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스카프를 단단히 여몄다. 얇은 천 사이를 뚫는 찬 기운에 맥이 빠진다.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쓰고, 목 언저리를 단단히 잡는다. 추웠지만 바람이 조금은 막아진 것 같다. 굽은 어깨에 모자에 눌린 머리가 우습지만 집까지 길어야 30분이니 창피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만큼 추웠고, 난 거기에 방어가 안 되어 있었다. 전 날 저녁 엄마는 출근하는 나를 불러세웠다. 얇은 이너 웨어에 약간의 두께가 있는 후드티를 입고 나서는 것에 혀를 찼다. 서랍에서 갈색의 투박한 머플러를 꺼내는 것에 난 기겁을 했다. 말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푸른색 호피 무늬의 얇은 스카프를 들고서 재빠르게 집을 나섰다.

지금 난 제대로 벌을 받고 있다. 바람은 전 날 보다 찼고, 스카프는 너무 얇았고, 퇴근 후엔 집이 아니라 월례 교육에 참석했고, 회비를 냈고, 잠은 쏟아지고, 택시는 잡히지 않는다.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갈색들은 걸음을 옮길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냈다. 바람이 조금만 덜 불었어도, 스카프가 조금만 더 두꺼웠어도, 전날 엄마의 말을 듣기만 했어도, 월례회에 참석만 안 했어도, 그 때문에 택시가 줄을 서는 출근 시간을 놓치지만 않았더라도. 그랬더라면 푹신한 갈색들이 내는 바스락 소리에 기분이 좋았을텐데. 산 옆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것을 감사했을테고, 어쩌면 책 속에 꽂아 둘 온전한 낙엽을 찾아 주변을 서성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숨을 쉬었다. 한숨에 섞여 하얀 김이 따라 나온다. 두손을 마주대고 비벼댔다. 입술을 모아 온기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때 MP3에서 They Don's About Us가 플레이 된다. 

야근으로 끈적해진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볼륨을 올리자 노래가 끝나려 한다. 반복 재생을 한다.
여전히 추웠고, 숨 쉴때마다 하얀 김이 나왔고, 두 손을 닳을듯이 비벼 댔고, 갈색은 계속 비명을 지르고, 스카프는 점점 더 목을 조르고, 모자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아 빈 택시도 몇번 보냈다. 그리고 노래가 반복된다.
한참을 반복했고, 난 그대로 서 있었다.




All I wanna say is that
They don't really care about us  
All I wanna say is that 
They don't really care about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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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11-2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사히 집에 돌아온거고, 이제는 몸을 좀 녹인거죠?

버벌 2011-11-22 20:48   좋아요 0 | URL
집에 도착해서 죽은 듯이 잤어요. 이제 일어났는데 손이 차고, 발이 차요. 저 감기에 걸리려나봐요. 아 진짜. ㅠㅠ

양철나무꾼 2011-11-22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겨울 한철은 '터틀 넥'이라고 불리우는 목폴라를 기브스한 듯 입고 사는데...
뜨뜻한 아랫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푹 주무시고 일어나셨을 시간인가요?

그러니까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단 말씀~^^

버벌 2011-11-22 20:49   좋아요 0 | URL
자고 일어나서 미리 약 먹어두려고 약장을 뒤졌더니 엄마는 뒤에서 등을 내리쳐요. 이럴줄 알았다고.
자고로 어른 말씀을 들어 손해 볼 것이 없는데. 제 경우가 그렇습니다.
방안에 있는데 손이 시려요~ ㅠㅠ

2012-01-01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8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