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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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는데 좀 겁먹은 것 같아. 아침부터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누웠다. 어제 읽다 만 책을 다시 펼쳐본다.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어제는 이 책을 당장 읽어야할 것만 같아서 너덜너덜한 몸을 끌고 교보문고에 갔었다. 박연준 시인의 시 구절에서 빌려온 제목부터 멋지잖아. 만듦새도 너무 근사하고. 무엇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초판 한정 엽서를 구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멋진 문장에 모조리 연필로 밑줄을 그어야지 마음먹었는데 책상 앞에 가만히 도착할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버스에서 읽기 시작했다. 이 페이지 꼭 기억해뒀다가 집에 가서 다시 읽고 표시해둬야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상태 그대로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읽었다. 너무 재밌군.. 밑줄은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긋지 뭐, 이렇게. 문장을 읽는데 어쩐지 요조님의 목소리가 포개지는 것처럼 다정했다. 지금까지 읽은 요조님 책들 중 가장 좋다. 이 책 엄청 좋아하게 될 것 같아, 하는 기분좋은 예감과 함께 일요일을 위해 몇 편 남겨두었다.



그리고 몇 편밖에 남겨두지 않은 어제의 나를 원망하며 후루룩 끝까지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고 있는 오늘의 나. 어떤 글이 가장 와닿았나 책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내가 왜 ‘사는데 좀 겁이 난다’는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루시는 여전히 겁이 나. 그러나 겁이 난다는 사실은 하나도 겁 안 나. 루시는 지금 아주 용감하게 겁이 나. 그 마음으로 오늘 노래해볼게.’(26p) 용감하게 겁이 난다니.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겁이 난다는 사실이 겁이 나고 그 겁이 또 겁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26p)’ 용감하게 겁내는 사람의 문장을 졸졸 따라가는 2021년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흘러가는게 삶이야, 숨 쉬자,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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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멧
피오나 모즐리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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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원형의 이야기에 영감이 덧붙여져 폭발적으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짐작되는 소설 <엘멧>. 오래 전 잉글랜드에 존재했던 켈트 왕국 ‘엘멧’이 소설의 제목인데, 이 지역은 현재도 황야로 가득한 곳이라고.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스물 아홉에 <엘멧>이라는 첫 소설을 완성한다. 외딴 숲 속에 자신들만의 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아빠와 아들, 딸의 이야기로 거칠고 폭발적이며, 외롭고 쓸쓸하고, 서정적이다.



이 소설은 순수하고 야생적인 무엇인가가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파멸되는, 그리하여 폭발해버리는 이야기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아빠 존, 딸 캐시, 아들 다니엘은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에 속해있다. 거인과 같은 힘으로 가족을 지키는 존과 숲에서 가장 자유로운, 견고한 내면을 지닌 캐시와 예민하고 섬세한 마음을 지닌 다니엘은 숲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은 숲 소유권을 비롯한 규범들과 폭력 사건 등에 의해 침범당한다. 마치 남들과 다른 이들의 삶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듯 무참히 파괴당한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전반부가 무색하게 후반부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소설은 가족들 중 가장 차분하고 섬세한 다니엘의 시점에서 화목했던 과거와 홀로 도망중인 현재가 교차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읽어나갈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어 예정된 비극 속으로 소용돌이치듯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거칠게 느껴지는 이야기 전개와는 달리 서정적인 문장들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결말! 영웅의 탄생 프리퀄 영화라고 해도 믿을만한, 아주 잔혹하고도 강렬한 결말이었다. 기이한 에너지가 몰아치는 소설. 다 읽고 나니 부커상 최종 후보작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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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도시 -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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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뉴욕이라는 도시와 고독이라는 감정, 그리고 고독을 예술로 표현한 예술가들에 대한 책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사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얽어가는 저자의 글솜씨가 놀랍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문장들. 독창적인 스타일로 우아하게 쓰여진 글이라는 점에서 리베카 솔닛이 떠오르지만 솔닛과는 다르다. 확실한 건 내가 가장 열광하는 종류의 글쓰기라는 것.



도시에서 사는 현대인이라면 이 책의 앞부분만 들춰보아도 저자가 말하는 고독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고층 빌딩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수백만 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이면서도 가끔은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 세기말 뉴욕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고독을 감각했을 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예술 속에서 고독을 표현해냈다. 에드워드 호퍼, 앤디 워홀, 헨리 다거,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저자는 고독과 닿아있는 이들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고독이라는 단어로 섣불리 한계를 긋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언어로 소개되는 예술가들은 그 면면을 전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입체적이다. 다양한 삶, 다양한 고독, 그리고 규정될 수 없는 그 외의 이야기들. 덕분에 뉴욕과 고독이라는 테마 아래 시작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잠들기 전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내리읽어서인지 나에게는 이 책이 더욱 특별하고 내밀하게 여겨진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고독을 정확하게 공감해 주는 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많은 순간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이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어떻게든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너무나 다르지만 너무나 비슷한 도시의 사람들이 어쩐지 애틋하다. 자신의 고독을 내보이며 멋진 이야기를 선물해 준 올리비아 랭을 생각하며, 언젠가 나에게도 나의 고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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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4권)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세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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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을 직접 겪고 나니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라는 메시지가 남달리 다가온다. 이미 20년 전에 이 사실을 알리고 적극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시리즈다. 이 책이 출간된지 20년이 다 되었다는 사실에 한 번, 시리즈가 네 권이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인구를 100명으로 본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 아주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 이웃에 대해, 환경에 대해, 빈부격차에 대해, 결국에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세계 인구가 78억으로 늘어난 2021년에도 이 책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지구는 모두의 것이고, 가진 것을 나누려고 하지 않을 때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것. 이 메시지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사람 편‘에 이어 ‘이웃 편‘, ‘환경 편‘, ‘부자 편‘에서는 전문적인 통계자료와 에세이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깊이 남는 것은 이해인 수녀, 한비야 작가의 에세이가 실린 ‘이웃 편‘이다. ‘자기가 행복한지 모른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는 문장과 ‘남을 돕고, 가진 것을 나누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특히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웃편‘에는 ‘사람편‘의 뒷이야기와 통계자료도 수록되어있어 시리즈 중 가장 두툼하다. 그러나 그만큼 얻어갈 것들이 많아 이 시리즈 중 한 권만 권하자면 나는 ‘이웃편‘을 고르겠다.)



급속도로 악화되어가는 지구의 여러 문제들(환경, 질병, 가난 등)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행함으로써 문제가 진행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놀랍지만 그 시작은 매일 충분히 행복함을 느끼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환경을 생각하는 것에서부터다. 지금 읽어도 멈칫하게 되는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시리즈. 다시 ‘사람 편‘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당신은 오늘 하루가 설레었나요? 오늘 밤, 눈을 감으며 당신은 괜찮은 하루였다고 느낄 것 같았나요?˝ 이 물음에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어쩌면 매일 이 질문에 답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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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내 일 - 일 잘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내 직업을 발견했을까?
이다혜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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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일자리가 줄어들고 프리랜서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곳곳에서 접한다. 주변에서는 ‘나는 n잡러다‘하는 선언도 심상치 않게 들려온다. 이럴 때일수록 나의 불안함은 하늘을 뚫고 저 우주 멀리까지 치솟는다. 대체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이 드넓은 세상에 내 적성에 꼭 맞지는 않더라도 대충 비슷한 일자리 하나쯤은 있을 텐데. 도대체 스스로의 업은 어떻게 만들어가야하는 걸까? 청소년기에 진작 해야했을 진로 고민을 엉뚱한 시점에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했었는데 ‘진로 고민을 평생 하게 될 줄은 몰랐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멋진 인터뷰집이 나왔다. (아, 평생!) 이다혜 작가와 일곱 명의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내일을 위한 내 일>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일곱 명의 여성들이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영화감독 윤가은, 배구 선수 양효진, 바리스타 전주연, 소설가 정세랑, 경영인 엄윤미, 고인류학자 이상희,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다양한 진로만큼이나 다양한 여정을 거쳐온 이들이다. 일곱 편의 인터뷰를 읽으며 결국 정해진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과 인터뷰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때그때의 최선을 다하며 일하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여기서 방점은 그때그때의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다. 어쨌든 한 걸음씩 계속해서 나아가는게 중요한 것이다. 또, 일곱 인터뷰이들의 일에 대한 태도가 공익을 향해 확장되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인터뷰이들이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분들이어서일까. 진로 고민뿐만 아니라 일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만드는 인터뷰들이다.



동시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더 듣고 싶다. <내일을 위한 내 일>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산뜻하게 읽히는 책이다. 아, 서문에 따르면 철저한 원칙(인터뷰 비용 및 시간, ‘최선을 다한 집중으로 정돈된 표현‘) 하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고! 인터뷰 내용이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후루룩 읽고 마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살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읽는다는 건 인터뷰이의 ‘살아온 모든 날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니까.





+ 함께 읽어볼 것들 :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90년대생 여성 10명의 인터뷰집, 아직 읽기 전이지만 라인업만 봐도 느껴지는 명작의 기운), <언니들이 있다>(각자의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열 두명의 ‘언니‘들 인터뷰집), 카카오 페이지 ‘멋있으면 다 언니‘(단행본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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