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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증보판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오래된 연장통>을 읽었다. 기획력 향상 교육 때, 진화심리학에 관심이 많던 강사님이 입문용으로 추천했던 책이다. 읽어보니 과연,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알고보니 최재천 교수가 추천사를 쓴 그의 제자의 책인데, 이 양반 입담이 장난이 아니다. 쉽게 술술 풀어쓰는 것은 기본이고 출간 당시 최신 예능 트렌드까지 꿰어찬 적절한 비유에, 단호할 때는 칼같이 결론짓는다. 특정 견해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극명해서 읽는 내가 조심스러울 정도지만, 그런 학문적 자신감이 한편으로 존경스럽기도 했다.
책의 뒷부분은 옴니버스 형식이라 흥미 있는 부분만 골라 읽거나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전반부, 4번째 연장까지는 진화심리학의 기본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라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는 것이 맞다. 그 이후로 11번째 연장 ‘자연의 미’까지, 또는 15번째 연장 ‘털이 없어 섹시한 유인원’까지 읽으면 진화심리학에서 다루는 굵직한 주제들에 대해 큰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앞부분을 읽다 보면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제목이 얼마나 절묘한지 알게 된다. 저자가 설명하는 진화심리학의 요체는 이렇다. “인간의 마음은 과거 환경의 적응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 자연선택된 수많은 해결책들의 묶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해결책을 심리 기제라고 부른다. 기제라는 말이 낯선데 영어 표현을 보니 메커니즘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메커니즘의 중요한 특성은 두 가지라고 한다. 각각의 구체적인 적응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화된 심리 기제들이 대단히 많이 존재하고, 우리 마음은 수백만년 전 아프리카의 수렵-채집 생활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잘 풀게끔 진화해다는 것. 문명화된 생활을 하게된 건 인류 역사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우리의 본능은 여전히 수렵과 채집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다윈이 이 세상을 해석하는 학문적 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진정으로 느끼게 되었다. 아울러 다윈의 저서를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진화심리학을 저자가 풀어가는 방식에서 인상적인 건, ‘어떻게’에 대한 설명과 ‘왜’에 대한 설명을 구분한 점이다. 그러한 심리 기제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가?’를 설명해야 ‘왜’에 대한 진정한 대답이 된다고 하였다. 이런 일상에서 혼용해서 쓰던 용어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무척 신선했다.
나는 원래 뇌과학, 인지과학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이 완전히 새롭지는 않았다. 요즘 진화심리학적 해석들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입문서를 굳이 시간내어 읽은 건, 진화심리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탄탄히 하고 좀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다. 다른 분야에도 국내 저자의 이런 입문서가 많아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