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왕 서영
황유미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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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렇게 재미있을수가. 초등학생 서영이의 시선을 빌려 학교 안 집단과 서열을 다룬 표제작 ‘피구왕 서영’은 물론이고, 극단적으로 가부장적인 집안에게 보란듯이 빅엿을 먹이는 ‘물 건너기 프로젝트’, 사회적 시선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결정한 이들의 ‘하이힐을 신지 않은 이유’,’까만 옷을 입은 여자’,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꼰대들에게 날리는 즉격탄 같은 ‘알레르기’까지. 한 편 한 편이 주옥같다.



독립 출판을 통해 소개되었다가 정식으로 출간된 작품이라니 더욱 의미있다. 작가의 결단이 아니었다면 영영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게다가 간결한 문체와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집단 속에서 살아남기’라는 소재가 만나니 가독성과 흡입력 또한 제대로 갖췄다.



당연히 가장 놀라운 작품은 표제작 ‘피구왕 서영’이다. 학창시절의 나는 교실의 권력다툼에서 논외로 여겨지는, 혼자 열심히 공부하고 책읽는 학생이었지만 학교를 졸업하며 더 이상 교실 집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묘한 해방감을 느꼈었다. 당시 자각은 하지 못했지만 교실 안의 위계질서 같은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부분을 ‘피구왕 서영’에서는 서영을 주인공으로 짚어나간다. 결말에서 서영이 피구를 온전히 좋아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서 다행이다. 포식자 집단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주 작은 용기와 함께할 친구다.



다음 작품도 기대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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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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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마지막권 <잃어버린 사랑>은 엄마의 사랑,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레다는 마흔여덟의 여성으로 두 딸을 이혼한 전 남편에게 보내버린 뒤 휴가를 떠난다. 레다는 해변에서 어린 모녀 니나와 엘레나를 만나고 이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머니와 두 딸에 대한 회상으로 이어진다.



역자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이번 책을 읽으면서 <나폴리 4부작> 생각이 많이 났다. 레누와 릴라가 놀러갔던 해변, 아이들에 대한 그녀들의 태도 같은 것들이. 어쩌면 그 전신이 되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레다의 생생한 언어가 어쩐지 그로테스크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출산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어떻게 아이들을 두고 자신의 커리어를 찾기 위해 떠났는지, 왜 다시 돌아왔는지에 대해 파편적으로 서술한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레다는 엘레나의 인형을 훔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말을 계속하면서.



레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결혼과 출산, 육아는 그녀에게 불행과 짐인 것처럼 느껴진다. 두 딸들에 대해 언급할 때는 애정과 함께 어떤 질투, 지겨움, 답답함 등이 함께 녹아든다. 어쩌면 레다는 어머니가 되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서 남편과 아이를 떠났는데도 결국 그녀는 ‘어머니‘라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 번 어머니가 되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사회는 여성이 어머니가 되면 자연스럽게 ‘모성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레다의 이야기를 읽어봐도 주변의 많은 이야기를 들어봐도 ‘모성애‘는 끝없이 자애롭고 헌신적인 종류의 사랑은 아닌 것 같다. 당연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모든 여성은 아내나 어머니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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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직업 니시카와 미와 산문집 1
니시카와 미와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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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레루‘, ‘아주 긴 변명‘ 등의 감독인 니시카와 미와의 에세이 <고독한 직업>. 영화를 만들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부터 감독 자신의 이야기, 영화 ‘유레루‘ 작업일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창동, 차오밍량 등 동시대 영화인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이 책 한 권에 담겨있다. 이경미 감독의 에세이 <잘 돼가? 무엇이든>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 쪽이 유쾌한 편이었다면 <고독한 직업>은 어쩐지 쓸쓸한 집념과 사투같은게 느겨지는 에세이였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어쩌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영화계에 입문해버렸다며 다소 능청스럽게 자신과 영화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스스로 무능하다고 느껴 각본을 쓰기 시작했던 일, 첫 각본을 보여줬더니 엄청난 혹평을 받은 일, 그리고 슬레이트를 제대로 치지 못해 눈치를 봤던 신입 시절의 일 등 그녀의 영화계 입문 시절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쩐지 짠하다. 그러나 매 순간 도망치고 싶은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집요하게 글을 써냈고 그것을 영화로 탄생시켰다. 책을 읽는 내내 묵묵하고 담담한 그녀의 태도가 돋보였다.



‘결국 좋아하니까 이 일을 계속 한다‘는 촬영 감독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국 좋아하니까. 놓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고독하지만 묵묵히 일에 임하는 그녀의 자세를 보고 결국 나도 묵묵히 내 길을 가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싶다. ‘무능한 나 자신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나름대로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굳건한 그녀처럼, 나도 나만의 해답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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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스쿨
토바이어스 울프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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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명문 사립고. 이곳의 학생들은 실제의 욕망을 감추고 겉으로는 품위있는 척 행동한다. 그런 이들이 가장 높이 사는 가치는 바로 ‘문학적 가치‘. 한 학기에 한 번씩 유명 작가를 초대하고, 글쓰기 투고작 중 1등을 써낸 학생은 작가와 독대할 기회를 갖는다. 이 정도면 읽어보고 싶을만 하다. 문학 청년의 성장담은 항상 궁금하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문학과 오독,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헤밍웨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도. 오히려 나는 주인공보다 후반부에 아주 잠깐 등장하는 수전 프리드먼이라는 여성이 더 궁금했다. ‘용감하고 정직한‘글을 써낸 실제 저자이자 성장한 뒤에 ‘글을 쓰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해버리는 그녀가. 주인공은 그런 수전이 문학이라는 개념을 남근중심주의적 사업이라고 조롱한 것에 대해 비판하지만 사실 수전의 말이 맞지 않은가? 특히 195-60년대에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고.



여러모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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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랑 나쁜 사랑 3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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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페란테의 ‘나쁜 사랑 3부작‘ 두번째 <버려진 사랑>은 30대 후반의 여성 올가의 이야기다. 남편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이별 통보를 받게 된 올가는 감정과 일상의 분열을 경험한다. 급기야는 과거 어린시절의 미친 여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기까지 이른다. 두 아이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만 실상 그녀는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볼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엘레나 페란테는 이러한 올가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낸다.



‘갑작스럽게 떠난 남편과 챙겨야 할 두 아이를 둔 중년 여성‘에 내가 온전히 이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설 속 올가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는 않았다. 바람이 나서 떠난 것은 남편 마리오인데 왜 올가가 비참함에 빠져있어야 한단 말인가. 마치 그녀 삶의 모든 것이 마리오와 가정에 있는 것처럼! 전형적으로 고정된 성역할이라니. 이런 내 감정은 올가가 자신의 현실과 감정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마침내 빠져나오게 되면서 조금씩 평정을 되찾았다.



결국 사랑을 버린 것은 올가다. 아니, 이 소설은 올가가 마침내 마리오와의 사랑을 버리기까지의 이야기다. 그녀가 마침내 홀로 서기까지의 이야기다. 기실 마리오 없이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올가 그녀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의 이야기다.



‘나는 버림받고 혼자가 됐다고 무너져 내리거나 미쳐버리거나 목숨을 버리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조금 망가지기는 했지만 나는 괜찮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온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구든 내게 상처를 주려 한다면 나는 그대로 되갚아줄 것이다. 나는 스페이드의 여왕이다. 나는 독침을 품은 말벌이다. 나는 시꺼먼 뱀이다. 나는 불 위를 걸어도 타죽지 않는 불멸의 생명체다. (1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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