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 한낮의 그림자 몬스터
손원평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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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몬스터는 어떤 모습인가요?”



‘몬스터’를 주제로 한 테마 소설집 두 권이 나왔다.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와 <몬스터: 한밤의 목소리>다.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플랫폼 시즌2로 연재되었던 작품들이라고.) 내가 먼저 집어든 것은 손원평, 윤이형, 최진영, 백수린, 임솔아 다섯 작가의 작품이 실린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



다섯 편 모두 좋았지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윤이형의 ‘드릴, 폭포, 열병’이다. 주인공이 윤서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이 소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혜서에게 공개적인 반성문을 쓰겠다는 윤서를 만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간의 두려움을 믿는다는 주인공. 혜서의 이야기, 병을 앓았던 이야기, 누수 이야기를 돌고 돌아 결국 주인공이 고백하는 것은 그 자신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저자가 쉽지 않은 이야기(혜서의 자살을 둘러싼 사건들)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인간의 이기심과 두려움을 풀어낸 방식이 놀라웠다.



생각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최진영의 ‘고백록’과 예술대학에서의 자살 사건과 나이 많은 학생들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한 일 등을 다룬 임솔아의 ‘손을 내밀었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읽었다. 이 두 작품을 비롯힌 소설집의 모든 작품들이 결국 현실 속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몬스터. 그렇다면 결국, 몬스터는 사회이고 나이고 당신이고 우리 모두이며 실재이자 허상이 아닐지. 때로는 거울 속에 존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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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 CHEF (잡스 - 셰프) - 셰프 : 맛의 세계에서 매일을 보내는 사람 잡스 시리즈 2
매거진 B 편집부 지음 / REFERENCE BY B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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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 에디터>에 이은 매거진 B의 두 번째 단행본 <잡스 - 셰프>. 매거진 B에 대한 믿음으로, 전작에 대한 만족감으로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역시나 군더더기 없는 표지와 내지 디자인. 책에는 여섯 명의 셰프와 함께한 인터뷰, 박찬일 셰프의 에세이 한 편이 실려있다.



사실 나는 요리는 차치하고 먹는 것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다. 그냥 생존을 위해 먹는다. 물론 안 먹을 때가 더 많다. 주변 사람들은 몸에 영양분을 넣어주지 않으니 맨날 피곤한 것이 당연하다며 나를 종용하지만(나도 잘 알고 있지만) 이미 습관으로 굳어버린 생활을 바꾸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복잡다단한 원인들이 얽혀있다. 지금은 건강한 식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차근차근 나름대로 노력중이다. 정말이다!)



맛을 음미하는 기쁨. 더 나아가 나를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기쁨. 나는 미처 향유하고 있지 못한 것들이지만 그러한 기쁨들이 분명히 존재함을 안다. <잡스 - 셰프> 편에 실린 인터뷰이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셰프라는 직업뿐만 아니라 이들이 ‘일‘자체를 대하는 태도와 그것을 끊임없이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모습에서 큰 영감을 얻었다. (매거진 B, 잡스 시리즈 최고야.. 독자로서 크게 관심 없는 분야에서도 영감을 발견하게 만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터뷰는 단연 마지막의 정관 스님 인터뷰다. 스님의 인터뷰를 읽기 전까지 음식이, 재료를 재배하고 요리하여 나누어 먹는 것이, 수행과 명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리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크게 감명받은 나머지 새벽에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 3>의 정관 스님 편을 보기까지 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자연 그대로를 존중하기에 남들이 보기엔 어지럽기만한 텃밭, 가장 순수한 재료들로 만든 사찰 음식, 그 음식을 만들기까지 들이는 정성과 시간까지. 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사찰 음식을 배우고 수행하기 위해 정관 스님을 찾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나조차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까.



제대로 된 일상이 스스로를 잘 돌보는 데에서 시작된다면 식생활은 단연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몇 년 전부터 맛집 찾아다니기 열풍이 불어닥친 우리나라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다. 또한 셰프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한 상황이니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잡스 - 셰프>에서 영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심지어 음식에 별로 관심 없는 나도 감명 깊게 읽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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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삶
실비 제르맹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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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표지의 소설, 실비 제르맹의 <숨겨진 삶>. 왜 예상하지 못했을까. 소설의 중심에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있다는 것을.



소설 속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남편 조르주를 잃은 사빈과 네 아이, 그들의 삶에 불현듯 등장하는 과거를 알 수 없는 남자 피에르. 사빈의 시아버지 샤를람은 피에르를 못마땅해하고 결국 그를 내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샤를람의 누이이자 조르주의 고모인 이디트가 있다. 오래 전 조카 조르주에게 욕망을 품은 바 있으며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고 있는 그녀.



피에르의 과거는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비극과 광기가 그의 과거를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과거가 밝혀지는 바로 그 순간, 그가 사빈의 가족들을 떠나 ‘소 예수’로 불리웠던 8년간의 시간이 비어버린다. 숨겨진 삶에 덧씌워진 또 다른 숨겨진 삶이다. 독자들은 영영 피에르를 알 수 없다.



그리고 로스코의 그림. 피에르가 방 한 켠에 두고 매일 바라보았을, 노을을 닮은, 노란색과 주황색의 색채가 만발하는 그림. 사빈의 큰아들 앙리는 피에르의 방에서 그 그림을 발견하고는 ‘이 그림을 동반자로 삼은 남자가 정말로 나쁜 사람일리 없다’고 결론내린다. 또한 소설의 중간중간 사빈을 비롯한 몇몇 인물들은 노을빛을 그대로 통과하여 그들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찾는 것처럼 묘사된다. 마치 로스코가 그림을 그릴 때 그러하듯이. 소설의 결말부에 재등장하는 ‘구원받은’ 피에르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그 장면에 이르러서는 소설 전체가 로스코의 작품에 바치는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 로스코와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다. 수많은 이들에게 그러하겠지만 내게도 특별한 로스코의 작품들. 15년도 예당 로스코 전시라던지(마지막 ‘레드’ 전시장에서 사진 촬영 허용 정말 너무 끔찍했다. 어떻게, 하필, 레드 앞에서. 지금 떠올려도 악몽같다.), 테이트 모던의 작품들이라던지, 시즌 별로 수차례 관람하는 연극 <레드>라던지, 한강의 시 등등. 한때 침대의 벽면을 로스코의 다양한 레드 포스터와 엽서로 채웠던 적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니 매일 밤 그 작품들을 바라보며 잠들던 날들은 어떤 의식 - 죽음과 광기에 가까웠다.)



섬세하고 시적인 표현이 아주 매력적인 소설이다. 직접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68혁명과 제 2차 세계대전의 잔재가 인물들의 행동이나 과거사를 통해 소설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숨겨진 삶>은 결국 그 모든 시기를 통과하는, 사랑과 죽음과 사생아와 성적 정체성과 다른 모든 비밀들을 내포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순간 모호하지만 결국 어떤 색채로, 로스코의 그림으로, 기억으로, 감정으로,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로 표현되는 우리들의 삶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은 나는 엉뚱하게 넷플릭스 드라마 <메시아>의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나체로 국경을 건너는 소년. 나의 가장 나약한 모습인 채로, 그저 인간인 채로, 헐벗은 채로 당신의 총구를 향해 다가가는 나를, 당신은 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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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책 쏜살 문고
토베 얀손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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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시리즈‘의 창시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며 소설가인 토베 얀손의 경장편 <여름의 책>. 호평이 자자해 기대하고 있었던 책인데 과연 재미있었다! 함께 번역 출간된 단편집 <두 손 가벼운 여행>보다 훨씬! 과연 북유럽의 ‘국민 소설‘으로 불릴만 하다.



<여름의 책>은 작은 섬에서 할머니, 아빠, 손녀 소피아 이렇게 셋이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로, 할머니와 손녀의 엉뚱하고 발랄한 에피소드들이 두드러진다. 할머니와 소피아는 나이차가 무색하게 함께 숲을 탐험하고 놀이를 지어내는 ‘친구‘다.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언제 죽어?˝라는 천진난만한 소피아의 물음과 ˝너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하고 뚱하게 대답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그들의 막역한 관계를 드러낸다. 이 명콤비의 활약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이어진다. 가끔은 소피아가 할머니를 돌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를 떠나 관계는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된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토베 얀손이 할머니 함을 모델로 쓴 소설이라고. 시끄러운 도시와 동떨어진 섬과 자연, 그 속에서 어떠한 위계도 없는 할머니와 손녀, 그렇게 저물어가는 어떤 여름.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웃으며 읽었던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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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사랑의 박물관
헤더 로즈 지음, 황가한 옮김 / 한겨레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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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그녀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의 ‘예술가와 마주보다 The Artist Is Present‘ 퍼포먼스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이 프로젝트에서 울라이와의 재회 영상은 언제나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녀는 무려 716시간 30분동안 1554명의 사람들과 눈을 마추쳤다. 이 전시를 관람한 이들은 85만명 이상이다. 소설 <현대적 사랑의 미술관>은 당시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게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



주인공은 아키 레빈이라는 영화 음악 작곡가이지만, 이 소설에는 브리티카, 힐라야스, 매니저 디터를 비롯해 마리나의 어머니 다니타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서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거의 모든 작품들이 다시금 언급되고 이야기된다. 그녀 자신의 입장에서 쓰여진 챕터도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술가와 마주보다‘ 전시에 자석처럼 이끌리는데, 몇몇은 의자에 앉아 마리나와의 응시를 경험한다. 순수한 응시, 마리나의 눈동자로부터 스스로를 발견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마리나의 퍼포먼스를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경험한다. 결국 이 소설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삶에서 예술이 가지는 힘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헤더 로즈는 실제로 ‘예술가와 마주보다‘ 전시를 3주 동안 매일 관람하며 네 차례 의자에 앉았다고 한다. 이 경험을 계기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를 중심으로 한 소설을 써야겠는 결심을 했다고. 무엇보다 이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로즈의 편지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완전한 창작의 자유를 허락한다˝고 답했다는 일화는 그 자체로 놀라움을 안겨준다.



사실 실존 인물과 그 인물의 활동을 바탕으로 쓰인 허구적인 소설은 자칫 실제의 인물을 잘못 이해하게 될까봐 읽기 두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현대적 사랑의 미술관>의 경우 저자의 ‘예술가와 마주보다‘ 전시 참여 경험과 방대한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쓰여졌기 때문인지 오독의 우려 없이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결국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과 예술이 가지는 힘 그 자체임을 이해하고 나니 ‘만약 내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앞에 앉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아, 소설 속에서 크리스 버든, 스텔라크, 밥 프레너건, 소포니스바 앙귀솔라, 카타리나 판헤메선 등 다양한 예술가가 언급된 점도 특히 좋았던 부분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 대해, 그녀의 ‘예술가와 마주보다‘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현대적 사랑의 박물관> 또한 무척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헤더 로즈의 시선으로 그려진 이 소설은 부드럽고 유연한 방식으로 마리나의 퍼포먼스와 예술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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