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녀, 아델>과 <달콤한 노래>의 저자인 레일라 슬리마니가 인터뷰 에세이를 출간했다. <섹스와 거짓말>. 저자의 모국인 모로코에서 다양한 여성들과 나눈 인터뷰를 바탕으로 억압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자기결정권 등에 대한 글들이 쓰여있다.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로코는 나에게는 생경한 나라다. 알고보니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며 여성들은 히잡을 써야만 하고 혼전 성관계와 동성애 등이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라고. 아이러니한 점은 이토록 여성에게 순결을 강조하는 모로코가 세계 5위의 포르노그래피 소비 국가이기도 하다는 것!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모로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로코의 경우 법적으로 대놓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을 규제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은근히, 암묵적으로 규제한다.



21세기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도만 다를 뿐 세계 곳곳에서 여성은 성적 도구로 소비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억압당한다. 아니 결혼할 때 순결 서약서를 가져오라니 이게 말이야 뭐야? 그럴거면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규제를 해야 맞지 않나? <섹스와 거짓말>을 읽는 내내 울화통이 터졌다.



억압은 강박을 낳는다. 곧 범죄로 이어진다. 이 악의 굴레는 끊어져야만 한다. 남녀 모두에게 ‘제대로된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동등한 성적 자기결정권’이 주어져야만한다. 더 이상 억압된 사회와 개방된 사회 속에서 여성들(그리고 남성들)이 자아분열로 고통받아서는 안된다.



레일라 슬리마니의 용기에 박수를. 같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언제나 큰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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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에세이를 단숨에 읽어내려갔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씁쓸함이 나를 가득 채우는 것이 느껴진다. <나의 살인자에게>는 친오빠를 법정에 세워야했던 여동생의 이야기다. 수십년간 오빠 빌럼으로부터 세뇌, 폭행, 협박 등을 받으며 그의 범죄행위를 알고도 돕거나 숨겨야했던 여동생 아스트리드. 그녀는 빌럼이 형부의 죽음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알고 점차 빌럼의 속박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스트리드와 그녀의 언니 소냐, 빌럼의 동거인이었던 산드라 셋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빌럼에게 대항했다. 빌럼은 교도소에 수감되어있지만 자신의 동생들의 청부살인을 지시했음이 드러나고, 현재 아스트리드는 신원을 숨긴채 이동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유년시절로 거슬러올라가는 아스트리드의 고백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와 네 형제는 서로를 의심하며 자라야만했다. 그녀는 자신에게도 폭력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가 남자아이였으면 오빠처럼 자라났을지도 모른다.(267)‘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가정폭력의 굴레 속에서 모든 구성원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혹은 그것이 상처인줄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라지자 그 자리를 대신한 큰오빠 빌럼.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모든 가족들은 그를 위해 복무한다. 공포에 질려서.



아스트리드와 소냐는 빌럼에게 이용당하는 생활이 계속되는한 언제든 자신들도 죽임을 당할 수 있음을 알았다. 고발을 해도 죽고 안해도 죽는다면 하자,는 것이 그녀들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스트리드의 갈등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어쨌든 빌럼은 그녀의 오빠인것이다. 수십년간 그의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했던 아스트리드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끝없이 시달린다. 하지만 그녀는 빌럼을 법정에 세웠고 철창에 가뒀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결심. 수백번 수천번 흔들리더라도 행동에 옮기는 순간 삶이 달라진다는 것. 후회와 분노와 협박으로 일상이 점철되더라도 행동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것. <나의 살인자에게>를 읽으면서 내가 배운 것이다. 아스트리드와 소냐, 산드라 세 여성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빌럼을 생각하면 끝없이 아찔해진다. 나라면 그의 협박과 회유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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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지음 / 바다출판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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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예술가의 태도가 작품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한다’고 말하며 이 책을 통해 19명의 예술가와 그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챕터별로 적당한 분량에 도판도 함께 나와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책의 표지가 되기도 한 얀 아더르의 ‘너무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와 사진작가 박영숙의 ‘미친년’들 모음이다. 그 밖에는 이미 익숙한 작품들도 몇몇 있어 반가웠다.



올바른 것이라고 치부되는 관습과 규율에서 벗어나 사고하고 그것들을 작품에 담은 예술가들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가 예술작품을 찾는 이유도 조금 다른 태도를 갖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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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변주곡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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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그해, 여름 손님>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수수께끼 변주곡>. 2017년에 쓰인 비교적 최근작이다. 5개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은 너무나 섬세하고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치명적이고 너무나 섹시하다. 문장마다 녹아나는 세밀한 감정 표현과 농염함이 마치 지나치게 익은 달콤한 과일 향 같아서 소설을 읽는 내내 취한 기분이었다.



다섯 편의 작품마다 다른 장소, 다른 인물, 다른 색, 다른 사랑이 펼쳐진다. 첫사랑부터 처음 만난 상대와의 이끌림, 서서히 불타오르는 사랑, 4년의 시간을 두고 반복되는 나 자신같은 상대와의 사랑, 어긋난 타이밍의 ‘나의 가장 친애하는‘ 사랑까지. 폴의 사랑은, 상대를 향한 뜨거운 마음과 혼자만의 상상은 끝없이 달콤하며 거짓이 없다.



내가 특히 좋았던 작품은 ‘첫사랑‘과 ‘별의 사랑‘이다. 이 두 작품은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데, 인물들의 감정은 물론이고 배경과 상황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니, 글로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상으로도 보고싶다. 사랑을 어떻게 이렇게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적나라하게 표현된 성적 욕망도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 맞다. 음지에서 자행되는 온갖 범죄들이 그 자연스러움을 더럽히고 있을 뿐.



다섯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폴이다. 첫사랑부터 책의 중반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경악스러웠는데, 순정하고 밀도 높은 사랑을 다섯 번이나(어쩌면 더 많이) 경험했다는 것이,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폴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다섯 편의 이야기이지만 각각을 독립된 작품으로 읽는 편이 소설에 집중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번역되지 않은 다른 세 권의 작품도 어서 읽고 싶다. 작가의 에세이들도! 전부! 다! 읽어버리고 싶다. 안드레 애치먼이 그려내는 사랑의 세계에 영원히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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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1/3쯤 읽었을 때 그만둘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스물 넷의 아일린을 따라가는 것이 조금 벅차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일린의 일상이 너무나 암울하고 처절한데다 그녀는 그것에 동화되어 망상으로 가득찬 여자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나는 아일린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에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 읽긴 했다.



아일린은 미국 외곽의 소년원에서 비서로 일하는 스물 넷의 여성으로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그녀는 비참한 현실을 저주하고 증오하며 매일 탈출 계획을 세운다. 도벽과 스토킹도 일삼는다. 이 책은 노년의 아일린이 스물 넷 그 시절 뉴욕으로 떠나기 전 일주일간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이 책은 오테사 모시페그의 데뷔작으로 당시 펜/헤밍웨이 상을 수상하고 맨부커상 후보로 올라간 작품이다. 수상내역을 차치하고서라고 <아일린>이 독특하게 서술된 작품이자 독창적인 캐릭터라는 건 인정해야겠다. 또한 어딘가에는 아일린같은 스물넷도 있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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