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이라는 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무중력 상태로 둥둥. 물속에 떠 있는 듯 둥둥 떠다닐 뿐이다. 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며 어느 하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어떤 것은 폭력적이며, 어떤 것은 관능적이고, 어떤 것은 순정적이다. 그리고 또 그 안에서조차 수도 없는 갈래로 갈리고 나뉘며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다. 어떤 시인도, 어떤 소설가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것.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첫사랑 온천>은 각기 다른 5개의 사랑을 말한다. 따뜻한 온천물이 찰랑대는 것처럼 넘실넘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다가온다. 각기 다른 온천지를 둘러싸고 각기 다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지닌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사랑의 얼굴을 가슴에 품고서. 첫사랑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 조금씩 바뀌’어 이제는 담담히 이별을 이야기 하고 있는 <첫사랑 온천>, 사랑의 방법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흰 눈 온천>, 다른 사랑을 꿈꾸며 그 사랑이 또다시 흔들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망설임의 온천>, 사랑을 위해 달려왔지만 결국 누구를 위한 사랑인지 무의미해져 버린 <바람이 불어오는 온천>, 그리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고 맹세하는 <순정 온천>까지. 요시다 슈이치는 사랑의 모든 면모들을 조물조물 보여주고 있다.


사랑을 하고 행복했으며, 조금씩 불안을 느끼고 깊어가는 골을 지나, 어느새 점점 무뎌가는 감정들. 마치 사랑의 수순처럼 그 모든 것은 우리 앞에 소리 없이 펼쳐진다. 요시다 슈이치는 거부할 수없는, 사랑이라는 가미가제식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듯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이라면 이 모든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거부하고 소리치겠는가? 라고... 우리가 그 질문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사이 또 요시다 슈이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 한다. 그저 온천욕을 하듯 사랑을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눈밭에 헐벗고 서 있다가 찰랑 대는 따뜻한 온천 속에 들어가듯 살아지는 것.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지치고 추위에 떨다 발을 담그는 순간 신경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그 따스한 온기에 소리 없이 위로 받는 것이 바로 인생이고 사랑이 아닐까?


차가운 몸에 더운 물을 끼얹듯 때때로 누군가에게 위로 받으며 살고 싶은 마음.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모습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시다 슈이치는 작품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집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큰 북소리(첫사랑 온천), 텅 빈 욕조(망설임의 온천), 눈앞에서 사라진 소리(흰 눈 온천), 흐르지 않는 것 같은 물과 보이지 않는 잔(바람이 불어오는 온천), 그리고 겐지가 느낀 이상한 감정(순정 온천)까지.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작품 곳곳에 상징적으로 심어 놓았다. 그것은 마치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의 균열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없는 아릿한 무언가로 고스란히 잡아 놓은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랑도 아이스크림처럼 골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원하는 맛을 골라 마지막 한 입까지 싹싹 행복한 마음으로 먹어 치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끝까지 내가 원하는 맛으로만 골라 먹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더욱 애절하고 애틋한 것.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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