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동생이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혼자가려던 친구가 막상 떠나려고 하니 영 심심했던 모양인지 학생 신분이라 방학으로 시간이 여유로웠던 남동생을 끌고간... 남동생 입장에선 운이 좋게 저가의 항공표가 구해졌고, 숙박은 친구가 계산한다는 유혹에 싫지 않게 끌려갔던 여행이었다. 여행 첫날 부터 홍수처럼 터지는 카톡. "재미없어!" 난 킬킬거렸다. 날 두고가니 그런거라고, 재작년 나와 같이 갔던 일본 여행과의 비교 물음에 남동생은 답한다. "비교가 안돼. 누나랑 간게 훨씬 재미있어. 누나들이 너무 보고싶어" 떠나기 전 카스테라를 부탁하며 네 몫으로 담배 한보루 품으라 찔러준 신용카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ㅎㅎ
오사카에서 컴백한 남동생이 현관을 들어섬과 동시에 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손을 잡아 끌어 동생방으로 들어가 봇짐을 앞에 두고 마주보고 앉았다. 눈을 빛냈다. 동생이 주섬 주섬 가방속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을 보면서. 부탁한 화장품 두개와 묵었던 호텔의 POST CARD, 오사가 스타벅스 텀블러, 카스테라...? 얼라? 카스테라는? 내 질문에 동생이 선물상자 두개를 내밀며 말했다. 늦어서 이걸로 집어왔어. 뭐 고를 틈이 없어서 눈에 보이는 거 가져왔어. 이것도 겨우 산거야. 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게 머야! 카스테라가 필요해. 내가 뭘 사와야 하는지 상세하게 알려줬잖아. 투정에 남동생도 투정으로 답한다. 그럼 어떻게 하냐. 비행기도 놓치는 줄 알았는데. 이것도 맛있을거야. 종이를 풀어 상자에서 초콜렛이 섞인 과자를 꺼내 입에 넣었다. 씨.... 맛없어! 다른이에게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맛이다. 울컥. 난 카스테라를 기대하며 4일을 기다렸다고!!!!!
2.
계획을 세웠다. 근무때문에 연휴 내내 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 기간 밀렸던 책을 읽어보겠다고.
하... 이 책을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 해야 하나?
기묘한 실제로 존재하는 사진들로 시작되고, 끝이 나는 책. 처음엔 나름 속도감 있게 책장이 잘 넘어가더니만 나중엔 어서 빨리 읽어버려야겠다는 생각뿐. 해리포터를 좋아했다면 이 책도 좋을 것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난 해리포터를 절반만 좋아해서 인지 이 책도 절반부터는 책장 넘기는 게 의무가 되버렸다.모든게 상상이라 생각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알게 되고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할아버지의 사진속의 이상한 아이들을 만난 제이콥이 자신도 이상한 아이임을 인지하는 것 (주인공이니까.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지. 당연한거고) 그런데 마지막이 이게 뭐야? 아아.. 제이콥 가족을 버리지마. 버려도 이렇게 버리는 게 아니라고. 어쩔수 없이 떠나는 거면 그런 상황임을 나에게 이해를 시켜보라고. 윽. 해리포터보다는 좀 더 연령대가 높은 어른용 동화. 하지만 난 이걸 읽기엔 너무 어른인 모양이다. 재미있다. 재미없다를 떠나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인공이 이렇게 매력 없기도 힘든데...
연휴 전 먼저 읽고 있었던 고구레사진관은. 상편이 사라져버렸다. 직장에도 집에도 없는 걸 보면 어디선가 흘린건가? 아 미치겠네. 집에 있기만을 바라고 있지만 예감이 좋질 않다.
3.
더이상 미뤄두면 안 될것 같아서 일단 잡았다. 난 이런책이 좋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쓰여진 글. 거기에 발행일도 오래전이라 번역이 매끄럽지 않고,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도 드문 드문 보이고. 그래서 집중이 조금은 힘든데 묘하게 매력있다. ㅎㅎㅎ 주인공 로크가 도면을 들고 캐머런을 찾아갈때 여동생에게 카톡으로 물었다. 제부가 "마천루" 가지고 있어? (제부는 건축 설계를 하고 있다.) 여동생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움. 읽고 나서 제부에게 책을 보내줘야겠다
건축과는 다른 이야기로 지금 읽고 있는 부분에 캐더린 홀시라는 여자가 나온다. 소설의 또 다른 인물인 키팅이 찾는 여자. 소박하고 아둔한 첫인상에 두 번다시 만날 이유가 없다고 키팅이 생각했던 여자. 하지만 키팅은 다음날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가 유혹할 필요 없는 여자. 언제든 가질수 있는 여자지만 동료들 앞에서 창피스러운 여자.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 여자. 그는 캐더린은 몇주씩 잊고 지내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키팅은 다시 온다는 약속을 하고. 캐더린은 그걸 믿지 않지만 원망도 하지 않는다. 키팅은 그녀에게 예고 없이 찾아가고, 그런 그를 캐더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웬걸 아직 성장중인 로크와 키팅의 이야기보다 이쪽이 더 눈이간다. 하하. 읽으면서 생각했다. 그가 창피하다고 여기는 캐더린은 대단한 여자구나. 요즘 시각에서 보면 상당히 답답한 캐릭터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정말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녀는 분명히 키팅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사랑할테지만 그녀는 자신의 방식이 아니라 키팅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키팅이 무엇을 원하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그녀는 분명히 안다. 그의 이기심을 알고, 어쩌면 자신을 이용하리라는 것도 캐더린은 예상할 것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캐더린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행복한 단어들로 마음이 벅차지만 그 단어에 기대지 않는다. 아니 않을 것이다. 키팅. 그녀를 물로 보지 마. 절대.
둘 사이가 어찌 될진 "마천루" 스포성 글도 보지 못 했기에 알 수 없는 거지만. 아마도 캐더린은 여주인공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캐더린이 지금 그대로 앞으로도 키팅을 사랑했으면 해. 혹시나 헤어지더라도 캐더린식으로 그를 보내줘. 그런데 혹시나 예상이 빗나가서 혹시나 버림 받은 캐더린이 키팅에게 복수하고 그러는 거면 어떻게 하지? (혹시나 읽으신 분들. 이야기 해주지 마요. 절대로 ㅠㅠ)
1949년작 게리쿠퍼 주연의 영화 마천루가 있다. 책을 다 읽으면 찾아 볼 생각이다.
4.
텔레비전에서 이승열 목소리가 나와 놀래서 쳐다봤다. 뮤직뱅크에 클래지가 나오고 있어. 이승열이 나오고 있어.
이승열 목소리가 이렇게 몸을 흔들기 좋은 목소리였나? 욱 나 숨막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