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이야기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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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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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서커스단은 어디를 가든 밝은 빛을 가져다주기 마련이었다. 지금은 그게 우리의 생명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관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서커스는 아직 죽은게 아니었다.(후략)’ (1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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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전쟁 시기를 배경으로한 작품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안그래도 현실이 괴롭고 팍팍한데 소설속에서까지 힘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전쟁 배경일 경우 높은 확률로 등장인물이 살육의 잔혹함 속에 내동댕이쳐지기 때문에 읽기가 힘들거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그래서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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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제노프의 <고아 이야기>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서커스단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인 노아와 아스트리드 두 여성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다 ‘서커스단’,’공중 곡예사’라는 이름 아래 서로 엮인다. 두 인물 모두 독일군에게 쫓기는 처지에 있어 고통스러운 장면이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건 전쟁의 참혹함보다 두 여성의 우정과 연대가 먼저 마음 속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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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다른 비밀을 간직한 노아와 에스트리드 두 사람이지만 이들은 서로에게서 자기 자신을 본다. 자신들은 상처받을대로 상처받았음에도 결국에 이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누구보다 먼저 감싸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좋았다. 이들의 자매애가, 서로를 향한 연대가 점점 피어나는 과정이 아름다웠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서커스 공연이 계속되듯이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을 보호하려고 한다. 자신의 전부를 내주면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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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에 목마른 이들에게라면 이 책이 즐거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한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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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출판사의 깔끔한 북디자인- 역시 인상적이다. 표지의 일러스트도 훌륭하다. (노아일까? 아스트리드일까?) 다만 종이 커버의 책 등쪽이 점점 하얗게 닳아가는 모양새가 어쩐지 책커버로서 오랫동안 책을 보호해주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보였다. 미관상으로 예쁘기에 불만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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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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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곰
이희우 지음 / 잔(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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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곰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결코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명 따위는 잊었다. 삶과 죽음, 선과 악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 있을 바다를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8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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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작가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작은 곰>. 작은 곰이 어미 곰을 잃고 홀로 숲을 방황하며 바다를 향해 가는 이야기다. 혼자서 인생을 살아가야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작은 곰은 살기 위해 분투하고 선을 행하기 위한 사명을 가졌다고 자처하지만 그것은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그냥, 그냥, 그냥 사는 것을. 살기 위해 죽고 죽인다. 작은 곰이 운명을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인간 또한 거대한 운명 앞에 무엇을 할 수 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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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얇은 책인데, 무엇보다 튼튼한 양장과 커버 종이의 질감이 너무 매력적이다. 표지 및 책속에 실린 목판화 또한 아름다워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담고 있는 내용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참 아름다운 패키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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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짧은 이야기가 마음을 크게 동요시킬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매끄럽지만은 않은 서사이지만 판화와 함께였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굳이 억지로 삶의 잔혹함을 감추지 않아 생각해 볼 거리가 많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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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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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토 칸타빌레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정희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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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라스가 자신의 '비밀스레 겪어낸 개인적 체험'을 엄격한 형식으로 풀어냈다는 바로 그 작품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문지스펙트럼의 새 옷을 입고 출간되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에 얇고 가벼운 책이라 가지고다니며 읽기도 좋은 크기다. 예전 판본을 생각하면 굉장히 새련된 새 옷을 입게 된 셈이다. 이 작품 외에도 문지스펙트럼의 라인업들이 꽤 흥미로운데 이에 대해서는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다시 <모데라토 칸타빌레>.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적이다. 장면들은 별다른 극적인 상황 없이 수많은 대화들로 채워져있다. 여주인공 안 데바레드가 작품의 첫머리에서 '죽음으로 실현되는 절대적 사랑의 장면'을 목격하고 이에 매혹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는 공장지대의 카페에서 쇼뱅이라는 노동자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며 앞선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는데, 이들의 대화에는 암시가 가득해서 직접적인 행위의 묘사 없이도 에로틱한 분위기가 흐른다. 이렇게 섬세함으로 가득한 장면들은 뒤라스 특유의 문장으로서 완성되는데, 이는 허겁지겁 책을 읽어치우는 나로서는 다시 한 번 꼼꼼히 들여다봐야할, 그런 종류의 문장이다. 

사랑의 광기와 죽음. 이 책을 덮으며 단 한 번 사는 인생, 그런 격정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 솔직할까.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서술했듯 사랑은 결국 의지이며, 수많은 이들이 증명했듯 사랑은 또한 환상이다. 어쩌면 자기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한 환상을 만드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의 상대는 나의 환상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시시각각 바뀌어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잔느 모로가 연기한 동명의 영화(1960년)가 강렬하다던데 꼭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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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운명 평화로 가는 길 - 대담, 미래를 위한 선택
이리나 보코바.조인원 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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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도서는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신청할 때 어떤 기대가 있었나. 관심은 있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해 알게될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 책은 2018년 6월 7일 경희대학교 조인원 총장과 이리나 보코바 후마니타스칼리지 명예대학장의 대화를 수록한 대담집이다. 이들은 기후 변화, 세계의 긴장과 갈등, 교육과 정치 등을 주제로 삼아 이야기했다. 

사실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너무 많아서 두루뭉술하다. 말로써 대화한 것을 글로 옮긴 것이고 애초에 이 대담의 목표사 '지구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현안을 모색한다'였기 때문에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게 파고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달라 읽어나가기가 곤혹스러웠다. 나는 애초에 평화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어서일까.

하지만 기후변화는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 인간의 문명 활동이 자행한 결과이기에 인류 공동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명확해보인다. 다만 이 대담집에서는 아주 두루뭉술한 실마리 정도만 얻을 수 있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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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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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i_mauvais/221391841188


처음 듣는 작가와 작품. 아시아 제바르는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이며, 프랑스어권 문학에서 고전 반역에 오른 아랍 작가라고 한다. 알제리와 프랑스 두 나라를 건너다니며 두 국가와 언어를 종횡무진했던 아시아 제바르. 그녀의 열 한번째 장편소설인 <프랑스어의 실종>이 국내 초역되었다.

선뜻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여성/남성, 지배/피지배, 프랑스어/아랍어 등의 대립쌍과 그 경계에 선 인물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나 또한 어디에 있든 스스로를 항상 이방인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거라고 기대했다.

<프랑스어의 실종>은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20년동안 살다가 고국 알제리로 돌아온 베르칸을 주인공으로 한다. 이 소설은 베르칸의 현재와 과거가 뒤엉켜 서술되며, 서술자또한 1,2,3인칭을 넘나든다. 그래서 초반에 제대로 작중 상황을 이해하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2부 '사랑, 글쓰기'에서 베르칸과 그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제법 흥미로웠다. 베르칸이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프랑스에서 만났던 마리즈, 귀향한 후 알제리에서 만난 나지아. 베르칸은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모두 사용하지만 마리즈와 사랑을 나눈 직후 아랍어로 속삭이며 왠지 모를 갈증이 해소되는 것을 느낀다. 단순히 언어 그 자체가 가진 느낌만을 고유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걸까? 역시 언어는 국가이고, 역사이며, 민족인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시아 제바르와 <프랑스어의 실종>. 소수자들의 이야기, 약자의 이야기를 수려하게 담아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사실 프랑스와 알제리의 역사는 나로서는 굉장히 생소해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고 이 점이 독서를 더디게 만들기는 했지만 몰랐던 역사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사실 당신이 자기 자신을 어떠한 의미에서든 소수자 혹은 이방인이라고 느낀다면 이 소설을 꽤 흥미롭게 읽게 될 것이다.


(*을유문화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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