잔인한 이야기이다.
황경신의 『슬프지만 안녕』 中에서 '리허설'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