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려서 외세침략, 외국자본의 종속, 식민지화에 대하여 이렇게 배웠다.    

 

국산품을 안 쓰고 남의 나라 물건이 좋다고 마냥 사다 쓰다보면 그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노하우는 뒷전이고 대대손손 그 나라 물건만 고가로 사다 쓰느라 1차 산업에 불과한 값싼 내나라 자원만 고갈 시켜 종당엔 빚으로 나라를 말아 먹게 된다.

다행히 예상은 빗나갔다. 공업화는 숙련된 기술의 축적이 아니라 과학이며 학문은 교육으로 극복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다행으로 내수에서 떼돈을 벌어 외국에 나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국산품을 비웃고, 보호무역으로 비대해진 재벌은 언제나 눈에 가시로 보였다.

특허란 천재성에서 비롯되며 지적 재산권 또한 특정 인간이 일생을 바쳐 이룬 귀중한 것이므로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하며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그러나 작가 장하준은 특허란 자연에서 힌트를 얻고 자연에 스며든 자원을 추출해낸 것이며 지적 재산권도 인간이 자연과 인간, 인간과 대중이란 집합 속에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특허물이나 지적재산이 기상천외한 여의주나 요술 지팡이가 아니므로 특혜를 줄 것이 아니라 만민이 공유해 펑펑 써야 옳다. 선진국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특허제도와 지적 재산권은 폐지되어 개발도상국에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역사 속에 내재해 있는 경제적 사실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허구를 폭로한다.

이미 우리나라도 IMF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정통적 견해에 의한 국영기업의 민영화, 안정된 물가 수준, 정부조직의 규모감축, 재정균형의 달성, 무역의 자유화, 외국인 투자와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해제, 외환 자유화, 부정부패의 감소, 연금의 민영화 등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WTO, IMF, 세계은행은 미개국이나 부자나라나 다 잘살게 하는 범세계적 은총의 기구가 아니다. 1인 1표제의 민주방식도 아니고, 1원 1표라는 재화의 불공정에 근거를 둔 횡포의 기구로, 부자나라들이 수십 년 또는 세기를 통하여 절치부심 부자가 되기 위하여 땀 흘려 오르고 또 올라 부자가 되자 쓸모가 없어진, 그리고 미개의 잠에서 깨어난 개발도상국들이 막 오르기 시작한 사다리를 걷어 차 버리기 위한 장치에 불과할 뿐이다.

부자나라들이 걷어차는 사다리, 그것은 개발도상 국가들이 부자나라로 올라가는 지름길 - 보호무역과 높은 관세, 유망업종의 국가 유치, 국영기업의 확장, 민족주의 경제, 외국인 투자와 자본시장의 강력한 규제… 이런 것들로 그들이 부자가 되기 훨씬 이전에 이웃 국가들과 부국강병의 줄다리기를 하면서 수십 년에서 백여 년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오르고 또 오르던 사다리가 아니었던가. WTO, IMF, 세계은행으로 사다리가 사라진 이 궁핍의 동토에서 가난한 나라가 부자 되긴 이미 글렀다.

그러나 절망은 없다. 맹목의 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허구와 세계 경제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간파한다면 정직한 부자나라들이 공평한 경제 게임을 운영할 것이고 부정직한 특허나 지적 소유권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정정당당하고 공평한 게임 - 페어플레이의 어원부터 올림픽 정신이나 스포츠맨십에서 나온 유럽 부자나라의 산물이다. 약소국이며 개발도상국을 면치 못하던 10여 년 전 축구황제 펠레를 초빙한 국제 축구 경기에서 애국심의 발로로 펠레에게 경고 카드를 내민 심판에게 손을 들어준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미래는 정직과 공평무사, 투명한 세계질서가 아니곤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역사란 언제나 사실보다 승자의 입장에서 재해석된 오류의 기록물이다. 부자나라들이 이렇게 잘 못 써진 역사로 신 자유 경제학을 오해 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말한다. “이 새로운 주장과 현실의 변화가 예전의 확실을 압도할 만큼 강력한 경우 이들도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생각을 바꿔 왔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신봉하는 신 자유 경제학의 허구와 세계 경제사의 올바른 이해로 새로운 경제학을 재고토록하며 세계 경제학자들이 몽매에 깨어나기를,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에게 정정당당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열어준 희망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