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라 기담문학 고딕총서 8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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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은 어떤 걸까? 내 눈 앞에 남-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의 일기가 놓인다면 선뜻 손이 갈 것 같지 않다.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가 괜스레 부담스럽고 피곤할 거 같아서다. 알고 싶지 않다, 나 아닌 남의 내밀한 이야기따위는.

 

『오를라』의 책장을 덮자, 모파상의 아주 개인적인-이를 테면 일기 같은-이야기를 훔쳐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봐버린 듯한 꺼림칙함이 남는다. 이런 생각은 43년을 살면서 편두통으로 시작하여 우울증, 정신착란 그리고 환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통에 시달렸고, 결국은 마흔 두 살에 자살을 기도하고, 그 다음 해에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했다는 작가의 생애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말미에 붙은 작가의 생애를 읽기 전에도 [오를라], [자살], [에라클리위스 글로스 박사] 등의 단편을 읽으며 조금씩 마음에 흘러들던 생각이었다. 그러니... '모파상'이라는 한 개인이 궁금하다거나, 남이 쉽게 꺼내보이지 못하는 이야기를 열어젖히고 싶은 기운 좋은 독자라면 일독하셔도 괜찮지 않을까.

 

『오를라』는 미치거나 미치기 직전인, 혹은 죽거나 죽기 직전인 주인공이 들려주는 8편-[오를라]는 같은 이야기의 1판과 2판이 실렸으니-의 이야기다. 살인자의 박제된 손을 갖게 된 남자가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목을 졸리는 폭행을 당하고, 결국 미쳐버리는 [박제된 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오를라'라는 존재를 너무도 분명하게 인식하는 남자가 역시나 그 존재로 인해 미쳐버리는 [오를라].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개 코코트를 돌에 묶어 강에 던질 수밖에 없었던 한 마부의 이야기인 [마드무아젤 코코트]. 아무도 오갈 수 없는 깊은 겨울 산에서 홀로 산장을 지키며 미쳐가는 남자가 나오는 [산장]. 타인이 보기에 죽음의 이유가 분명치 않았던 많은 자살의 비밀을 풀어줄 만한 [자살]. 한 여자에 대한 너무 '무서운 사랑'을 보여주는 [무덤]. 아무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윤회론 속에서 미쳐갈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정신병원에서 행복한 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너무 똑똑했던 남자의 이야기인 [에라클리위스 글로스 박사].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도덕이라는 사슬을 묶고 사는 인간에게 피묻은 칼을 들이대는 한 여인네의 슬픈 수술을 보여주는 [어린아이]가 그 8편이다.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미치거나 머지않아 미치게 될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미치고 우리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들이 미쳤다면 누가 그렇게 만든 것일까? 작품에 등장하는 그들은 미쳤다기보다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제라면 그들의 공포는, 두려움은, 누구에게도 이해받거나 도움을 구할 수 없는 너무 쓸쓸한 것이었다는 거다. 그러니 그들은 사람들에게 미치광이로 오인되거나 정말 미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몰리는 것이다.

 

『오를라』는 모파상이 품고 있던 공포와 고독을 너무 많이, 너무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읽고 나면 편편찮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은 '너무 이른 파괴'에 언제나 몸과 마음을 도사린다. 이것은 결국 두려움을 불러들인다.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스스로도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을 만나면 인간은 고립된다.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없고, 도움을 구할 수 없다는 고립이 역시 두려움을 불러들인다. 어쩌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고립과 공포는 그들 스스로가 불러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예민하고 너무 복잡한 그들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약해질 때가 있고 예민할 때가 있다. 누구든 자기 안에 고독이나, 고독이 불러들일 두려움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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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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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笑, 검은 웃음, 블랙 유머…. 유머러스하나 그것이 검다면 결국 부조리한 현실과 그 안에서 피에로 혹은 코미디언이 되어 웃지 못할 웃음을 만들어내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철저하게 현실을 뒤틀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를 비웃고 있다. 그런데 이 뒤틀린 현실이 전혀 허황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책을 펼치면 이건 우리 현실을 그대로 옮겨온 검은 사실주의가 된다.

 
모두 13편의 단편이 들어있는데 그 중에는 연작처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 출판사인 규에이사와 작가, 작가 지망생들의 모습을 그린 [최종심사], [불꽃놀이], [과거의 사람], [심사위원]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문학상에 목을 매는 작가들과 작품 외적인 온갖 상황들이 고려되어 수상자가 정해지는 문학상의 모습, 작가 '선생님'이 되길 꿈꾸는 풋내기 작가, 작가와 작품을 그저 판매고를 올리는 히트 상품으로만 대하는 편집자들과 연구와 공부 없이 자기세계에서 기고만장한 작가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작품에는 이들의 생각이 가감 없이 표현되어 등장하는 인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리석고 추하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 그들을 비난할 수가 없다. 그저 쓴 웃음을 짓게 될 뿐이다.

 
또한 발상을 전환하여 비도덕적이고 비논리적으로 흘러가는 사회 현실을 꼬집는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임포그라]와 [사랑가득 스프레이]를 들 수 있다. 임포그라는 비아그라의 반대쯤되는 약이다. 이런 약을 도대체 누가 살까? 과연 판매가 가능할까? 사랑받지 못하는 아우라 풍기기 부문 세계 챔피언인 남자의 향기를 스프레이로 담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스프레이를 원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걱정마시라! 이 제품들은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간다. 어째서? 글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 본다면 당신도 충분히 이 제품의 훌륭한 세일즈맨이 될 수 있다. 이걸 파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다.

 
개인적으로 [신데렐라 백야행]이나 [웃지 않는 남자]같은 몇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才氣가 부족하게 느껴졌고, [기적의 사진 한 장]은 다른 단편들과 이야기의 초점이 좀 안 맞는 것 같았지만, 전체적으로 작가의 발상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을 조금 뒤틀어 보여줄 뿐인데 독자는 현미경으로 확대된 일상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머리카락 한 올을 뽑아 현미경을 통해 바라본다면 그건 더 이상 머리카락이 아닌,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머리카락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흑소소설』은 우리 인생을 슬라이드글라스 위에 올려놓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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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 경제, 공정 무역
마일즈 리트비노프.존 메딜레이 지음, 김병순 옮김 / 모티브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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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삶은 양극단을 달리게 되었다. 자기 나라에서 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시달리는데도 식량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다. 경제학자들이 내세운, 모든 나라가 자기 나라에 가장 적합한 상품과 용역을 생산하고 그것을 거래한다면 결국 모두가 이익을 볼 것이라던 비교 우위론은 갈수록 국가 간의 격차를 벌이고 있다. 책은 300년 전에는 나라들 사이에 소득 격차가 거의 없었지만 21세기가 시작되면서 그 격차는 100대 1로 늘어났다고 말한다. 국제 무역은 더욱 자유화를 향해 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제3세계의 가난은 심화된다.
 
공정 무역은 다국적기업이나 중간상인들에 의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이익을 강탈당하는 제3세계의 노동자와 농민을 지키기 위해 시장가격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생산품에 대해 사회적 초과 이익을 붙여 일정 정도의 가격을 보장해준다. 책은 우리가 공정 무역 제품을 사야하는 50개의 이유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말한다. 여기 소개된 50개의 사례는 공정 무역이 그저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우며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걸 알려준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정 무역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더 많은 문제, 정의로운 무역의 필요성과 인권 존중의 필요성 등에 대해서로 확대된다. 더불어 공정무역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구실에 대해서도 대립되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들려주어 공정 무역과 관련된 다양한 논점을 독자들이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농민들은 커피, 바나나, 코코아, 면화를 재배하지만 대기업의 플랜테이션 안에서는 최소한의 생계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더러운 환경과 농약 때문에 건강도 지킬 수 없었다. 자신의 농장이나 농토를 갖고 있는 농민들도 다르진 않다. 변화무쌍한 세계 시세에 앞날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서 중간상인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공정 무역 단체들과 연결되어 사회적 초과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이들에게 집을 주었고, 음식을 주었다. 마을에 도로를 닦고, 우물을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열 수 있도록 도왔다. 이들은 품질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농약을 치지 않는 양질의 농산물을 수확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한다. 결국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좋다.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들은 다국적 기업을 통해 판매되는 공을 만들고, 카펫을 만든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공장으로 끌려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종일 바느질을 한다. 공정 무역은 아이들을 고용할 수 없게 제한하고 노동자들이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도록 하고 있다. 공정 무역은 관광 산업까지 연결되어 있다. 자기네 땅을 관광객들에게 내어준 마사이족에게 돌아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서양의 거대 기업에게로 돌아갔다.

공정 무역과 연계된 노동자와 농민은 공정 무역을 만났기에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것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좋은 품질로 승부하려 한다. 소비자는 이제 자신이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일부러 손해를 감수할 필요가 없다. 공정 무역 제품은 그만한 가치를 품질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네슬레나 크레프트같은 다국적 기업이 공정 무역이나 유사 공정 무역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다국적 기업의 공정 무역 진출에 대해 우려의 소리가 많고, 이들의 유사 공정 무역은 공정 무역에 타격을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공정 무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것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지속가능한 무역의 방법이며 소비자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음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드물게도 북미나 서유럽의 개발 논리 속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나라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고 그 안에 노동자와 농민이 있었다. 농민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다국적 기업이 스스로의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도록 공정 무역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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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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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는 당대에 이미 그의 진가를 인정받아 벼슬까지 한, 그야말로 조선 화단의 별이었다. 그에 반해 신윤복은 오늘날의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에 대한 기록이란 화원 출신 화가이며 부친인 신한평이 도화서의 유명한 화원이었다는 것이 전부다. 이 겨자씨보다 미미한 사실에 작가는 물을 주고 상상력이라는 거름을 덮어 『바람의 화원』이라는 화려하고 신비스런 꽃을 피워냈다.

 

 

『다빈치 코드』 이후로 '팩션'이라는 말을 더러 듣게 되었다.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결국 역사 소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어쨌든 '팩션'이라고 불리는 이야기를 대할 때 어디까지가 팩트이며 어디까지가 픽션인가에 주목하는 경우가 있다. 허나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팩트가 담겼다 하나 그것은 이 픽션 안에서 모두 허구가 되어버린다. 고로 이 작품에서도 김홍도와 신윤복이 정말 사제지간이었을까 등과 같은 지엽적인 사실 여부에 머리를 갸웃하는 대신, 단 두 줄의 역사적 기록으로 이렇게 풍부한 두 권의 책을 엮어낸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고 즐거워하며 작가가 풀어놓는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옳다고 본다.

 

 

김홍도는 도화서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에 몸을 섞기 싫어 생도청의 교수라는, 출세와는 거리가 먼 곳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생도로 들어온 신윤복을 만났다. 그는 신윤복의 재능과 세상에 도도하게 맞서는 의기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다. 이들의 재능을 알아본 정조는 이들에게 각기 하나의 사건을 맡긴다. 김홍도는 10년 전에 있었던 그의 스승과 친구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조사하게 되었고, 신윤복은 사라진 장헌세자의 어진을 찾는 임무를 명받았다. 살인 사건과 사라진 그림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이야기를 이끄는 줄기지만 이것은 그저 이야기를 끌어가는 역할을 할 뿐이다.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만나는 많은 인물과 허를 찌르는 이야기를 김홍도와 신윤복의 실제 작품과 연결시켜가는 작가의 상상력이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바람의 화원』에 등장하는 김홍도와 신윤복은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였지만 그 재능은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화인이 소비될 수밖에 없는, 천한 그들의 신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작품의 주된 정서다. 김홍도의 작품 [무동]에 대한 이야기가 이를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작품에는 악공과 무동만이 존재한다. 윤복은 이에 의문을 느낀다.
"악공이란 본시 돈많은 양반들의 행차에 흥을 돋우는 자들이니 듣는 자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는 어찌 악공들과 무동만 보일 뿐 연주를 듣는 자도 보는 자도 없습니까?"
그에 대한 김홍도의 대답에서 단순히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울분을 느낄 수 있다.
"저들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흥에 겨워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자신들의 신명으로 춤추기 때문이다. 돈많은 장사꾼들과 권세높은 양반들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천한 광대가 아니라 스스로 흥을 풀어내는 예인들이지."

 

 

치밀하게 안배된 비밀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김홍도와 신윤복이라는 대가의 작품과 함께 얽힌 이야기는 더욱 빛이 난다. 화인으로서 울분을 담고 살 수밖에 없었을 김홍도와 신윤복의 상황과 감정의 묘사도 훌륭했다. 다만 주막을 주제로 한 김홍도의 그림을 독화하는 부분에서 오류가 있었고 문장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수식이 과하게 느껴졌던 부분들이 있어 아쉬웠다.

 

 

천재가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당연하게도 凡人의 열패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범인의 모습은 평범한 독자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천재를 앞에 둔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절망과 패배와 질투와 선망을 맞보게 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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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성당 1
일데폰소 팔꼬네스 지음, 정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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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하거늘, 이 순간까지 소작농들이 지켜야 했던, 정당하고 적법한 것이 아닌 그 밖의 의무사항 역시 폐기한다. 아울러 내 영지의 주민들에게 천명하거늘, 누구나 자신의 빵을 구울 수 있는, 누구나 자신의 가축에 낙인을 찍을 수 있는, 누구나 자신의 연장을 준비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한다. 모든 여자와 어머니들, 그대들에게 천명하거늘, 영주의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는 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한다."

 

베르나뜨 에스따뇰의 결혼식 날이다. 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그는 큰 잔치를 마련했다. 이웃과 친지의 축하 속에서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영주가 나타났고 그는 말했다.  "에스따뇰, 난 영주로서, 영주의 권리로 네놈의 아내와 초야를 치르기로 결정했느니라."
이 날부터 그의 삶은 그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당연하게도 아내와는 돌이킬 수 없는 어색하고 안타까운 사이가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는 다시 희망을 가졌지만 영주는 그의 희망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아내는 창녀로서 세상을 떠돌게 되고 그는 자식을 안고 도망자가 된다. 자식에게만은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게 할 수 없었던 그는 도시로 가서 도시의 자유시민이 되기로 결심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을 찾아 몸을 의탁한 베르나뜨는 아들 아르나우의 자유만을 바라며 아무런 욕심없이 살았지만 운명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억울한 오해와 비뚤어진 욕심, 귀족들의 잔혹함이 더해져 그는 사형당하고 아르나우는 복수의 칼을 간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베르나뜨의 아들 아르나우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흐름을 탄다. 아르나우는 아버지를 빼앗고 자존심을 짓밟고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은 귀족과 사제들에게 복수한다. 그리고 자유와 행복을 쟁취한다. 당연히 그 안에는 귀족과 종교인들의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욕망과 악의로 가득한 편견이 만들어내는 암흑이 그려진다. 14세기 스페인의 농노들은 살고 있는 땅의 영주에게 속한 노예로서 그 어떤 권리도 가질 수 없는 위태로운 존재였다. 영주들은 하인의 재산 일부분을 승계했고, 간통한 여자의 재산 일부분 혹은 전체를 차지했고, 자식 없이 죽은 소작농의 재산 일부를 위임받았으며, 마음대로 소작농을 학대하거나 그들의 물건을 차지할 수 있었다. 영주들의 땅에서 화재가 일어나면 소작농들이 배상해야 했고, 베르나뜨의 일에서 알 수 있듯 영주는 소작농의 아내를 함부로 차지할 수 있었던 초야의 권리 또한 지니고 있었다. 힘없고 가난한 민중들이 의지할 유일한 안식처인 종교도 그들을 외면했다. 사제들은 귀족들과 함께 특권을 지키고 더 큰 힘을 가지기 위해 무지한 사람들을 선동하고 죄 없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공포정치에 한몫을 담당했다.

 

스페인에서 공전의 히트를 이루어낸 이 역사소설을 통해 학교에서 개략적으로 배우는 유럽 역사에서 알 수 없었던 민중들 삶의 비참함이나 따뜻함을 알 수 있었다. 소설이긴 하나 작가노트에서 알 수 있듯이 뻬드로 3세의 연대기를 바탕으로 당시의 관습법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이야기라 작품 안에서 그려지는 민중들의 삶이 당시에 실재했던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의 성당』은 분량이 상당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런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강력한 서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그것을 지니고 있다. 번역문이라는 걸 감안해도 묘사는 한결같고 문장은 투박하다. 그렇지만 탄탄하고 감정을 모두 이입할 수 있는 서사가 그런 단점을 압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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