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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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묻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이에게 집은 오로지 휴식 공간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집이 일터일 수도 있다고. 막 독립을 앞두고 있었던 그 때의 나는 집의 의미를 재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나 자신, 산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구현될 공간에 대해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반 가까이 흐른 지금 문득 고개를 들어 나의 집을 둘러본다. 내가 나도 모르게 마음을 내어주게 된, 꾸밈이랄 것 없이 책으로 가득찬 나만의 작은 공간을.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저자가 거쳐온 집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가 지나온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대구에서 가족들과 함께했던 집에서부터 서울에 올라와 함께 또 따로 지냈던 집, 마침내 최초의 집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지금의 집에 이르기까지 공간에 따라 저자의 삶 또한 변화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가지는 보편성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집과 얽힌 추억이 있다. 그러니 저자의 이야기가 도통 남의 일같지 않은 것이다. “사는 동안은 내 집이니까요, 월셋집이든 전셋집이든.(102)”



부드럽지만 단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문장을 따라읽으며 감정이 수차례 움직였다. 그동안 지나온 집들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겼다가 앞으로 살게될 집들을 그리며 기대에 부풀기를 반복하는 식으로.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문장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집은 부동산이기도 하지만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이기도 하다. “집도 생명체와 같아서 아끼고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저자의 아버지 말씀이 백번 옳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집들은 내가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쓰였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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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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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는데 좀 겁먹은 것 같아. 아침부터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누웠다. 어제 읽다 만 책을 다시 펼쳐본다.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어제는 이 책을 당장 읽어야할 것만 같아서 너덜너덜한 몸을 끌고 교보문고에 갔었다. 박연준 시인의 시 구절에서 빌려온 제목부터 멋지잖아. 만듦새도 너무 근사하고. 무엇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초판 한정 엽서를 구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멋진 문장에 모조리 연필로 밑줄을 그어야지 마음먹었는데 책상 앞에 가만히 도착할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버스에서 읽기 시작했다. 이 페이지 꼭 기억해뒀다가 집에 가서 다시 읽고 표시해둬야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상태 그대로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읽었다. 너무 재밌군.. 밑줄은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긋지 뭐, 이렇게. 문장을 읽는데 어쩐지 요조님의 목소리가 포개지는 것처럼 다정했다. 지금까지 읽은 요조님 책들 중 가장 좋다. 이 책 엄청 좋아하게 될 것 같아, 하는 기분좋은 예감과 함께 일요일을 위해 몇 편 남겨두었다.



그리고 몇 편밖에 남겨두지 않은 어제의 나를 원망하며 후루룩 끝까지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고 있는 오늘의 나. 어떤 글이 가장 와닿았나 책을 뒤적이다가 갑자기 내가 왜 ‘사는데 좀 겁이 난다’는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루시는 여전히 겁이 나. 그러나 겁이 난다는 사실은 하나도 겁 안 나. 루시는 지금 아주 용감하게 겁이 나. 그 마음으로 오늘 노래해볼게.’(26p) 용감하게 겁이 난다니.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겁이 난다는 사실이 겁이 나고 그 겁이 또 겁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26p)’ 용감하게 겁내는 사람의 문장을 졸졸 따라가는 2021년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흘러가는게 삶이야, 숨 쉬자,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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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멧
피오나 모즐리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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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원형의 이야기에 영감이 덧붙여져 폭발적으로 쓰여지지 않았을까 짐작되는 소설 <엘멧>. 오래 전 잉글랜드에 존재했던 켈트 왕국 ‘엘멧’이 소설의 제목인데, 이 지역은 현재도 황야로 가득한 곳이라고.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자는 스물 아홉에 <엘멧>이라는 첫 소설을 완성한다. 외딴 숲 속에 자신들만의 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아빠와 아들, 딸의 이야기로 거칠고 폭발적이며, 외롭고 쓸쓸하고, 서정적이다.



이 소설은 순수하고 야생적인 무엇인가가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파멸되는, 그리하여 폭발해버리는 이야기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아빠 존, 딸 캐시, 아들 다니엘은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에 속해있다. 거인과 같은 힘으로 가족을 지키는 존과 숲에서 가장 자유로운, 견고한 내면을 지닌 캐시와 예민하고 섬세한 마음을 지닌 다니엘은 숲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일상은 숲 소유권을 비롯한 규범들과 폭력 사건 등에 의해 침범당한다. 마치 남들과 다른 이들의 삶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듯 무참히 파괴당한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전반부가 무색하게 후반부에서는 피비린내가 난다.



소설은 가족들 중 가장 차분하고 섬세한 다니엘의 시점에서 화목했던 과거와 홀로 도망중인 현재가 교차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읽어나갈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어 예정된 비극 속으로 소용돌이치듯 빨려들어가는 듯했다. 거칠게 느껴지는 이야기 전개와는 달리 서정적인 문장들도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결말! 영웅의 탄생 프리퀄 영화라고 해도 믿을만한, 아주 잔혹하고도 강렬한 결말이었다. 기이한 에너지가 몰아치는 소설. 다 읽고 나니 부커상 최종 후보작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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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도시 -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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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뉴욕이라는 도시와 고독이라는 감정, 그리고 고독을 예술로 표현한 예술가들에 대한 책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사적인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얽어가는 저자의 글솜씨가 놀랍다.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문장들. 독창적인 스타일로 우아하게 쓰여진 글이라는 점에서 리베카 솔닛이 떠오르지만 솔닛과는 다르다. 확실한 건 내가 가장 열광하는 종류의 글쓰기라는 것.



도시에서 사는 현대인이라면 이 책의 앞부분만 들춰보아도 저자가 말하는 고독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휘황찬란하게 반짝이는 고층 빌딩들 사이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수백만 명의 사람들 중 한 명이면서도 가끔은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 세기말 뉴욕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고독을 감각했을 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예술 속에서 고독을 표현해냈다. 에드워드 호퍼, 앤디 워홀, 헨리 다거,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저자는 고독과 닿아있는 이들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고독이라는 단어로 섣불리 한계를 긋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언어로 소개되는 예술가들은 그 면면을 전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입체적이다. 다양한 삶, 다양한 고독, 그리고 규정될 수 없는 그 외의 이야기들. 덕분에 뉴욕과 고독이라는 테마 아래 시작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잠들기 전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내리읽어서인지 나에게는 이 책이 더욱 특별하고 내밀하게 여겨진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고독을 정확하게 공감해 주는 이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많은 순간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이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어떻게든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너무나 다르지만 너무나 비슷한 도시의 사람들이 어쩐지 애틋하다. 자신의 고독을 내보이며 멋진 이야기를 선물해 준 올리비아 랭을 생각하며, 언젠가 나에게도 나의 고독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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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4권)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세트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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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을 직접 겪고 나니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라는 메시지가 남달리 다가온다. 이미 20년 전에 이 사실을 알리고 적극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시리즈다. 이 책이 출간된지 20년이 다 되었다는 사실에 한 번, 시리즈가 네 권이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인구를 100명으로 본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 아주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 이웃에 대해, 환경에 대해, 빈부격차에 대해, 결국에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세계 인구가 78억으로 늘어난 2021년에도 이 책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지구는 모두의 것이고, 가진 것을 나누려고 하지 않을 때 모두가 불행해진다는 것. 이 메시지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사람 편‘에 이어 ‘이웃 편‘, ‘환경 편‘, ‘부자 편‘에서는 전문적인 통계자료와 에세이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깊이 남는 것은 이해인 수녀, 한비야 작가의 에세이가 실린 ‘이웃 편‘이다. ‘자기가 행복한지 모른다는 것이 우리 시대의 비극‘이라는 문장과 ‘남을 돕고, 가진 것을 나누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특히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웃편‘에는 ‘사람편‘의 뒷이야기와 통계자료도 수록되어있어 시리즈 중 가장 두툼하다. 그러나 그만큼 얻어갈 것들이 많아 이 시리즈 중 한 권만 권하자면 나는 ‘이웃편‘을 고르겠다.)



급속도로 악화되어가는 지구의 여러 문제들(환경, 질병, 가난 등)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행함으로써 문제가 진행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놀랍지만 그 시작은 매일 충분히 행복함을 느끼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환경을 생각하는 것에서부터다. 지금 읽어도 멈칫하게 되는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시리즈. 다시 ‘사람 편‘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당신은 오늘 하루가 설레었나요? 오늘 밤, 눈을 감으며 당신은 괜찮은 하루였다고 느낄 것 같았나요?˝ 이 물음에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어쩌면 매일 이 질문에 답하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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