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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지음 / 아침달 / 2021년 10월
평점 :
개인적으로 꼽는 올해 최고의 책.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독자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인데, 이 책은 그 이상이었다. 몇 주 동안 이 책을 아껴 읽으면서 글을 쓰고 싶어졌고, 공연을 보고 싶어졌고, 급기야는 공연을 하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첫 번째 조건을 만족하는 책은 여럿 만나보았으나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을 만족하는 책으로는 이 책이 유일하다. 차오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오래오래 가방 속에 지니고 다녔던,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이 책은 저자가 프랑스와 한국에서 만난 예술과 사람,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공연은 무대에 올려진 바로 그 순간에만 실재하는 것. 꼭 같은 공연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이 유일무이함이, 순간성이 공연예술의 매력이다. 독자로서는 영영 볼 수 없는 공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도 왜 나는 속수무책으로 이 책에 빠져들게 된 것일까. 결국 책 속에 담긴 것들은 공연을 매개로 저자가 엿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 유예되고 간직되었던‘ 이야기이기에.
예술에 대한 곡진한 사랑이 드러나는 책 속 문장들은 오랜 시간 공들여 쓰여졌을 것만 같다. 나는 이런 문장들을 만나길 바라며 그동안 수많은 책들을 읽어온 것이 아닐까. 고요히 아름다웠다. 오래도록 듣고 싶은 백색소음처럼. ‘관객으로서 나는 언제나, 걸려 넘어지고 틈으로 추락해버릴 아름다움을 좇아 극장에 간다.‘(55p), ‘만일 당신이 춤을 춘다면 나는 가만히 앉은 몸으로도 그 춤을 따라 추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다.‘(155p).
이 책에 대해서 더 잘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러려고 할수록 미끄러지는 듯하다. 몇 주 동안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책을 꺼내 보이며 이런 책은 당신도 읽어야 한다고 추천의 말을 쏟아냈는데, 들은 이들은 전부 감탄하며 책 제목을 소중히 적어갔다.
책 자체의 만듦새도 정말 아름답다. 가름끈도 내지 디자인도 사진도(작가님이 직접 찍으셨다니!) 감탄 그 자체. 다만 너무 열심히 읽었는지 뽀얀 커버에 손때가 묻어버렸는데 이 또한 멋이겠으나 소장용으로 한 권 더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 그나저나 작가님 북토크 놓치신 분들, 아침달 계정에서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한때 공연을 보러다니는 것이 삶의 이유였던 시기가 있었고, 고등학생 때 연극을 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거의 매일 저녁 극장 객석에 앉아있었던 때의 기억이 자주 떠올랐다. 아비뇽 연극제에서 아무 연극이나 끌리는대로 보러다녔던 기억, 고등학생때 대본 분석하고 무대에 올랐던 기억들도. 그때는 어떤 식으로든 공연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삶은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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