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디드 범우고전선 4
볼떼르 지음 / 범우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도둑을 맞았다. 동아리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지갑을 벗어 놓은 바지에다 넣어 두었는데, 잠시 나간 사이에 도둑놈이 들어왔던 것이다. 지갑 속에 있던 현금 7만원이랑 동전, 그리고 버스 카드까지, 돈 될만한 것들은 싹 털려 버렸다. 지갑은 가져가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그저 허망하고 망연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그 도둑놈을 실컷 두들겨 패 주는 상상이나 할 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이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 '지갑을 털린 건 내가 그동안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일 지도 몰라.' 사실 나도 전적으로 착하게 살지만은 않았고, 그동안 이것저것 나쁜 짓도 많이 했으니 그 죄값을 하느라고 이렇게 지갑을 털린 게 아닌가?

사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 혹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악을 행하면 벌받게 마련이고 선을 행하면 상을 받게 마련이라는 믿음에 닿아 있다. 『깡디드』에 나오는 철학자 빵글로스의 생각이 이러하다. 빵글로스는 모든 사물은 결과를 위해서 존재하고, 모든 것은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모든 사물은 현재 상태 그대로이며, 다르게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지선(至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사상을 제자인 깡디드에게 가르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지고의 선으로 귀결되는 것인가? 과연 그 도둑은 나를 징벌하기 '위하여' 도둑짓을 한 것일까? 내가 도둑을 맞아서 정죄가 되었다면 다행이지만, 도둑놈은 도둑질이라는 또 하나의 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이 도둑질은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

세상 모든 것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은, 그 세상의 모든 것들을 올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다시 말해, 세계가 이미 정해진 원리에 따라 이미 결정되어버린 궁극적인 귀착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은 형이상학적 독단물에 불과하다. '운명'이니 '인연'이니 하는 말들은 현재의 상황을 합리화하려 할 때 쓰여지거나, 그에 관계된 모든 일이 끝나고 그 일을 보기 좋게 설명하려 할 때 덧붙여질 뿐이다.

노학자 마르땡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심한 불안감 속에서가 아니면 권태로운 혼수 상태 속에서 살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것이오.' 한편 빵글로스는 여전히 이렇게 말한다. '세상엔 언제나 지독한 고통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일단 견뎌 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게 되네.' 하지만 이러한 대답은 깡디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세상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질문 또한 부질없다. 세상의 모든 고난을 겪은 깡디드에게 무엇무엇을 '위해서'라는 말은 모두 알 수 없는 것. 그는 이제 그의 뜰을 경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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