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선수 자와 씨 1
미시마 에리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미야코자와 리사는 여고생이다. 야구부원이다. 소프트볼 아니냐고? 노우노우~ 그녀는 경식야구부원이다. 그렇다, 이건 어쩜 상당히 뜬금없어 보이는 상황인 거다. 얼마 전 우리나라 여자 축구대표팀이 국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여자의 축구를 아직도 생경하게 보는 눈이 있었을 거다. 여자가 축구를? 권투를? 격투기를? 근데 어쩌냐, 자와씨는 남자부원들과 함께 같은 위치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니……. 아, 엄밀히 말해 같은 위치라는 건 어폐가 있구나, 그녀는 공식경기에 출장할 수 없으니. 어찌되었든 『고교야구선수 자와씨』는 고교야구부에서 '그들 속 그녀'라는 좀 드문 상황에 놓인 자와라는 여고생을 보여준다. 그녀를 보여주고 그녀를 향한 우리의 시선을 보여준다. 이 '보여주기'가 작가의 연출과 어울려 작품은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다.


자와씨를 향한 우리의 시선을 잘 보여주는, 작품의 정체성(? 뭔 정체성까지. 푸훗~)을 드러내는 타격연습장 에피소드를 보자.

자와씨는 교복을 입고 부원들과 타격연습장을 찾았다. 연습장 관계자들은 자와씨를 보고 자기네끼리 넘겨짚었다. 매니저인가봐 어쩌고저쩌고, 저런 애가 수건을 건네주며 고시엔에 데려가 달라고 하면 어쩌고저쩌고, 남 따라 가는 게 뭐가 즐거운지 이해할 수 없어 어쩌고저쩌고. 잠시 후 그녀는 140km/h로 세팅된 칸막이에 들어간다. 공이 나오는 쪽을 노려보며 장갑을 끼고 플레이트에 배트를 톡톡 두드리고 가벼운 스윙으로 몸을 풀고 스탠스를 잡고 자세를 세우기까지의 대사 없는 몇 컷은 야구에 대한 자와씨의 진지한 열정이 느껴졌다. 내가 본 그걸 연습장의 그들도 본 건지 타격 자세를 잡은 그녀를 향해 조용한 감탄사가 터진다. "홈런이네, 홈런이네요." 타격 자세도, 배꼽을 살짝 드러낸 그녀의 자태도 모두 홈런(^^;;)이었다.


타격연습장 사람들이 유달리 편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만 있는 고교야구부에 매니저가 아닌 여자부원이라니,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일('크로스게임'에 대단한 여중생 투수가 등장하긴 하지만)이 아니다. 그러니 저런 오해와 놀람은 늘 자와씨를 따른다. 지하철에서 자와씨와 야구부원 친구들 맞은편에 앉은 카메라맨은 빡빡머리, 하이넥 언더셔츠, 언더셔츠의 네크라인을 경계로 검게 탄 얼굴과 목을 보며 저들이 야구부원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옆에 앉은 자와씨의 정체(?)에 의문을 품는다. 책을 읽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와씨가 고개를 들자 교복 네크라인 위로 빡빡이들과 같은 색깔과 무늬(?)를 한 그녀의 목이 드러난다. '……아,' 그녀의 정체를 짐작한 카메라맨.


남자들의 시선이 가벼운 무시에서 호의를 품은 경의와 놀라움으로 이어진다면 여자들의 그것은 좀 더 가혹하다. 다른학교와의 시합에서 상대학교 매니저들은 자와씨를 보고 멋있다는 얘기 끝에 같은 여자라도 선수니 우리 같은 매니저를 얕보는 거 같다는 근거 없는 시선, 훈훈한 소년의 모습을 즐기는 여성 고교야구팬들은 그냥 소프트볼을 하면 되잖아 인생 열심히 산다고 자랑하냐 남자들 사이에서 공주 대접받고 싶구나 하며 싫은 소리를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자기네끼리 수다를 떨다 자와씨를 야구부원의 공중화장실로 만들어버린다. 안에서 다 듣고 있다 이런 그들 옆으로 와 아무렇지도 않게 손 씻고 세수하고 물방울무늬 손수건으로 닦은 후 바지 매무새까지 다듬고 돌아서는 자와씨.


자와씨는 이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이런 저런 오해와 기울어진 판단 속에서 정작 자와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보여지지 않는다. 작품은 철저하게 밖에서 자와씨를 바라보며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만을 옮기고 있다. 그녀의 마음을 우리는 들을 수 없지만 어쩌면 그녀는 남들의 생각 따윈 관심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관심이 온통 야구뿐이라는 건 분명하니까 말이다. 그것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그녀가 야구 선수들이 저지 안에 받쳐 입는 언더셔츠를 입고 그 위에 교복을 입고 왔다. 평소 겉모습에 신경쓰지 않고 늘 훈련 때문에 검게 그은 모습으로 다니는 그녀를 아는 부원들도 그것만은 보아 줄 수가 없었던지 자와씨를 향해 그건 아니잖아 그건 너무한 거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자와씨는 그들 앞에서 치마 아래로 운동복 바지를 입고 교복 상의를 벗으며 이러면 탈의실에 들르지 않고 바로 운동장에 갈 수 있다는 얘길 한다. 아, 이 무심한 야구소녀 같으니라구~!! 너의 그 무방비함이 동료들의 얼굴을 얼마나 붉게 달구는지 너는 정녕 모른단 말이냐~!


아다치미츠루의 극찬으로 화제가 된 작품. 책을 읽으면 그 부분이 좀 이해가 된다. 아다치미츠루 특유의 여백의 미나 보여주지 않고 의미를 전하는 연출의 묘와는 좀 다르지만 느긋하고 여유로운 이 작품만의 여백의 맛이 있다.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최신유행(?)의 미형들이 득시글거리는 화려한 그림이 아니라 수수하고 어찌보면 거칠기도 한데, 지지고 볶는 사건은 없으나 조용히 안으로 타오르는 야구소녀의 열정을 표현하기엔 딱이다. 소프트볼부의 타부치나, 사람을 잘못 알아봐 야구부와 무관한 빡빡이 선배에게 자꾸 야구부式의 인사를 하는 자와씨의 모습처럼 소소한 부분에서 은근슬쩍 옆구리를 찌르며 웃음을 유발하는 능청스러움도 참 기분 좋은 작품이니 굳이 아다치빠가 아니라도 자와씨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은 이는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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