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강하고 인상적인 도입부, 믿기지 않는 놀라운 줄거리,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들쑥날쑥한 감정의 기복. <이런사랑>을 읽고 난 충격적인 느낌이다. 약간의 추리소설 비슷한 느낌마저 느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까? 하지만 진짜로 읽는 내내 주인공이 당하는 일이 실재와 환상 중 어느 것일까 고민했었다. 혹은, 주인공이 다중인격?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만큼 이언 매큐언이 독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닐 줄 아는 능력자라는 것.

이언 매큐언은 뼈에 살을 붙이는 능력 뿐아니라 완벽하게 조각해 내는 능력까지 탁월하다.
과학과 종교, 사랑과 집착, 이성과 광기, 의심, 강박 등을 조물조물 버무려 사랑 이라는 이름아래 보란 듯이 차려 놓는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사랑의 다른 모습들을 눈뜨고 보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나마 숭고한 사랑과 순수한 사랑의 출연으로 허허로운 마음에 거세게 들이치는 바람을 한순간이나마 잠재운다.

우리는 달의 한 면밖에 보지 못한다. 달의 이면은 너무도 못생기고 끔찍하여 한 면만을 보게 된다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사랑의 눈부신 면만을 보고자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사랑의 우울한 면 또한 찬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일이라고 서로를 다독이곤 한다. 진정한 사랑의 뒷면을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과감하게 사랑의 이면을 들이대는 이언 매큐언의 목소리에 살짝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하지만 진실의 모습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이 모르는 사랑. 당신은 절대 알지 못하는 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말려버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 눈물 흘리는
그런, 당신은 모르는 사랑.

 

*** ****

책을 넘기는 곳곳 줄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구절들. 작가의 통찰은 물론, 깜짝 놀랄 만큼 정교한 심리묘사와 상황묘사 들로 정신을 차릴 수 가 없다. (주절주절 백번 지껄이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마이리뷰일 듯)

-우리는 파국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파국은 그 자체로 정체성과 운명을 구부려 새로운 뭔가로 만드는 일종의 용광로였다.
-인간의 다양성을 지켜보는 일도 즐겁지만, 인간의 동질성을 관찰하는 일 또한 즐겁다.

-이기심 또한 우리의 심장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무엇을 우리 자신을 위해 갖고 있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 포유류들의 갈등이다.
-어느 순간이나 그에 선행하는 이유가 있다. 시작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느 하나를 택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것에 비해 뒤이어 일어난 일을 더 이치에 맞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선량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선량함이 시험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시험할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밖에는 그 누구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충격은 우리가 받은 충격의 그림자일 뿐이고, 우리 감정을 선의에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바다 밑바닥에 대한 탐험이 시작되었지만 표면은 잠잠하기만 합니다
-우리 피부 점막 사이에 작은 먼지나 티끌이, 아니면 정신적인 것이면서도 해변의 모래처럼 손으로 만져지는 무언가가 끼어 있는 것만 같았다.

-사람의 지적 능력이란 언제나 자기주장이 지닌 허점에 대해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거나 모른 척하도록 도와주니까
-심지어 만족의 표시로 나직이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 방에 납득시키고 싶은 존재가, 어떤 신적인 방관자라도 있었던 걸까?
-마치 방안에 함께 있는 사람 하나가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독차지하고 있을 때 그러하듯, 난 공허하고 무감각한 중립 상태에 빠진 느낌이었다.

-물론 거의 의식하지 않은 채, 내 시야의 한쪽 구석을 통해 말없이. 그건 언어학자들이 ‘멘탈리스’라고 부르는 찰나적 사고의 언어, 즉 말 이전의 언어였다.
-우리는 반쯤만 공유된 신뢰할 수 없는 지각의 안개 속에서 살아간다.
-... 무자비한 객관성... 우리는 절반의 진실을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주기위해 스스로도 믿어 버리는 사람들의 후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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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5: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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