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바통 3
강화길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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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명의 여성 소설가가 참여한 ‘고딕-스릴러‘ 테마 소설집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궁금했다. 여성이 그려내는, 여성이 주인공인 고딕 스릴러란 어떤 이야기일지. 또 여덟 편이 각각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를지. 허희정 소설가의 작품 속 한 구절을 따온 제목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에 계속 눈길이 가기도 했고.



이 소설집 속 작품들은 서늘하고 스산하고 위태롭다. 주로 속을 가늠할 수 없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중 일부는 분열되고 심지어는 파열된 내면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은 어떤 식으로든 다른 여성들과 영향을 주고받는데, 그 주체도 객체도 여성이라는 점이 좋았다. 또한 소설 속에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도 등장하고(‘단영‘,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고딕 풍의 성을 연상시키는 장소(<이전의 여자, 이후의 여자>)도 등장한다. 이토록 다채로운 결의 이야기들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했던 독서 시간.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작품은 임솔아의 ‘단영‘, 천희란의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 최진영의 ‘피스‘다. ‘단영‘은 사람들이 원하는 비구니의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하여 절 하은사를 운영하는 효정과 그녀가 설립한 대안학교에 머무르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속세로부터 떨어진 절이라는 공간이 더없이 세속적이라는 모순. 설정부터 독특하고 또 새로웠다. 그런가 하면 ‘카밀라 수녀원의 유산‘은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공동체에 라우라와 그녀의 엄마가 머무르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비밀에 싸인 수녀원과 라우라 모녀의 갈등이 그려진 이 소설이야말로 여덟 작품들 중 가장 스릴러에 가깝지 않나 싶다. 믿고 읽는 최진영 작가의 ‘피스‘ 또한 기대 이상이었다. 딸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보호하고자 했던 엄마와 자살을 시도한 언니를 둔 주인공의 이야기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은 문장의 리듬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상관없어 보이는 일들이 상관을 하며 굴러간다‘(226p)



결국 이 소설집은 소외된 자들이 가진 파괴적인 욕망을 그려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강지희 문학평론가의 발문도 놓치지 말고 읽어보시길. 소설을 읽음으로써 지독하게 외로운 주인공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는 곧 나의 외로움 또한 이해될 수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소외된 자들의 외로움은 지독하게 이어지지만, 그 고립이 정확하게 이해되는 순간에 어떤 연대가 된다.‘(2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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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 창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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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금융예술인 이랑의 새 에세이! 제목부터 심금을 울린다.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50만원에 판 에피소드부터 보험회사에 들어간 이유, 앨리바바와 30인의 친구친구 프로젝트까지 솔직한 이야기들이 한아름 담겨있다.



어떤 일을 하든 돈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더 나아가 생존과도 직결되어있는 문제이기 때문. 예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책 속의 여러 에피소드들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인터뷰를 할 때 인터뷰이에게는 비용이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사진작가 등 인터뷰에 참여하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말이다.



또, 기능하는 얼굴과 기능하는 몸에 대한 이야기도 정말 좋았다. 다만 깔끔하고 청결하게, ‘여성적으로’ 꾸미든 꾸미지 않든 내가 편하게 느끼는 쪽으로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나갈 것!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반문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귀하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기에, 스스로를 재료삼아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이랑. 보험 설계사를 겸하게 된 예술가가 궁금한 이들, 멋진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싶은 이들, 꾸밈없이 솔직한 에세이를 읽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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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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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기 고백에서부터 시작하는 JTBC 권석천 기자의 에세이. 한국 사회의 단면을 응시하는 깊고 또렷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자기 자신이나 특정한 이념을 내세우지 않고 풀어낸 글들이지만 충분히 진중하다. 겸손하되 힘 있는 글. 이 한 권의 책에 현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공감할수밖에 없는 37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람에 대한 예의>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일들을 마주할 때 어떻게 신념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서이기도 하다.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며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마주한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지, 나아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저자는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의심하는 일, 그러니까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태어‘났음을 잊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비록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람이지만 성찰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더 나아가, 이 책 속의 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물음에도 좋은 답이 되어준다. ‘이 사회가 원래 그렇지 뭐.‘라는 무감각한 생각에 젖은 우리의 정신을 번쩍 깨워줄수도 있겠다. 책 속에 실린 동시대 이슈들, 영화, 문학 등 풍부한 콘텐츠들이 주는 지적 즐거움은 덤이다. 시간이 흘러 읽어도 좋겠지만, 지금 여기 현재의 이야기이니만큼 곧바로 읽어보시길 권한다.



+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께서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었는데(감사합니다 너무 좋네요 흑흑흑), 나 역시 다 읽자마자 친구에게 강제로 빌려주겠다고 말해버렸다. 혼자 읽기에는 너무 아까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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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니코 워커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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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다. 적나라하다. 자극적이다. 흥미롭다.



저자가 은행 강도로 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 쓴 자전적인 소설, <체리> 이야기다. 올 하반기 개봉될 영화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대학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발을 딛지 못하고 방황하던 주인공은 군대에 자원한다. 그가 파병된 곳은 이라크. 제대한 뒤에도 전쟁, 사랑, 마약 중독, 범죄 이 네 가지는 끝없는 악순환이 되어 주인공을 낭떠러지로 내몬다. 그는 그야말로 삶의 모든 방향에서 갉아먹힌다. 무엇이 잘못된걸까? 그의 절망에는 입구도 없고 출구도 없는 듯하다. 저자를 끔찍하게 닮은 듯한 이 소설의 주인공은 파편화된 에피소드들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한채 계속 맴돈다.



내용도 문체도 날것 그대로다. 그래서 신선하고 속도감있게 읽히지만 어딘가 찝찝하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즐기며 읽었다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낀다. 소설 속 묘사가 필요 이상으로 적나라하다고 느껴서일까. 평이 상당히 갈릴듯한 소설이다. 그러나 J.D.샐린저와 윌리엄 버로스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분명 이 소설도 흥미로우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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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틀랜드 -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쫄딱 망하는 삶에 관하여
세라 스마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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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골 백인 빈곤 여성’. 이 책의 주인공 세라 스마시의 이야기다. 캔자스 시골 농장에서 극빈층으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낱낱이 밝히며 가난의 대물림을 폭로한다. 구체적인 개인의 역사가 증언하는 실제 이야기이기에 울림이 크다.



극빈층에게 10대 임신, 가정폭력, 떠돌이 생활, 교육의 부재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더 나은 삶을 향해 노력하지 않는가? 특히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서. 미국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 아니던가! 이런 물음에 미국인이자 빈곤층이자 백인이자 여성이라는 복잡한 정체성을 가진, 소외된 사각지대에 위치는 저자가 말한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이 책의 독자가 영영 태어나지 않을 저자의 딸 오거스트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딸을 낳지 않기로 한 저자의 결정을 되짚어 올라가보자. 그녀가 왜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저자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야기까지 함께 거슬러올라가보자. 가난의 수치와 고통스러움을 정면으로 마주해야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다. 우리는 아직 가난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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