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리노프스키의 문화인류학 ㅣ 살림지식총서 141
김용환 지음 / 살림 / 2004년 11월
평점 :
말리노프스키는 현대 문화인류학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든 핵심적인 인물이다. 통상 자기와는 다른 문화를 갖는 지역에 가서, 현지 언어를 배우고 현지인들과 1-2년 동안 함께 생활하며 현지조사를 하는 것이 인류학적 지식생산의 조건으로 생각되는 것은 말리노프스키 자신이 직접 수행한 트로브리안드 제도 조사와 그의 대표적인 초기 저작인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서의 선언적인 문구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말리노프스키는 이러한 인류학 자료조사의 기법적 차원에서는 많은 기여를 했을지는 모르나, 이론가로서는 대체로 실패했고, 특정한 학파를 만들지도 못했다. 그러나 인류학에서 그의 주된 저서들은 축복이든 저주이든 간에 여전히 ‘고전’으로 읽힌다.
이 책은 말리노프스키와 삶과 학문을 짧은 분량으로 정리해 낸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이 책을 발판으로 삼아 말리노프스키의 책을 직접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보다는, 별로 말리노프스키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만 같다. 사실 목차만 봐도 어느 정도 이 책의 서술 경향을 알 수 있다. 40쪽부터 시작되는 ‘심리학적 관심의 지속과 과잉,’ 그리고 이어지는 ‘문화 변동 연구와 실패,’ ‘비교사회학의 등장과 말리노프스키의 몰락,’ ‘문화에의 집착과 망상’까지, 이 책은 말리노프스키의 이론적 취약함과 학계에서의 계속되는 실패 과정을 다루고 있을 뿐, 말리노프스키를 지금 읽는 것이 어떠한 의의를 가지는지를 긍정적인 차원에서 다루는 부분은 실상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장인 ‘말리노프스키의 현대적 재조명’(사실 이 마지막 챕터는 논지 전개상 너무 무리한 전환이며, 차라리 생략하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에서도 겨우 두어 페이지 분량을 할애하여 오늘날 말리노프스키가 재조명되는 바에 대해서 기술했는데, 여기에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되어 있지 않고, 그저 그가 영국 사회인류학계에서 패러독스로 남아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저자 자신이 말리노프스키와 저서 등을 읽어나가며 스스로 해 나갔던 생각일 것이므로, 자신의 견해를 굽히고 말리노프스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써야 한다든지 하는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허나 어차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해석이 아닐 바에야, ‘말리노프스키는 현대 인류학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정도가 저자의 말리노프스키 탐구의 주된 내용일 바에야, 굳이 이런 저작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학문활동에 아무런 영감을 제공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이 들면, 그냥 망각되게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
한 걸음 양보하여, 이 책을 그저 말리노프스키에 대한 숱한 평가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그것 또한 마뜩찮다. 한국은 지금 말리노프스키에 대해 ‘숱한 평가 중 하나’를 대중적 버전으로 출판할 상황이 아니다. 말리노프스키의 원저작들이 아직 한국어로 제대로 번역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에 한완상 선생의 번역으로 <미개사회의 성과 억압>과 <문화의 과학적 이론>이 나왔으나 절판된 지 오래고, 최근에 <원시신화론>이 나왔을 뿐이다. 원저작의 번역이 이러한 해설서 내지는 평가서보다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리노프스키를 지루해하는 저자가 과연 책이 재미있어도 지루할 번역작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저자와 함께 말리노프스키에 대한 흥미를 잃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