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수법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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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무리는 미스테리 소설로! 40대 싱글 여성이자 탐정인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이별의 수법>이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일찍이 소개된 <조용한 무더위>와 <녹슨 도르래>의 프리퀄격으로, 탐정 사무소의 폐업으로 일자리를 잃은 하무라 아키라가 미스테리 전문 서점인 ‘살인곰 서점‘에서 파트타이머로 막 일하기 시작한 때의 이야기다.



이 소설의 주요 미스테리는 은퇴한 여배우가 20여년 전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고 의뢰한데에서 시작된다. 하무라 아키라는 일찍이 이 사건을 담당했던 탐정 이와고의 기록을 따라간다. 그러나 이와고의 실종, 정계 거물들의 흔적, 이들을 둘러싼 신원 미상의 살인사건 등이 줄줄이 얽혀있어 난관이 계속된다. 그러나 하나둘 계속해서 딸려나오는 사건들의 연결점을 찾아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결국 우리가 미스테리 소설을 읽는 이유는 결말에 이르러 파묻힌 진실을 찾고자 함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라는 설명 답게, 소설의 도입부부터 주인공 하무라 아키라는 좌충우돌이다. 고서를 찾으러 갔다가 마룻바닥이 내려앉는 바람에 백골을 발견하고, 이때문에 입원한 병원에서 은퇴한 배우의 의뢰를 받고, 여러 경로로 경찰과 얽히기까지 한다. 다소 툴툴거리는 경향이 있지만 일에 있어서만큼은 프로페셔널함을 풍기며 정확히 맡은 바를 해내는 주인공. 온갖 사건사고를 몰고다니는 주인공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녀가 측은해진다. 그러나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허술한 것이 바로 이 주인공의 매력이다.



이리저리 신경쓸 일도 많고 축축 늘어지기만 하는 요즘, 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한번에 쭉 읽을 수 있었던 소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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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과 편지 - 성폭력 생존자이자 《버자이너 모놀로그》 작가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고발
이브 엔슬러 지음, 김은령 옮김 / 심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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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는 멈추지 않고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는 것 두 가지만이 가능할듯하다. 아버지로부터 성폭력, 학대 등 온갖 폭력들로 고통받아온 이브 앤슬러가 ‘만약 아버지가 나에게 사과편지를 쓴다면‘을 가정하고 쓴 글이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편지를 쓰듯이. 저자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다. 왜 저자는 영영 받을 수 없는 사과편지를 써야만 했을까?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아니다. 그녀 스스로가 비로소 자유로워지기 걷위해서다. 상처를 기록함으로서 더욱 더 그녀 자신이 되기 위해서다.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이기지 못하고 끝내 괴물이 된, 그런 자신을 돌아볼 기회조차 걷어차버린 가해자. 끝끝내 살아남아 자신이 겪은 일들을 기록해내며 성찰과 자유로 향하는 생존자. 이 책을 읽으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넘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쳐버린 사람과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고자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브 앤슬러가 어떤 시간을 통과해왔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집요하게 파괴당한 ‘이전의 삶‘ 그리고 그 잿더미 속에서 계속 무너지고 미끄러지며 처음부터 다시 쌓아올렸을 ‘이후의 삶‘. 그저 책을 읽었을 뿐인 나도 읽은 뒤 며칠 간 일상생활이 어려웠는데 당사자인 저자는 어떠했을 것인가.



이 책의 특별함은 도저히 불가능하게만 느껴지는 일을 저자가 해냈다는 것에 있다. 자신의 고통과 직면하고, 그 고통을 준 사람을 응시하고, ‘왜 그는 가해자여야 했는지‘에 대해 성찰하고, 받지 못한 사과 편지를 쓰는 일 말이다. 나는 이 책이 쓰여졌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감히 품위와 숭고함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린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받아야 할 사과를 받지 못한 이들에게.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지조차 못하는 가해자들에게. #비비안추천도서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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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연예인 이보나
한정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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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기억할 것.˝ 그리고 ˝낙관할 것.˝(‘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이 말이 하루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지금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어서겠지. 기대를 가득 안고 읽은 한정현의 소설집 <소녀 연예인 이보나>. 내가 다독하는 이유는 정독할 책을 골라내기 위함인데(<공부란 무엇인가>로부터 배운 것.), 이 소설은 정독할 책 리스트로 옮겨 두고두고 읽게 될 것 같다. 한정현의 소설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준다. 독자로서 앞으로 어떤 여정을 함께하게될지 두근거리는 마음이다.



<소녀 연예인 이보나>에서는 느슨한 연작 소설의 형태를 띄고 있는 여덟 편의 소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땅의 역사가, 나의 조상의 역사가, 나의 부모의 역사가 결국 나에게 깃든다는 것. 그리고 영영 서로를 모를 타인인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 정확하게 들어맞지는 않지만 끝없이 변주되는 연결점들이 각각의 소설에 들어가 있다. 소설들은 때로는 치열한 탐구의 형식으로, 때로는 어렴풋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형식으로 쓰여져있다. 이 책은 여성, 성소수자, 재외국민 등 소수자인 이들과 그들의 정체성, 그들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기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그 시간을 살았던 이들, 그리고 지금의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소설집이다. 결국에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결국에는 낙관의 힘을 믿게 하는.

많은 이들이 함께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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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했던 날들에 대해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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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 백수, 싱글.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는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저자가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미있다. 요즘 같은 시기 집콕하면서 읽을만한 최적의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 조금 읽다가 덮어둔 이 책을 어제 우연히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그만둔 이유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순식간에 몰입해서 읽었다.



저자는 홧김에 퇴사를 감행한 뒤, 변화한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본다. <랩걸>을 읽으며 모든 것을 걸고 자기 자신이 되려고 하는 식물의 자세로부터 배움을 얻고, 림킴의 새 음악을 들으며 40년 넘게 불안으로부터 도망쳐온 스스로를 새롭게 돌아본다. 이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스스로를 새롭게 알아가기에 늦은 때란 없음을 확신하게 된다. 결국에는 스스로의 상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도 다시금 깨닫게 되고.



무엇보다 유려하고 재치 넘치는 문장들 덕분에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는 저자의 태도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겉치레 없이 그냥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저자에게서는 왠지 ‘쿨한 언니‘의 분위기가 난다. 게다가 이 책 속에는 다양한 책, 영화 등 문화적 레퍼런스들도 가득하다. 이미 읽은 책들도 저자의 문장들 사이에서 새롭게 만나니 다시 읽어야 할 것만 같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 속의 문장 뒤에는 치열한 독서와 고민이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고.



P.S. 행간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일러스트도 위트 있고 귀여워서 페이지를 넘기는 맛이 나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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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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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예술가의 이름을 전부 나열해보자. 그 중 여성 예술가는 얼마나 될까? 충격적일 정도로 적을 것이다. 여성 예술가들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혹은 그들의 재능이 남성 예술가들에 비해 뒤쳐졌기 때문일까?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에서는 이에 반기를 들며 그동안 소외되어온 여성 예술가 21명을 소개한다. 시대의 편견과 맞서 싸우면서 자신만의 예술을 갈고 닦았던 여성 예술가들을 말이다.



18세기 유럽의 스타 화가였던 앙겔리카 카우프만, 남성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뒤지지 않는 인상주의의 거장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 신화 속의 여성을 강인하게 그려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이상화되지 않은 여성의 몸을 그린 수잔 빌라동 등등…. 그동안 여성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아는 이름이 절반도 채 되지 않아 놀랐다. 또한 페이지를 넘길수록 불세출의 거장으로 칭송받아온 이들과 견주어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에 크게 감탄했다. 특히 클라라 페테르스의 정물화와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자화상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이제라도 이들의 이름과 역사와 작품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책을 읽는 내내 새로운 예술 작품들을 만나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책 속에 소개된 여성 예술가들은 제각기 다른 환경과 다른 재능을 가졌지만 한계에 굴하지 않고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전부 만나고 나니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라는 제목이 더욱 마음에 닿는다. 오프라인 전시회를 감상할 길이 요원해진 지금, 책 속에서나마 훌륭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기뻤다. 아름다운 표지와 내지 구성도 읽는 즐거움에 한 몫 했음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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