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나무에게

이현주

네가 어린 싹으로 터서 땅속 어둠을 뚫고

태양을 향해 마침내 위로 오를때

나는 오직 아래로

아래로 눈 먼 손 뻗어 어둠 헤치며 내려만 갔다

네가 줄기로 솟아 봄날 푸른 잎을 낼때

나는 여전히 아래로

더욱 아래로 막힌 어둠을 더듬었다

네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춤추는 나비 벌과 삶을 희롱할 때에도

나는 거대한 바위에 맞서 몸살을 하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늘 끝같은 틈을 찾아야 한다

어느날 네가 사나운 비바람 맞으며

가지가 찢어지고 뒤틀려 신음할때

나는 너를 위하여 오직 안타까운 마음일 뿐이었으나

나는 믿는다

내가 이 어둠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한

너는 쓰러지지 않으리라고

모든 시련 사라지고 가을이 되어

네가 탐스런 열매를 가지마다 맺을때

나는 더 많은 물을 얻기 위하여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잎지고 열매 떨구고 네가 겨울의 휴식에 잠길 때에도

나는 흙에 묻혀 가쁘게 숨을 쉬었다

봄이 오면 너는 다시 영광을 누리려니와

나는 잊어도 좋다. 어둠처럼 까맣게 잊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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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09-04-23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창 청년부 활동을 하던때에 이 시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문득 이 시가 생각나 찾는데....금방 찾게 되지 않더라구요..
다시 읽게 되서 좋네요...
다이어리에 적어 놔야지...

레지나 2009-04-24 23:56   좋아요 0 | URL
첫 손님이시네요...
좋은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