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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경제적 결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 지음, 박만섭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1월
평점 :
세계1차대전 이후 혼란한 글로벌 경제 질서를 정리하기 위하여 열린 <파리평화회의>에 참여한 케인즈의 견해가 자세히/생생히 드러난 책이다. 케인즈는 산업화가 막 발아한 시점에 발발한 전쟁의 처리에 있어 냉철한 시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당시 종전 수습 현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다.
연합국, 미국의 처리는 독일에게 수용/불수용의 의미가 없는 요구였다. 전쟁 종료는 최소한 전쟁 이전 상태로, 정상의 상태로 돌려두어야만 하는 시작점이었으며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그 지점에 홀로 선 유일한 죄인이다. 1차대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가령 프랑스 같은 국가부터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경미했던 벨기에까지, 피해를 본 모든 국제사회에 대하여 책임을 이행해야 하며 독일에 편에 섰던 다른 누군가가 있다 하더라도 독일이 져야 하는 것임이 명백했다.
케인즈는 전쟁 후 처리는 미래와 연결되어있기에 징벌적, 혹은 정치적 관점보다 1. 독일이 책임을 피하지 못하도록, 배상요구가 논리적, 타당하며 명확하고 구체적인가? 2. 정말 독일이 그 책임을 다할 능력이 있는가? 의 세계 경제질서의 평화/번영을 중심으로 국제정세를 진단했고 나아갈 방향을 고심했다.
p. 186 조약에는 본질적으로 실행 불가능한 배상 제안 외에 온갖 종류의 상충적인 조건이 밀려들었다. 여기서 내가 연합국들 사이에 한없이 진행된 논쟁과 음모에 관해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 논쟁과 음모는 여러달이 지난 후 배상에 관한 조약의 장이 최종안으로 독일에 전달되었을 때 드디어 최고조에 이르렀다.
p.194 따라서 정치가에게 가장 안전한 길은 수치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이었다. 배상과 관련한 조약의 장이 많은 양의 복잡함을 담게 된 이유는 본질적으로 바로 이 정치적 필요성에서 분출되었다.
p. 202 독일이 갚겠다고 약속한 금액을 지급하는 형태에는 세가지가 있다. 1) 금, 선박, 외국증권 등 즉각적으로 양도 가능한 부. 2) 할양된 영토 혹은 휴전협정에 따라 양도된 영토에 있는 재산의 가치. 3) 일부는 현금으로 일부는 석탄생산물이나 탄산 포타슘, 염료 같은 자원으로 정해진 햇수에 걸쳐 매년 상환되는 금액..
케인즈는 "조약 후의 유럽"(6장)을 통해 조약에는 유럽경제의 재건을 위한 조항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위원회가 아사상태에 빠진 유럽정세에 일말의 관심도 없음을 비판했다. 조약에 대한 맹렬한 비판, 아사상태의 유럽 경제에 대한 염려.. 한쪽은 뜨겁고 한쪽은 어두운 두 개의 뿔 사이에 고뇌하는 케인즈의 심란한 마음이 그의 글 사이사이 행간에 억눌려 담겨, 울분에 찬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전쟁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책임'이 아닌 일차원적인, 징벌적인 '채무'로서만 기능해 경제 불안정성을 높이고 고질적으로 정치를 곪게하는 위험인자가 되지는 않는지 염려했다. 그는 '미래의 평화'를 중심에 놓고 초 국가적으로 유럽의 재정건전성 향상에 노력(가령, 조약을 개정하거나 융자/통화개혁 등)해야 함을 주장했다.
지금 그때의 혼란한 국제정세와 경제상황을 모두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나 최대한 풍부하게 제시된 주석 설명 덕으로 읽는 내내 이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책 중반부까지는 냉철하고 논리적인 진단에, 중반부 이후에는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최 우선에 둔 발전적 방향 제시에 고심했던 케인즈의 마음이 읽는 내내 느껴졌다. 특별히 이 책 마지막, 마지막 문단*을 읽을 때에는 고뇌를 넘어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닐까 케인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지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한평생에서 인간 영혼의 보편적 요소가 지금처럼 그토록 희미하게 불빛을 낸 적은 없었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 올 새로운 세대의 진정한 목소리는 아직 울려퍼지지 않았고 침묵의 의견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래에 만들어질 일반적 의견에 이 책을 바친다."
전쟁이라는 지옥의 문을 닫은 후, 누구보다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싶었던 케인즈의 경제적 고민의 결과,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 이 책은 출판사가 제공하는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