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신화와 의학 명화 속 이야기 9
문국진 지음 / 예담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가 책을 고를 때는 저자를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법의학자 ''문국진''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책의 제목만 보고도 이 분이 쓴 책인 줄 알았다. 법의학도 재미있는 분야인데, 이번에는 신화라니. 얼마 전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몇달간 탐독했던 적이 있어서 더욱 흥미가 갔다.

결과는 기대 이상인데, 우선 저자 때문에 놀랐다. 저자소개을 보니 연세가 매우 많으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나는 한번도 고리타분하거나 구식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감동적인 것은 책의 전체적인 구성이다. 신화나 의학에 전혀 익숙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정말 조금씩 그 세계로 몰입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각종 신의 이름과 병명이 가득찬 목차를 얼핏 봤을 때는 그런 배려를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것이 연륜인가...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책을 쉽게 쓴다는 것은 어렵게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신화와 의학의 관계는 단지 신화에서 유래한 ''이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아킬레스의 발뒤꿈치에서 나온 [아킬레스 건]도 있고, 아라크네에서 유래한 [거미막]도 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신화가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이다. 본문의 표현에 따르자면 "감성이 뇌를 자극하면 각종 화학물질이 분비되는데, 그것이 몸의 장기에 작용하여 면역 기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면역 활성화와도 관계가 있는데, 최근에는 정신면역이라 부르고 있다."

어린이용 그리스 로마 신화가 아닌, 원전에 가까운 신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신화가 얼마나 잔인하고, 난폭하고, 황당무계하며, 욕망ㅡ넘지 말아야 할 선은 과연 무엇인가에까지 의문을 품게 하는ㅡ으로 가득 찬 세계라는 것을 말이다. 도대체 그리스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었다는 게 사실일까?

여기서 잠깐 뇌 얘기를 짚고 넘어가자. 요즘 뇌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내가 아는 한도에서 간단하게 구분하자면 우리 뇌는 대뇌피질과 변연계로 구분할 수 있다. 대뇌피질은 ''이성''이고 변연계는 흔히 말하는 ''파충류의 뇌''로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상사가 승진에서 떨어졌더라는 얘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입가가 살짝 올라가며 웃음이 나오는 것은 변연계의 작용이고, 흠칫 놀라서 표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은 대뇌피질의 역할이다. 이런 미묘한 순간은 살면서 누구나 겪게 된다.
나는 과연 나의 작용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책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기 위해 읽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또 반대로 나의 모습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피하게 되는 책도 있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미 신화의 세계에 깊이 젖어들어서 정신면역을 얻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다 보면, 좀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이다.
신화에는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나를 닮은 조각들을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다. 술에 취해 들판을 헤매는 박쿠스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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