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클래식 컬렉션 2 세트 - 전4권 - 비밀의 화원 × 키다리 아저씨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메리 포핀스 걸 클래식 컬렉션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외 지음, 이경아 외 옮김 / 윌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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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젊은 여성 번역가들과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가 함께한 윌북의 걸 클래식 에디션 두번째! 이번에는 <비밀의 화원>, <키다리 아저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메리 포핀스>다. 고운 박스에 담긴 패키지는 물론 한 권 한 권의 디자인이 아름답고 손에 착 감기는 판형과 두께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할 점은 여성 서사를 재조명하려는 취지의 컬렉션이라는 점, 차별과 소외를 배제하고자 번역에도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읽은 책은 <비밀의 화원>이다. 정말 어렸을 때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은 책이라 기억이 희미했기 때문에 골랐다. 부모에게 버려지다시피 자랐으며 결국 어린 나이에 정말로 그들을 여읜 주인공 메리는 병약한 고집불통 소녀다. 제대로 사랑받은 적이 없어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메리가 변화하는 순간은 자연을 만났을 때다. 몸과 마음이 단단해진 메리는 돌아가신 고모의 버려진 화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그녀의 생명력은 병약한 사촌 콜린에게까지 이어진다. 자기 자신에 이어 타인까지 변화시키는 메리의 성장이 눈부시다.



책을 읽는 내내 평화롭고 즐거웠다. 고난과 역경을 예비할 필요 없이 마음 편하게 아름다운 자연 묘사와 메리의 일취월장하는 생명력을 읽는 기쁨이란. 1/3쯤 읽다가 문득 이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책과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기란 힘들테니. 특히 걸 클래식 컬렉션이 여성 캐릭터와 여성 서사에 주목하고 있는만큼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아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바라만보고 있어도 흐뭇한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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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디자인 - 미의식이 만드는 미래
하라 켄야 지음, 이규원 옮김 / 안그라픽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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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읽은 <디자인의 디자인>에 이어 후속작인 <내일의 디자인>도 읽어보았다. 전작에서는 저자의 디자인론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책에서는 근미래에 어떻게 디자인을 해나갈 수 있을지 저자의 비전이 드러나있다. 주거, 관광, 섬유 등의 구체적인 분야가 언급되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이 책에서도 디자인에 대한 저자의 뚜려한 가치관이 돋보인다. 이를테면 '디자인의 본질은 억제, 존엄, 가치관에 있다'라던지 '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저자가 일본 섬유 산업의 미래를 논하며 패션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패션지에서 아우라를 발산하는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사람의 사진을 볼 때, 패션이 '인생의 예술'임을 실감한다고 고백한다. 인간으로서의 결함을 모두 끌어안으면서도 당당한 이에게는 '고목이 자아내는 것 같은 카리스마'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요즘 인간에게는 품위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그 뒤에는 섬유 산업에서의 디자인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이어진다.

다만 저자가 일본의 디자인 미래에 대해 논하고 있는 만큼 책의 내용이 일본의 역사와 미의식에 한정되어 있다. 편견 없이 읽는다면 앞으로 디자인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거시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나도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가 속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고 난 뒤에 아시아권의 문화를 배우는 식으로 넓혀나가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테니. 이 작업은 나를 알아가는 것(즉, 나다움을 찾아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 공부는 근미래에는 각 나라 혹은 각 지역의 전통 문화가 중요해질거라는 저자의 견해를 곱씹어보더라도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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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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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의 자문위원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하라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그가 참여했던 리디자인 전시, 무인양품 기획 뿐만 아니라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까지 그의 디자인관이 차곡차곡 담겨있는 책이다.



하라 켄야에 따르면 디자인이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욱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오감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는 것‘과 ‘기존의 역할을 미지화하는 것‘ 또한 디자인에 속한다.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테크놀로지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디자인적인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기업에서는 고객의 욕망을 사로잡기 위해 마케팅과 디자인에 점점 힘을 기울이고 있으니 역시 디자인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하라 켄야가 기획한 ‘종이와 디자인‘ 전시 이야기였다. 최근 정보 기술의 진화로 미디어로서의 종이는 그 주역에서 내려와 본래의 ‘종이‘라는 물질성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기억에 남는다. 이북 및 온라인 구독 서비스 시장의 성장으로 종이책은 점점 프리미엄화 될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추측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정보를 담은 미디어성보다는 종이의 물성을 살리는 책. 미래가 기대된다.



디자인, 생활 속 미의식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앱스트랙트 : 디자인의 미학>과 매거진B 시리즈를 병행하고 있는데, 이 책과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지점이 많았다. 디자인의 다양성과 역할 그리고 브랜딩에서의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두 콘텐츠 모두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라 켄야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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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호 세대 인문 잡지 한편 1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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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문잡지 한편 1호 ‘세대‘를 드디어 읽어보았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잡지다. 한가지 주제를 다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글의 호흡이 간결하고 해당 분야를 잘 모르는 독자들도 잘 따라갈 수 있을만큼 글의 길이와 호흡이 간결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창간호의 주제는 ‘세대‘다. 세대란 무엇인지, 왜 세대 담론이 화두가 되고 있는지부터 밀레니얼 세대와 페미니즘, 탈코르셋, 중국 및 베트남의 청년세대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세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일단 박동수의 ‘페미니즘 세대 선언‘을 시작으로 정혜선의 ‘미래세대의 눈물과 함께‘로 끝맺는 순서가 꽤 마음에 들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어느 나라나 대체로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 기후문제의 심각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인지 아쉬움도 있었다. 주제인 ‘세대‘를 중심으로한 글들의 방향이나 교차성은 만족스러우나 너무 기본적인 내용만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청년 문제나 페미니즘의 경우 평소에도 관심있게 찾아보던터라 익숙한 내용이 많아서 더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잡지의 목표가 ‘학자들을 연결해 개념의 지도‘를 그리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를 충분히 달성하고 있는 만큼, 더 깊이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기도 하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잡지를 읽고 관심이 가는 분야는 스스로 찾아볼 수도 있을테다. 실제로 잡지를 읽으며 몇 편의 글에서 동시에 언급되는 책들은 읽어봐지 싶었다. 특히 기후문제에 관해서는 필히 더 알아봐야지 다짐하기도 했고.





어쨌든 인문잡지의 등장이 반갑다. 구독의 시대인만큼, 함께 읽을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좋았고. 이번 달에 출간될 2호 ‘인플루언서‘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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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식과 이완의 해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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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좋아하기 힘든 주인공을 끝끝내 독자의 마음이 기울도록 그려내는 오테사 모시페그의 저력이 다시 한 번 돋보이는 소설 <내 휴식과 이완의 해>. 주인공은 부모님의 유산으로 살아가는 특권층 미모의 늘씬한 금발 여성이다.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지독한 무기력증과 염세를 느끼는 주인공은 온갖 약물에 의지해 기수면상태를 이어가다가 인페르미테롤이라는 시판되지 않은 약을 접한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데, 이 약을 먹으면 사흘간 의식이 사라진다! 주인공은 남은 인페르미테롤이 허락하는 만큼 스스로를 집 안에 격리시키며 잠을 자기로 결정한다.



언젠가 나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못견디는 사람임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휴일임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독서나 영화, 드라마 감상같은 것도 사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라 온전히 쉰다고 보기는 어렵다.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깨달음 이후 의식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휴식이란 긴 수면과 식사, 산책 정도로 꾸려진 간결한 시간이다. 그냥 존재하는 시간.



주인공의 선택은 극단적이지만 매혹적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도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잊고 잠시 의식의 스위치를 꺼두는 일. 봄을 준비하듯 오래 겨울잠을 자는 일. 어쩌면 주인공이 선택한 잠도 문제를 정면 돌파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자는 재정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휴식이었다고 말할 수도, 주인공의 행동은 회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온전한 휴식을 바라지 않나. 그 상상을 주인공이 대신해서 실현해준다는 것만으로도 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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