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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성의 수필 쓰기
손광성 지음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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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경악한 일이 있다. 그 첫 번째가 50년 전 와다나베 다까아끼가 쓴 『머리가 좋아지는 책』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아주 쉽게 자유자재로 기억할 수 있는 게 놀라왔다. 지금도 급히 기억해야할 일이 있으면 그 책의 기초 결합법이나 연상기억법을 사용해 놀라운 효과를 보곤 한다.

  두 번째가 이 책 『손광성의 수필쓰기』이다. 수필을 쓴지 10여년이 되도록 문체니 구조니 구성이니 주제와 소재 등등이 아직도 애매모호하기만한데, 이 책을 읽어가는 사이 그 칙칙하고 불분명한 안개 속 짠! 하고 걷히는 거다. 거기다 「수필쓰기의 실전」 ‘발상에서 조정, 구성, 집필’을 읽다보면 아예 두 손 들어야 한다.

 

도대체 이런 책이 있을까. 이 책대로 한다면 수필 못 쓰는 사람이 있나. 이건 나무 몇 토막 뚝딱, 그럴듯한 책상 하나 손쉽게 만들어 놓는 거 아냐.

  적어도 나의 수필에 대한 고정관념, 예술이란 미켈란젤로의 말대로 대리석 한 조각에서 순간적 영감에 의한 형상을 정과 망치로 깨고 쪼개어 파내, ‘피에타’나 ‘모세’, ‘다윗’상을 창조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건 앤디워홀이다. '캠벨 수프 깡통', '코카콜라', '브릴로 박스', ‘마린 먼론’…. 기성품을 마구잡이로 대량생산해 내는 수필 제조공장이 아닌가. 무슨 예술이래?

  아니다. 그런 앤디워홀, 아주 유명한 미국 현대 미술가다. 아직도 그 이름 쟁쟁한 예술가. 이렇게 기술로서의 수필실전을 논하는 작가는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며 색깔이 묻어나는 수필 을 쓰는 원로 작가다. 그는 말한다. ‘수필이 언어를 표현수단으로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이며, 수필 쓰기도 예술이기 이전에 기술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소홀히 말 것이다. 그리고 추상보다 구체적이기를’ 강조한다.

  수필 작법이니 문장독본이니 무슨무슨 글쓰기니 하는 책은 읽지 않는다. 아니 읽히지 않는다. 대개 고리답답한 문법체계가 어떻고 시와 소설과 회곡이 어떻고 수필의 원조와 종류 운운…. 잡다한 읽어도읽어도 그게 그거고. 어디 삼빡하거나 감전된 듯 찌릿찌릿 저려오는 그런 걸 기대할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책에 대해서도 그랬다. 그냥 피해갈 생각이었었는데, 그의 수필집 『달팽이』를 읽고 푹 빠진 적이 있다. 세상에 이런 수필가가 있었던가. 아름다운 문장들이며 잊을 수 없는 영상들. 그가 쓴 글이라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달팽이』의 작가가 쓴 글이다. 첫 장부터 지지 뭉개는 교과서적 교리문답서가 아니다. 신세대 스타일, 톡톡 튀는 글로 예문도 고답적이지 않다. 갓 잡아 올린 생선마냥 신선하고 깜찍하다. 실전에 가면 아예 섹시하기 까지 하다.

기똥찬 수필 한 편 쓰고 싶은가. 아니다. 이 책 몇 번 더 읽고 나서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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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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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외세침략, 외국자본의 종속, 식민지화에 대하여 이렇게 배웠다.    

 

국산품을 안 쓰고 남의 나라 물건이 좋다고 마냥 사다 쓰다보면 그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노하우는 뒷전이고 대대손손 그 나라 물건만 고가로 사다 쓰느라 1차 산업에 불과한 값싼 내나라 자원만 고갈 시켜 종당엔 빚으로 나라를 말아 먹게 된다.

다행히 예상은 빗나갔다. 공업화는 숙련된 기술의 축적이 아니라 과학이며 학문은 교육으로 극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다행으로 내수에서 떼돈을 벌어 외국에 나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국산품을 비웃고, 보호무역으로 비대해진 재벌은 언제나 눈에 가시로 보였다.

특허란 천재성에서 비롯되며 지적 재산권 또한 특정 인간이 일생을 바쳐 이룬 귀중한 것이므로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하며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그러나 작가 장하준은 특허란 자연에서 힌트를 얻고 자연에 스며든 자원을 추출해낸 것이며 지적 재산권도 인간이 자연과 인간, 인간과 대중이란 집합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특허물이나 지적재산이 기상천외한 여의주나 요술 지팡이가 아니므로 특혜를 줄 것이 아니라 만민이 공유해 펑펑 써야 옳다. 선진국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특허제도와 지적 재산권은 폐지되어 개발도상국에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역사 속에 내재해 있는 경제적 사실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허구를 폭로한다.

이미 우리나라도 IMF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정통적 견해에 의한 국영기업의 민영화, 안정된 물가 수준, 정부조직의 규모감축, 재정균형의 달성, 무역의 자유화, 외국인 투자와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해제, 외환 자유화, 부정부패의 감소, 연금의 민영화 등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WTO, IMF, 세계은행은 미개국이나 부자나라나 다 잘살게 하는 범세계적 은총의 기구가 아니다. 1인 1표제의 민주방식도 아니고, 1원 1표라는 재화의 불공정에 근거를 둔 횡포의 기구로, 부자나라들이 수십 년 또는 세기를 통하여 절치부심 부자가 되기 위하여 땀 흘려 오르고 또 올라 부자가 되자 쓸모가 없어진, 그리고 미개의 잠에서 깨어난 개발도상국들이 막 오르기 시작한 사다리를 걷어 차 버리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부자나라들이 걷어차는 사다리, 그것은 개발도상 국가들이 부자나라로 올라가는 지름길 - 보호무역과 높은 관세, 유망업종의 국가 유치, 국영기업의 확장, 민족주의 경제, 외국인 투자와 자본시장의 강력한 규제… 이런 것들로 그들이 부자가 되기 훨씬 이전에 이웃 국가들과 부국강병의 줄다리기를 하면서 수십 년에서 백여 년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오르고 또 오르던 사다리가 아니었던가. WTO, IMF, 세계은행으로 사다리가 사라진 이 궁핍의 동토에서 가난한 나라가 부자 되긴 이미 글렀다.

그러나 절망은 없다. 맹목의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허구와 세계 경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한다면 정직한 부자나라들이 공평한 경제 게임을 운영할 것이고 부정직한 특허나 지적 소유권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정정당당하고 공평한 게임 - 페어플레이의 어원부터 올림픽 정신이나 스포츠맨십에서 나온 유럽 부자나라의 산물이다. 약소국이며 개발도상국을 면치 못하던 10여 년 전 축구황제 펠레를 초빙한 국제 축구 경기에서 애국심의 발로로 펠레에게 경고 카드를 내민 심판에게 손을 들어준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미래는 정직과 공평무사, 투명한 세계질서가 아니곤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역사란 언제나 사실보다 승자의 입장에서 재해석된 오류의 기록물이다. 부자나라들이 이렇게 잘 못 써진 역사로 신 자유 경제학을 오해 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이 새로운 주장과 현실의 변화가 예전의 확실을 압도할 만큼 강력한 경우 이들도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을 바꿔 왔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신봉하는 신 자유 경제학의 허구와 세계 경제사의 올바른 이해로 새로운 경제학을 재고토록하며 세계 경제학자들이 몽매에 깨어나기를,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에게 정정당당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열어준 희망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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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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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나이 60이 다된 고령에 본격적인 글쓰기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문학인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 사람이다. 따라서 늦깍기 문인들에겐 우상이며 모범으로 회자되는 소설가다.

소설의 주제는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이 일상에서 대수롭게 생각지도 않았던 시각(視覺)을 잃는다면? 인류 역사가 쌓아놓은 빛나는 문명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할까. 더 근원적인 문제로 들어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장구한 시간과 공력을 들인 교육의 결과는 얼마나 견고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속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참담하다. 양심이나 긍지, 이성은 어디에도 없다. 원시세계, 동물의 세계, 맹수들의 세계에서도 존재하는 룰(rule)마저 깨어진 난잡하고 치졸하고 역겨운 세상이다. 거기 ‘의사의 아내’가 눈뜬 자로 설정된 것은 천사 하나 오롯이 빚어 놓은 것만 같다.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이 의사의 아내의 눈을 통해 세상을 조망한다. 그의 시선을 따듯하다. 헌신과 사랑, 눈뜬 자로서의 책무.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마지막 의지에 관하여 천착(穿鑿)한다.

작가는 묻는다. 세상이 모두 눈멀고 당신 하나 눈뜬 자라면 니체가 말하는 철인이 되어 인류를 이끌 자신이 있는가.

소설 속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의 아파트를 종횡무진 자기 멋대로 사용하던 늙은 여인이 찾아온 집주인에게 먹을 것을 내어 놓으라는 몰염치성에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 검은 안대를 낀 노인이 “늙은 마귀할멈은 뭐라는 거야.” 다음에 나오는 지문은 “그는 자기를 모르고 한 말이다.” 그가 그 노파와 같은 생활을 해 본 뒤에도 과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노파는 혈혈단신 거대 아파트 속에서 살기위해 작은 공터에 토끼와 닭을 사육하고 도살하며 양배추를 뜯어먹고 살아온 노파다. 그것도 물과 불이 사라진 아파트에서 날고기 날 배추를 먹고 살았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마디로 불결함, 악취와 구토…. 앞뒤 가릴 새 없이 분별없이 쌓여가는 분뇨의 세상이다. 화장실은 분뇨로 넘쳐흐르고 똥은 수용소 안마당과 복도를 점령해 버렸다. 신발과 옷은 물론 손과 발 머리에 얼굴까지 똥칠이다. 어디 인간이라 할 수 있으랴. 그뿐이 아니다. 눈먼 자들이 눈먼 자들의 식량을 강탈하고 귀중품을 강제징수하며 성욕을 충족 시키기 위하여 여자를 공출해 윤간하기까지 한다.

최근에 일어난 실화 하나 들어보자. 넝마를 주어 나르는 노파가 승용차에 치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 젊은 여인 ― 운전자가 병원으로 모신다. 손해배상을 해주겠다. 엉엉 울며 죄송하다, 잘못했다. 쌀쌀 비는데 “이년아 눈이 없느냐. 내 손수레 어찌할 거냐. 내가 죽었으면 어찌했을 거냐.” 속사포로 쏘아대는데 모였던 구경꾼들이 하나둘 사라져 버린다. 차에 치인 노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 싹 거두고. 숭례문 방화범이 70대 노인이고, 벌교 앞바다 성폭행 살해범이 70을 넘긴 노인이었다.

그 노인들은 문맹이 아니다. 중등이상의 교육을 받은 노인이다. 20년 전 무식했던 노인들을 문맹이었지만 칼 같은 인간의 도(道)는 지켰다. 세상은 변했고 망가졌다. 동정은 사라졌다. 노블레스 오블레즈란 말은 아직도 생소하고 낮선 말이다. 이 눈뜬 노인들은 『눈먼 자들의 도시』인들의 뺨을 난타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사라마구는 밝은 대낮에 등불을 밝혀 의인(義人)을 찾으라고 외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사의 아내는 현인이나 성인(聖人)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으로 겸손을 잃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에게 가능성을 일깨우는 희망의 글 이다.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필체는 불쾌하다. 문장부호는 쉼표, 마침표이다. 물음표, 따옴표, 느낌표, 말줄임표…. 모두 생략해 버렸다. 다닥다닥 붙여 놓은 문장들.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가며 읽어야 할 판이다.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을 쓴 러시아 작가 리오니드 치프킨의 글이 이렇다. 꼭 이렇게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걸까. 글에 집중하라고. 왜?

말과 생각과 글의 일치를 시도하는 새로운 글쓰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현실과 상상의 조화, 화자와 화자가 서술하는 담론간의 일치, 내적 담화와 담론의 긴장, 독자들의 집중력을 요구하여 작가가 구축한 허구와 사실의 세계에 참여토록 하는 노력이 얼마나 성공적인가에 대하여는 회의적 이다. 원서와 번역본의 차이 때문일까.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은 지워졌다. 불특정 다수가 살아가는 도시에서 실상 이름은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실명(失明)에서 이름은 사치다. 조직과 계급, 사회 경제체제가 붕괴된 곳에서 인간 개체의 특징이 왜 필요하겠는가. 그냥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의 아내, 안과의사, 안과의사의 아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사팔뜨기 소년,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이렇게 일곱 명이 주요 등장인물로 명명된다. 이름을 지우고 나니 실체는 사라지고 그림자만 남는다. 아니면 이름이 인간 실체를 지우고 우리는 이름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작가가 말하는 사악한 통제기구는 정부다. 그리고 대리인이 군인으로 등장한다. 수용소 안의 질서는 충분히 통제가능하다. 그러나 정부는 냉정하다. 이미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진, 눈 머는 병을 옮기는 보균자로서 스스로 자멸하기를 기대하는 시스템으로 변한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존엄성을 지켜주어야 할 당연한 의무를 포기하는 이 몰지각한 행위는 인간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그게 우리가 믿고 의심치 않는 정부라는 기구이다.

그러나 이 견고하고 거대한 조직도 백색 공포 앞에 와르르 무너진다. 은행장이 회의 장소로 가는 길, 9층과 10층 사이 엘리베이터 속에 갇히고, 정전(停電)으로 은행 지사장 총회는 난장판으로 변한다. 지사장들은 총회의 장소 의자에 앉자마자 눈이 멀고 컴퓨터와 마이크, 스피커, 조명등은 일시에 꺼지며 책상 밑으로 굴러 떨어지거나 깨어져 아수라장이 되어 조직은 쑥밭이 된다. 어찌 은행만이겠는가 방송국, 행정기관, 정부조직, 사법당국, 모든 국가 기관이 마비된다. 시각(視覺)의 부재, 이 것 하나만으로 인간 세상을 정립하던 은유의 힘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인간을 인간이게 한 것. 그게 눈뜸의 힘이었던가.

다행히 소설을 의사의 아내 한 사람의 사랑과 헌신으로 인간 탐험의 순례를 마치면서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로부터 하나하나 치유되기 시작한다.

이 글에 대하여 조지 오웰의 『1984』, 카프카의 『심판』, 히틀러의 유대인 수용소, 솔제니친의 『암 병동』과 비교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꼭 비교하려면 윌리암 골딩의 『파리 대왕』을 찾아야 한다.

인위적 조직과 규범, 통제로서의 인간말살이 아니라 사라진 감각, 에고, 슈퍼에고가 아닌 이드로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기 때문이다. 

읽기를 마쳤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나의 궁벽한 교양과 지성, 그리고 초라한 이성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지나온 날들의 점철된 얼룩진 행위들은 어떤 속죄로 치유될 수 있을까. 

 

윤동주의 서시를 다시 읊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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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김익회 지음 / 문학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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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데이- 사과. 빌린 돈 갚지 못한 친구의 약속과 약속의 날 어김의 대한 사과 12개의 발상이 좋다. 돈으로 환산되는 인간의 가치세상에서, 돈 때문에 잃은 친구가 하나 둘이냐. 이 작품과 같이 친구 저울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느냐. 돈 때문에 각박해진 나를 미워하고 질책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작가는 사과 한 알에서, 이 한 편의 글에서 철학적 담론을 이끌고자 고답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미안해'하고 말하는 친구의 발그레한 볼을 떠올리고 있어 글은 더 아름답다.

- 듣기 좋은 말 - 설득력 있고, 거부감 없이 읽히는 글이다. 임원 취임 축하로 인한 인사, 대학 동창생과의 인사, 후배와의 인사, 승진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받는 인사, 젊은이와의 대화, 이렇게 5개의 실례와 흔히 쓰는, 또는 쓰이는 말 - '그 사람, 내가 데리고 있었어'의 쓰임에 관한 생각, 남편과 아내의 대화법 2가지, 이렇게 8가지의 예화로 구성된 수필이다. 각각의 예화가 진솔하고 꾸밈이 없어 탄력이 붙는 글이다. '…… 생활인의 지혜가 묻어있다. 상대방을 높인다고 상대적으로 내가 격하되거나, 상대방을 비하한다고 내가 격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존중하고 높이면서 내가 함께 높아지며, 상대방을 무시하고 낮추면서 내가 함께 낮아진다.' 이처럼, 때론 운률을 타기도 한다. 마지막 단락, '어느 식당 종업원은 손님의 부드러운 한 마디에 하루가 신나기도 하고, 무시하는 한 마디가 종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란 말로 시작해 '말은 인품이고 인상이다'로 끝 맺는다. '말은 형체도 냄새도 없지만 오미의 설도를 품고 시공은 넘나들며 사람의 마음을 휘젓고 다니는 마술사다'란 시작하는 구절과 대비되어 작품은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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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그늘에 들다
강은소 지음 / 문학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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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어디쯤 흐르고 있을까
영상이 손에 잡힐 듯 떠오르는 글이다. 수양버들이 빽빽 들어선 학교가 있다. 높디높은 국기게양대가 있고, 창문 드르륵 열어 아버지가 소리도 없이 웃으시며 내다보신다. 철필 긁는 사각거리는 소리에 갑자기 떠오르는 잃어버린 시간들. 과수원이 있는 작은 동네, 거기 저녁연기 집집마다 일직선 하늘로 피어오르고.

[여름방학 때, 당번활동을 하러 온 언니들과 재밌게 놀았던 일이 기억난다. 그 날 찍은 사진이다. ……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개 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 하나님의 이름을 처음 듣고, 더불어 산다는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한 폭 그림이다. 크레파스로도, 수채화로도 이렇게 못 그리리. 글로 그린 그림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화가들은 아는 지 모르겠다. 이 글을 읽고 있으면 3편의 소설이 떠오른다. '어느 날 기억의 모티브는 시간의 집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갈 때가 있다. 지난해 팔월. 아버지의 정년 퇴임식을 위해 스므 해가 넘도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모교에 갔다. 이젠 수양버들이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 교정이지만, 지나간 세월이 떠올랐다. 잊었던 기억들이 살아나고, 기억 속의 그리운 얼굴들이 미소를 지었다'에서 '그러자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이 맛, 그것은 콩브레 시절의 주일 날 아침……물을 가득 채운 도자기 사발에 작은 종이 조각을 담그면, 그때까지 구별할 수 없던 종이 조각이 금세 퍼지고……꽃이, 집이, 사람이 되는 놀이를 보는 것처럼'으로 시작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처음으로 낯선 곳에서 보낸 밤들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간 것처럼 아늑하고 따스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에선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주인공 오스카의 할머니 4겹치마가, '세월의 강은 멈출 줄 모르고 흐른다. 작은 개울은 또 다른 세계를 향해 온갖 풍파를 견디고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는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이 연상된다. 아름다운 글은 항상 아름다운 명작을 연상하게 하는 법이다.

- 가을 단상
이 책 첫 번째 작품 '복수 설화를 아십니까'의 도입한 시 '낙태일기·5'는 첫 대면하는 독자 기죽이기에 안성맞춤이다. 어디선가 본 듯도 한 시인데……. 일부러 분당수필 회원들에게 재차 묻기까지 했으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어머니 생신 날/ 우체국 빠져나오며/ 이제사 단풍드는/ 키 작은 나무 한 그루] '어머니 생신 날' 마지막 연이 눈물 샘 콕 찌르고 만다. 이 수필은 초등학교 운동회를 소재로 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떠올리며 과거 여인들의 시집살이 애환을 그린 글이다.

[장손인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맞는 운동회 날. 할머니와 고모들은 모두 운동회 구경을 가고 어머니는 집에 남게 되었다. …… 시상식 참석도 못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머니는 남몰래 눈물을 삼켰으리라. 층층시하 대가족의 시집살이로 어머니의 젊은 날은 그렇게 시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좋으나 싫으나 한 가족이고 언젠가 주도권은 넘겨주는 것이 순리이거늘 왜들 집집마다 어느 집에 누가 더 심하게 하나 내기라도 하는 지. 그러나 서러워하지 마시라. 모든 것은 농경사회와 부계사회 일변도로 인해 생겨난 불협화음 아니던가. 이젠 핵가족화 했고, 농경사회에서 탈피해 산업사회가 되었으며,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지 않는가. 앞으로 여권 신장은 날로 팽창하리라.

어디를 가나 여자 세상이다. 분당 수필에 가도 여자, 독서 공부를 가도 여자, 식당에서도 여자 손님들한테 잘 보여야 장사가 제대로 된다고 한다. 이미 네델란드에선 출생하면 아이가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고 하지 않는가. 향후 이혼 가정이 많아져 재혼할 때마다 아버지 성을 따라야 하는데, 그 바뀌는 빈도수는 해가 갈수록 많아 질 것이니 자손들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요는 원시 - 모계사회(이원복의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 여행' 참조)로의 복귀이다. 이런 슬픈 '어머니의 노래'도 이 글이 마지막이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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